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재생가능에너지시스템으로 지구적 위험 피해야
특별기고/ 재생가능에너지시스템으로 지구적 위험 피해야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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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세계 경제의 심장 뉴욕이 박동을 멈추었다. 도시는 빛을 잃고 움직임이 사라졌다. 자유의 여신상 주변은 온통 깊은 어둠에 휩싸였다. 전철과 전차는 멈추었고 엘리베이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호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도로에도 차가 뒤엉켰고 공항도 한동안 업무가 중단되었다. 유선전화가 무용지물이 되자 무선통화가 폭주하여 한 때 통신망마저 마비되었다.
뉴욕을 포함해서 미국 북동부지역에 발생한 거대 정전 사태로 5천만명의 시민들이 큰 불편과 공포를 겪었다. 한국 전체보다 더 큰 전력시스템이 한 순간에 망가졌다.

■ 거대 전력시스템의 내재적 위험성

거대 정전 사태의 원인을 두고 분석이 다양하게 쏟아졌다. 처음엔 발전소에 떨어진 벼락에 책임을 돌리는 천재지변설이 등장했지만 곧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초래한 부실한 전력망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다는 규제완화 실패론이 다수 의견을 이루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전력망이 문제가 아니라 거대 에너지업체들이 전력요금을 올리기 위해 전력공급체계를 조작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 누구도 전력생산시설과 공급망을 주축으로 하는 거대한 시스템 자체에 회의를 갖진 않는다. 규제완화 실패론을 뒤집으면 공적으로 전력망 관리만 제대로 하면 지금같은 전력시스템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이 깔려있다.
하지만 망의 손상이나 바이러스 침투 때문에 두 세차례 국가 인터넷통신망 마비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거대 전력시스템 자체에 내재적 위험성이 상존한다.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에 기초한 중앙집중적인 거대한 전력체계는 벼락 같은 자연적 요인이든, 기술자들의 실수든, 거대 시스템의 자체 결함이든, 시스템 관리자들의 고의에 의한 방해 때문이든 마치 기계가 고장으로 멈추듯이 한 순간에 세워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중앙집중적인 전력체계 말단에 위치한 소비자들은 그런 가능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문명생활을 이 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시민들이 깊이 의존하는 시스템에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 거대 전력시스템의 위험성을 증폭시킨다.

■ 기후변화,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시스템의 산물

우리가 의존하는 거대 전력시스템, 나아가 에너지시스템은 그 내적인 위험성도 있지만 에너지생산과 사용과정에서 끊임없이 위험을 생산한다.
프랑스에서 5천여명의 사망을 초래한 유럽의 폭염도 에너지시스템과 긴밀하게 선이 닿아 있다. 항상 자연현상에 대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기상학자들은 8월 초 2주동안 유럽을 휩쓴 폭염을 기후변화 현상으로 단정짓진 못하지만 기후변화와의 관련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이달 들어 유럽 각 지역에선 최고 기온 기록이 새로 수립되고 있다. 프랑스 특유의 휴가문화와 부실한 응급조치가 겹쳐 폭염에 따른 인명피해가 컸던 프랑스는 서남부 곳곳에서 수은주가 섭씨 40도를 넘기면서 2차 세계 대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스위스 베른은 1865년 이후 최고 기온인 37도로 치솟고 런던 서부 히드로 공항 인근의 기온이 37.9℃를 기록해 1875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130년 만에 최고 기온을 나타냈다고 한다.
독일 뮌헨 북부의 로트에서는 40.4℃로 기온이 치솟아 기상관측이 시작된 1730년 이후 270여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열대지방 사람이 극지방에서 적응력이 떨어지듯이 기온이나 강수량 변동이 비교적 적은 온화한 대서양 기후대에서 살아 온 유럽인들은 갑작스런 고온 상태에 대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간혹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인도나 열대지방 폭염보다 최고 기온은 낮지만 피해는 훨씬 더 심각했다.
이런 살인 더위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앙에 비하면 전조에 불과하다. 이미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은 섭씨 0.6도 상승했고 21세기말이면 추가적으로 5도 이상 더 상승할 것이다.
인류가 에너지시스템을 혁신하여 온실기체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더라도 지금보다 기온이 2도 정도 더 상승할 것이다. 인위적인 작은 온도 상승만으로도 극지방과 산악지역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팽창하여 해수면은 점차 높아져 투발루나 몰디브 같은 작은 섬나라는 국토가 잠기고 있다. 열대성 전염병을 매개하는 곤충은 서식범위가 넓어지고 서식환경의 급변으로 많은 생물종이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생물권의 변화보다도 인간에게 직접 영향은 미치는 것은 극단적인 기상의 발생이다. 인위적인 지구온난화로 안정적인 기후체계가 교란되면서 폭염, 혹한, 홍수,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증가하고 그에 따른 기상재해로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1950년대에 비해 1990년대의 경우 기상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열 배나 증가했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화석연료 소비이다. 화석연료는 전세계 에너지공급의 84%를 차지한다.
현대문명은 탄화수소문명 혹은 석유문명이라고 불릴 만큼 화석연료는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토대였다. 최종 소비자 입장에선 시스템의 말단에서 전기를 쓰거나 주유를 하거나 난방용으로 석탄이나 가스를 쓰는 식이지만 화석연료의 생산과 공급, 소비 전과정도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조직화되어 있다. 결국 산업사회를 지탱해 온 에너지원과 거대 에너지시스템이 산업사회의 근본적인 위험으로 자기 속성을 드러내는 셈이다.

■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 에너지시스템 전환

그럼 위험성을 내재한 채 기후변화라는 가시적인 위험을 심화시키는 거대 에너지체제, 화석연료체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지난 해 별 소득없이 끝난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에서 이것에 대한 유의미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유럽연합은 2010년까지 전세계 1차 에너지 공급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을 15%까지 높이고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대한 연간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보조금을 폐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록 미국과 개도국의 반대로 유럽연합의 제안이 관철되진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기후변화를 막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와 원자력 위주에서 탈피하여 재생가능에너지 위주로 에너지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는 견해가 국제적인 공감을 획득했다.
재생가능에너지원은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 어디에든 존재한다. 에너지밀도가 낮은 것이 단점이지만 이것 때문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은 중앙집중식 거대 시스템이 아니라 작은 단위가 서로 연결되는 분산형 네트워크로 구축된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는 이용과정에서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기체를 배출하지도 않는다. 이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기술신뢰성, 경제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고 앞으로도 더욱 나아질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될 경우 2050년이면 전체 에너지의 95%를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한 분산형 시스템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에너지시나리오를 제시한 적도 있다. 미국 동북부의 정전 사태, 유럽의 폭염 사태를 보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한 분산형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이상훈 에너지대안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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