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의 신(神)
전기의 신(神)
  • 최덕환 기자
  • 승인 2011.08.22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최덕환 기자
여름의 끝자락이 보인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떠났고 처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전례없이 여름철에 꼬박 폭우가 내렸다. 이미 수년전부터 절기를 따져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한 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정도가 심하다. 절기를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평범한 날처럼 지내지만 조선시대에는 계절이 시작하는 입춘·입하·입추·입동과 6월의 토왕일(입추 전 18일간)에는 개화라는 의식을 했다.

개화는 말 그대로 ‘불을 여는 것’이다. 당시 부인들은 집안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불씨가 매일 필요한 까닭도 있지만 양기의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불씨를 너무 오랫동안 켜두는 것도 화를 자초한다고 믿었다. 불씨가 오래되면 양기가 넘쳐서 불의 신이 화재를 일으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궁과 관공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개화를 통해 오래된 불씨를 꺼트리고 새 불씨를 나눠주는 의식을 행했다.

개화는 전날 궁과 관공서, 가정집이 그동안 써왔던 불씨를 꺼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화를 시작하면 서울은 내병조가, 지방은 수령이 처음 불을 지핀다. 
이후 불씨를 임금과 신하들이 있는 궁은 물론 각 관청에 나눠준다. 이 불씨를 관청에서는 각 가정집에 나눠준다. 이를 어길 시에는 상하를 막론하고 중벌을 내렸다.

나라에서 불씨를 중하게 대하는데 이유가 있다. 불에 신이 있다는 생각은 만물에 신이 깃든다는 조상들의 전통적인 사상 중 하나다. 조상들은 오래된 나무와 큰 바위, 집과 장독대 심지어 화장실에도 신이 있다고 믿었다. 신에 대한 경외심과 신을 노하게 하지 말아야한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사물을 대했다. 궁에서부터 화기가 넘치지 않게 불씨를 계절마다 새로이 만들고 처벌조항을 만들어 나눠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민간의 믿음에 나라의 격식까지 더했으니 불에 대해 각별히 경외심과 경각심을 갖고 사용하라는 것이다. 결국 조심히 이용하고 아껴 사용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더운 날이 지나면서 발전업계는 우려했던 여름철 전력대란에 대해 한시름 놓았다. 이제 냉방수요가 가파르게 오를 시기는 지났다. 올·내년이 지나면 전기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다. 발전소가 많이 준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전소 준공으로 전기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치솟는 연료값이 먼저 생각난다. 발전소 건설의 어려움과 증설의 지속가능성도 가늠해본다. 매년 늘어가는 전기사용률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연관 짓는다. 미래에는 한계가 올 것이다.

조선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전기에도 신이 있다고 믿어보는 것은 어떤가. 자연의 부산물인 석탄과 석유를 태워쓰는 것이니 전기 역시 자연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금은 경외와 경각심을 갖고 정부와 시민들이 전기를 대한다면 전기의 신도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해가 아닌 은덕을 베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