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리뷰/ 석유의 古代史 ②
에너지리뷰/ 석유의 古代史 ②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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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안-코카서스와 중부 유럽의 석유 ①




‘데르벤트(러시아 다제스탄 자치 공화국의 도시, 카스피해 서해안의 항구도시)의 역사’는 지역 정치에 있어서 석유의 역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근원이라 볼 수 있다. 그 역사는 원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단편적인 것들이 다른 인쇄본에 등장, 명맥을 유지해왔을 뿐이다.
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잔(러시아 볼가강 근처의 도시, 타타르 자치공화국의 수도) 출신의 주목할 만한 전문가에 의한 그 ‘역사’의 연구이다. 이 사람은 아제리 민족 사람으로서 19세기 중반에 생 페테르부르그의 제국 과학 아카데미에서 일한 바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미르자 카젬-벡. 그의 명성은 외국에서까지 인정하는 바였다. 러시아의 스코틀랜드 선교사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그는 나중에 파리의 Societe Asiatique 및 런던에 있는 대영제국 및 아일랜드 Royal Asiatic Society의 명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영어로 쓰여진 ‘데르벤트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필사본을 자의로 인용했다.
<마호메트 기원 272년(A.D.885)에 바그다드의 칼리프는 데르벤트의 주민들에게 칙령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바쿠(Baku) 지역의 naphta샘과 염갱으로부터의 세수는 데르벤트 주민들에게 하사한다는 것이었다. 암마르의 아들 무함마드가 그 염갱과 naphta샘의 감독자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모아들인 매년의 소득을 데르벤트의 전사들에게 분배했다. 이야기에 의하면 290년(A.D.902)에 비-슈투르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총독 자격으로 데르벤트에 파견되었다. 그는 주민들에 대한 생활보조금 하사를 중단시켰고, 그 지역 naphta샘, 소금, 기타 다른 제품으로부터 발생하는 세수를 강탈했다. 데르벤트의 주민들(또는 전사들)은 이와 같이 모든 수단을 강탈당했으며, 무역에 종사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곧 그들 사이에서는 대혼란과 타락이 만연되었다.>
상상컨대 역사에 있어서 석유에 대한 최초의 정치적 언급의 기록으로 사료되는 카젬-벡의 묘사는 당시 독일의 학자이며 과학자인 도른에 의해 번역되고 분석되어진 다른 자료로부터의 단편적 사실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270년(A.D.883)에 바그다드의 칼리프는 naphta샘 및 염갱으로부터의 세수를 쉬르반(아제르바이잔의 지역, 코카서스 남동부) 나라에서 빼앗아 데르벤트 주민에게 하사했다. 그는 해안의 Bad-kuben(바쿠의 페르시아 명칭)에 별도의 창고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창고의 기초를 놓기 위해 땅을 팠을 때 다음과 같은 글이 써진 커다란 돌이 나타났다. “naphta샘과 소금을 데르벤트에 바치노라.”이 소식을 들은 칼리프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써서 보냈다. “누구든 데르벤트의 주민에게서 naphta샘과 소금을 빼앗는 자가 있다면 신과 예언자의 적이 될 것이다.”
이 명령으로 해서 그는 모든 naphta샘과 소금을 쉬르반으로부터 빼앗아 데르벤트의 주민들에게 주게 된 것이다. 그는 암마르의 아들 무함마드를 이들 naphta샘 및 염갱에 대한 관리인으로 임명, 그가 거두어들인 세수를 데르벤트에 하사케 했다.
암마르의 아들 무함마드 후에 예지드의 아들 무함마드가 쉬르반의 군주가 되었다. 그는 naphta 갱과 염전에 대한 관리인을 임명, 그에게 대리인으로서 그것들로부터의 모든 세수를 거둬들이게 했다. 그 때 새로운 ‘저주의 글’이 발견되었는데 naphta와 염갱은 데르벤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바친다는 내용이었다. 쉬르반의 군주와 모든 족장, 지배자들은 이 신성한 봉헌에 조인했다.
쉬르반의 군주가 관리인을 임명하는 목적은 데르벤트에 돌아갈 소득이 낭비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쉬르반의 군주가 조금이라도 그것을 축내어 이익을 챙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군주는 그 소득을 공식적으로 데르벤트 총독에게 전달했다.>(`Oil and Gas in the Cancasus & Caspian by Charles van der Leeuw, St.Martin's Press' 中)
바쿠에서의 석유 및 가스의 자연적 유출은 세계적으로 가장 경이스러운 일 중의 하나이며 문명인의 역사 초기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바쿠의 ‘영원한 불’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2,500년간 각지로 그 소문이 퍼져 나갔다. B.C. 6세기 전부터 이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이들 불은 ‘페르시아의 영원한 불’‘아아쿠의 영원한 불’등으로 불리워졌다.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조차 이 불을 그의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참조: Trek of the Oil Finders, E.W.Owen 등)

<이승재 / sjlee44@petro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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