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의 연내 주민투표에 대한 합의가 실패하고 정부와 부안 주민들간의 불신과 증오의 벽은 더욱 높아진 것 같다.
이런 지리한 대립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라는 점이다.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것이 당연하고 이에 따른 갈등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의견 차와 갈등을 줄이고 해소할 수 있는 신뢰의 기반이 갖춰져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을 둘러싼 정부와 부안 주민들 사이에는 이러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런 저런 현안을 풀어야 하고 특별한 방법을 써야한다는 등 말이 많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그런 말은 먹혀들지 않는다.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어떠한 제안과 의논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불신의 벽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행동을 가로막는다. 다른 분야의 일이지만 최근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회비준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농민들의 울분을 쏟아낸 시위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불신이 얼마나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은 사실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불신의 책임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거나 주민들이 막무가내 자신들의 주장을 한다거나 하는 얘기는 물론 어느 한 쪽이 맞을 수는 있으나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문제는 정부와 주민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원점에서 대화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어느 정도 해법을 줄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 집중해야 한다.

<변국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