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재편 움직임 속의 세계 석유시장
에너지칼럼/ 재편 움직임 속의 세계 석유시장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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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세계 석유시장은 변동성이 매우 높다. 중동 정세변화에 따라 석유가격은 끊임없이 출렁이고 있다. 중동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중동의 정세변화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OPEC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평균 $25/bbl 수준의 비교적 높은 목표유가 전략을 채택한 이후 OPEC의 감산으로 오른 유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 배럴당 $24~25이던 두바이 유가가 이달 들어 다시 $27~28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정치 사회적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난방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겨울철을 앞두고 고유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당분간 유가가 더 이상 오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02년 이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러시아와 카스피해 주변 산유국의 생산량이 늘고 있고, 전후 이라크의 유전 복구에 가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석유장관은 지난 9월말 OPEC 총회에 참석하여 2004년 3월까지 생산량을 전쟁이전 수준인 280만 b/d로 회복하고, 이후 2005년까지 350만~400만 b/d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석유생산 추이를 보아가며 산유량 조절을 통해 목표유가를 유지하려는 OPEC의 전략이 의도한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시장점유율이 40%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OPEC의 감산정책은 회원국의 수익증대보다는 추가적인 감산과 시장점유율 하락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즉, 비OPEC의 시장지배력이 높은 현 시장상황 하에서 이라크는 전쟁피해 복구와 경제재건을 위하여 대규모 증산이 예상되고 있고, 러시아의 원유 수출시장 확대정책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OPEC의 감산전략은 일시적인 유가상승을 초래할 뿐, 이후 비OPEC 산유국의 생산량 증대에 따른 OPEC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수입 감소, 그리고 다시 추가감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라크의 OPEC 생산쿼터 체제내로의 복귀는 낙관적이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이라크 국내의 정치적 안정과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OPEC으로서도 이라크의 복귀를 환영하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이라크가 OPEC 체제로 편입될 경우 회원국간의 생산쿼터 조절이 쉽지 않고, 결국 회원국간 긴밀한 협조관계가 와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후 사실상 미국의 통치하에 있는 이라크가 OPEC의 쿼터제도에 회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이런 점에서 이라크의 독자행동이나 향후 OPEC 탈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은 재편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세계 석유시장의 판도와 그것이 가져올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동의 원유생산은 OPEC 산유국의 국영회사가 주도해 왔고, 시장의 석유제품 판매는 대부분 메이저 등 민간석유회사가 주축이 되어 왔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전쟁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이라크 유전 복구와 함께 석유산업의 재편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30년만에 중동 재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며, 중동 산유국들도 이들의 자본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메이저들은 90년대 장기간의 저유가 상황에서 M&A, 인력조정을 통한 경영합리화와 마케팅 전략 및 기술개발 등을 통하여 특히 하류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새로운 수익모델의 확보를 위하여 중동으로의 진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한편 대부분의 OPEC 산유국은 국영회사 체제를 유지하며 수익의 대부분을 단순 원유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신규 유전개발을 위한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석유산업의 민영화와 상류부문에 대한 메이저의 자본참여를 허용함으로써 해외자본의 유입과 첨단생산기술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이 기존의 국영체제에서 탈피하여 상류부문에 대한 서방 석유회사들의 진출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이란, 쿠웨이트, 카타르 등 일부 중동 국가들은 외국자본 도입을 위한 개방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으며, 이라크는 올해 말까지 입찰을 통해 국제석유회사들에게 새 유전 개발권을 허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중동의 석유산업 개방과 관련한 제약요인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이라크에서 기존의 이권을 확보하고 있는 유럽 및 러시아 석유회사와 미국계 석유회사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유럽 석유회사들이 기존 계약의 권리를 주장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 중동지역의 정치적 갈등과 종교분쟁으로 인한 지역갈등도 석유산업 개방에 상당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부 자생력을 갖춘 국영석유회사는 하류부문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수직통합의 구조개편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계 석유메이저들의 염원이 달성되는 시기는 국가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중동지역의 상황변화에 따라서 다소 늦추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동 국영석유회사와 서방 석유메이저가 양대 산맥을 이루어온 하이브리드(hybrid) 모델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고, 세계 석유시장은 조만간 큰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이라크전 승리는 전략적이든 부수적이든 석유자원 확보에 더없는 기회가 되고 있다. 막대한 석유자원을 보유한 이라크의 잠정적 군사통치와 유전복구 활동을 통하여 미국계 메이저의 이라크 진출 등을 통한 석유자원 확보를 도모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라크를 새중동 전략의 교두보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며, 이라크 재건과 개혁에 필요한 재원으로 막강한 석유자원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최근 이라크 파병과 관련하여 국제적인 논의가 많고, 국내적으로도 찬반 양론이 뜨겁다. 정부의 선택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와 경제적 실리를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 여기서 어느 방향이 옳다는 것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파병문제가 에너지안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이라크 원유 수입물량은 아직 미미한 수준에 있으나 향후 새로운 수입선으로 부각될 수 있으며, 중동이 우리의 주된 원유 수입지역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이라크 석유산업의 민영화가 실현될 경우, 아직까지 미개발 유전이 많이 남아있는 이라크 남서부 지역 유전개발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진우 실장
〈에너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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