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이라크, 未完의 전쟁과 교훈
에너지칼럼/ 이라크, 未完의 전쟁과 교훈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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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고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까지! `어리석음과 익살꾼'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낯익은 얼굴로 다가온 알-사하프 이라크 공보장관이 종전 2개월 후에 다시 나타났다. 알-사하프는 지난 6월 28일 방송된 알-아라비아 위성 TV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영 연합군 공격에 의한 이라크 정권의 붕괴를 `큰 지진'으로 비유하면서 전쟁을 둘러싼 무성한 의혹에 대해 '오로지 시간과 역사만이 이라크의 모든 진실을 말해 줄 것'이라고 말해 이라크의 장래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임을 예고했다.
이라크인의 자존심은 전쟁중에 알-사하프 공보장관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익살맞은 알리(Comical Ali)'로 알려진 사하프 장관은 후세인의 동상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전쟁의 포성이 스튜디오에 들리는 순간까지 바보스러울 정도로 의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으며 방송을 마치고는 스튜디오를 빠져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2003년 4월 9일. 이라크는 분명히 새로운 역사를 써야했다. 비록 이 시점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24년간 이라크를 대표해온 상징적인 인물 사담 후세인 동상이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대형 크레인에 의해 6m 높이의 대형 조각물이 끌어 내려지는 장면이 TV에 생중계 되는 가운데 아랍권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실망과 좌절, 미-영을 비롯한 승전국에서는 `환호의 목소리와 함께 승전의 축배'를 들었다.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를 격퇴하고 알렉산더 대왕이 차지한 인류문명의 한 가운데를 2300년 뒤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영군이 `평화의 도시'라 불렸던 바그다드를 장악한 것이다. 후세인 동상이 역사속으로 살아지는 순간! 이라크 역사의 초침은 멈추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곤 바그다드엔 침묵(沈默)이 흘렀다.
미군 당국이나 대부분의 외신들은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대대적인 환영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실제로 외신들은 이라크인들의 방화, 약탈 장면을 크게 보도하며 새로운 정부가 곧 구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고, 기업들은 발빠르게 뛰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하고 문명국가임을 자부했던 이라크인들은 침묵을 지켰고, 사태의 추이를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혼란과 무질서는 더 강한 군대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등에 없고 찰라비 의장이 기세등등하게 이라크에 입성했을 때 이라크인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고 쉬아파 지도자들이 환영을 염두에 두고 쉬아파 최대의 성지가 있는 나자프나, 나시리에 입성했을 때도 오히려 암살을 당하는 불행을 당하였다. 그만큼 이라크인들은 지도자가 밉기는 했지만 이라크라는 문명국을 외세(外勢)에는 넘겨줄 수 없다는 현명한 판단을 한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는 총구나 군화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라크인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미국은 힘과 경제력으로 이라크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라크전이 시작될 때 이라크인들이 손쉽게 `환영(welcome)'하고 나오리라는 기대는 쉽게 무너졌고 오히려 미국의 바그다드 점령이후 반미감정은 더 커지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미국이 어마어마한 전비를 들여가며 치른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은 지금 전쟁보다 더 힘든 전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은 분명히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였고 `후세인 정권 축출'이 부차적인 명분이었다. 이라크 국민들은 "모든 게 끝났으니, 돌아가라 (Go home, All done)"고 하고 세계 여론도 마찬가지로 "나오라"한다.
아무튼 후세인이 축출되고 미국이 5월 1일 종전선언을 하였지만, 이라크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며,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이후 60명 이상의 미군이 숨졌으며 이중 2/3가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의 추종세력들에 희생됐다. 바그다드가 함락된지 3개월, 미국이 종전을 선언한지 2달이 지났지만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식 게릴라전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라크 자체로서도 그런 전쟁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모두에게 희생만 크다는 점을 이라크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점은 외세에 의한 지배이다. 이라크전 발발직전 필자가 만난 이라크인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사담을 싫어한다, 그러나 미국은 증오한다(We don't like Sadam, but we hate America)"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그래도 사담에게 이라크의 희망을 걸고 항전하는 길밖에 없다"고 항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현재로선 사담의 생존여부를 사담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의 생존여부를 놓고 미국과 이라크 민병대간에는 최근 새로운 전투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세계질서나 에너지의 측면에서 볼 때 이라크 사태는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한반도를 보자! 이라크전이후 `악의 축'으로 분류된 `북한의 핵문제'가 다시 미국의 관심사가 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위정자들이 하는 일이란 명분이나 이권을 따라 부끄러운 줄서기만 하고 있지 않은가! 16세기 이후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당쟁을 사색당파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한국은 이라크 사태를 예의주시 해야 하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이제 우리는 모두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의(大義)를 중심으로 합심하여 뭉칠 때이다. 경제도 IMF이후 최악의 상황이라 한다.
〈hong@hopia.net


홍성민 소장
〈중동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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