해외자원개발융자제도와 정부 정책의지
해외자원개발융자제도와 정부 정책의지
  • 이철규 해외자원개발협회 상무
  • 승인 2012.07.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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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규 해외자원개발협회 상무

정부는 현재 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기 위하여 부처간 협의를 진행 중이다. 기획재정부는 해외자원개발 융자예산과 관련하여 지식경제부에게 해외 자원탐사사업에 대한 성공불융자의 융자조건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공불융자제도'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사업이 실패할 경우 정부가 지원한 융자금 전액을 감면해주지 않고 실패의 책임을 물어 일부를 상환하도록 한다.

둘째, 성공한 사업에 대해서는 더 많은 특별부담금을 징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불융자금을 지원받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부족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성공불융자제도는 자원개발사업의 특성상 위험도가 매우 높은 탐사사업에 대하여 정부가 위험을 분담해 줌으로써 기업들의 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제도이다.

자원개발사업이 실패할 경우에는 융자원리금을 전액 감면해주지만, 성공할 경우에는 융자원리금 뿐만 아니라 융자원리금의 몇 배에 달하는 특별부담금을 추가로 징수하여 실패 사업의 손실분을 메꾸는 식이다. 성공불융자제도는 형식은 융자이나 일종의 보험이나 상호공제제도와 유사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비산유국이면서 석유를 많이 소비하는 프랑스, 독일, 일본이 성공불융자제도를 자국의 석유회사들을 육성하는 제도로 이용한 바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EU의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금지 원칙에 따라 1986년과 1989년에 성공불융자제도를 폐지하였다. 프랑스는 이를 통해 국영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여 세계 5대 슈퍼메이저중의 하나인 토탈(Total)사를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1964년 성공불융자제도를 도입하여 2004년까지 민간기업들을 지원하였다. 이후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신설하면서 출자제도로 전환하였으나, 2007년에 성공불융자제도와 성격이 유사한 복합적 출자제도를 만들어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4년에 성공불융자제도를 도입하였으며, 그동안 자원개발시장여건과 정책의 변화에 따라 20 여 차례의 규정 개정을 통해 우리 실정에 적합한 제도로 자리매김하였다. 2011말 기준 융자금회수율이 162%에 달해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평이 가능하다.

해외석유개발투자는 2005년 9.5억 달러에서 2011년 92억 달러로 열 배 가량 증가한 반면, 성공불융자금은 2005년 1,407억원에서 2008년 3,454억원으로 증가한 이후 2011년 1,658억원으로 감소하였다. 사업비 대비 성공불융자 지원비율은 2005년 80%수준에서 2011년 45%수준으로 하락했다. 금년도에는 지원비율이 3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우리 기업은 리스크가 높은 석유탐사사업에 대한 책임을 70% 이상 지고 있는 셈이다.

고유가 시기에는 해외자원개발의 필요성을 너도나도 외치다가, 유가가 다시 안정기에 접어들자 기업에게 실패 책임을 묻겠다는 식이다.

도덕적 해이 방지는 좋다. 하지만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두고 자주개발률 제고를 강조하면서 막상 정부 예산부터 일관되게 짜지 않는다면, 기업은 물론이고 국민들까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융자금회수율이 162% 인데 특별부담금을 더 징수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도 와 닿지 않는다.

석유개발사업의 성공률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슈퍼 메이저의 경우에도 20% 수준에 불과하다. 열 개 탐사사업에 참여하면 한두 개 사업 정도가 성공할 수 있지만, 성공할 경우 투자비의 열 배, 스무 배를 벌 수 있는 사업이다.

특정한 석유개발사업에 대한 탐사 실패로 국민의 혈세를 수천억 원씩 날렸다는 기사는 종종 보도되지만, 이러한 배경은 설명되지 않는다. 석유사업 특유의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이, 지금처럼 사업별로 성패와 책임을 따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누가 석유개발사업에 참여하려고 하겠는가. 

기재부가 성공불융자제도에 대한 조건강화를 요구하며 이런저런 배경과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적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성공불융자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석유공사를 비롯한 자원개발기업을 ‘규제’하기 보다는 아직 ‘육성’해야 하는 단계이다. 성공불융자의 안정적 지속적인 지원이 없이는 2030년 45%라는 자주개발률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정부의 정책 목표와 예산이 따로 가는 작금의 상황에 자원개발업계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모두가 똘똘 뭉쳐서 적극적인 투자로 자원을 확보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엉뚱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세계 열강들의 자원확보 전쟁은 시작되었고, 석유자원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에너지원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는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당면한 최우선 에너지 정책과제가 무엇인지 다시금 살피고, 자원개발기업의 사기가 저하되어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 그것이 석유부족 위기 상황 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까지 고려하여 예산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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