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줄 사람에게 주는 사회를 보고 싶다
상을 줄 사람에게 주는 사회를 보고 싶다
  • 남부섭 발행인
  • 승인 2008.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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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많은 가을에는 상도 많다. 국가의 상은 으뜸이 훈장이다. 훈장은 종류도 많아 다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남의 일처럼 여기면서 살아가니까.

에너지 분야는 최고의 상이라면 급탑산업훈장이다. 그리고 은·동·철, 대통령…. 등등이 있는 것 같다.
훈장이라는 것은 국가유공자로 취급되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생전에는 국립유료입장 장소에는 무료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을 받으면 크던적던 기분이 좋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뭐 대단한 거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상을 받아보면 상에 부수되는 효과보다 기분이 좋은게 최고다. 곧 그것은 명예다. 명예를 중히 여기는 사회인식 때문일까.

몇 해 전 상을 두고 다툰 하나의 사례가 있다. 호텔끼리의 대결이었다. 급이 낮은 호텔과 급이 높은 호텔의 대결이었는데 급이 낮은 호텔은 두 번째 가라면 갈 수 없는 언론사 소유의 호텔이었다. 모든 걸 걸고 싸웠지만 격이 낮은 훈장을 탈 수 밖에 없었다.

그 호텔의 수상자는 훈장 수여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을까. 자존심이 상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국가의 상을 우습게 보았을까. 일반 국민은 쳐다보지도 못할 상인데 말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빚어질까. 상이란 것은 상을 줄 사람(정부)이 상을 줄 만하다고 평가되는 사람이 있을 때 주는 것이 옳은 것 같은데 우리는 상을 받고 싶은 사람이 ‘상을 주시오’라고 하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 상을 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형식은 추천서를 붙이지만 그것은 요식행위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았더라도 자신이 신청하지 않으면 상은 탈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극히 꺼려하는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으면 꿈도 꾸기 어렵다. 정작 상을 주어야 할 사람에게 상을 줄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상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일.까 한 번은 금탑을 받고 싶었는데 자기 회사의 선배들이 급탑을 받은 사례가 없어 은탑에 머물렀던 사례도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아무리 높은 업적을 쌓아도 급탑을 주지 않는다. 대기업은 전무급 이상만 되면 대개 금탑훈장을 받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고 있다. 

지난 주에는 에너지절약촉진대회가 있었다. 에너지를 많이 절약한 인사와 기업에 주는 상이다. 올해는 수상실적이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한 해 수 백억원씩 에너지를 절약했다는 내용이 있어야 했다. 달리 말하면 에너지를 물쓰듯 하던 사람에게 준 셈이다. 그것도 큰 공장을 갖고 있는 대기업에 큰 상이 돌아갔다. 그 뿐인가. 거기에는 꼭 자기 식구도 한사람 승차했다.

우리 사회가 상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해 상을 줄 만한 사람을 천거하거나 추천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언하고 싶다. 힘있고 직위가 높다고 해서 상을 받을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이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해 온 사람을 찾아 상을 주는 사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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