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리뷰/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개발史(6)
에너지리뷰/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개발史(6)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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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르 초거대 유전(1)


 캘리포니아 스탠다드사의 한 부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기 작업을 지휘했다.
1940년 8월에는 별도 경영 조직이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되고 캘리포니아 스탠다드의 지질전문가인 프레드 A. 데이비스가 사장으로, 텍사코의 지질전문가인 제임스 테리듀스와 D.J.한나가 부사장으로, J.맥퍼슨이 출납담당의 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조직은 1944년에 명칭이 Arabiam American Oil Company(Aramco)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1949년에 본사를 뉴욕으로 옮겼다. 그러나 작업 본부는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 영구히 남게 된다.
대전 후에 아람코는 광범위하게 펼쳐놓은 탐사작업을 회복시키고 확인된 매장량을 개발하고 엄청난 양의 석유를 처리할 시설들을 건설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본투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스탠다드 오일 컴파니(뉴저지)와 스탠다드 오일 컴파니 오브 뉴욕을 아람코에 참여시키는 5억 달러 상당의 협상이 1946년에 시작되었다..
이라크 패트롤리움 컴파니는 이들 회사들이 아라비아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하여 1948년 '적선협정'의 조건을 수정했다. 이렇게 해서 아람코의 소유권은 캘리포니아 스탠다드, 텍사코, 저지 스탠다드가 각각 30%씩 소유하게 되었고 뉴욕 스탠다드는 10%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다.
Trans-Arabian Pipe Line Company(Tapline)이 제휴회사로서 조직되었다. 이 회사는 페르샤만에서 레바논 시돈의 지중해에 이르는 1,068마일 라인을 건설했으며 1950년 11월부터 석유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그 뒤의 수송 및 정제설비의 확장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요구 사항이었다. 1933년 2만b/d에 불과했던 원유생산은 1949년에는 50만b/d를 돌파했고 1965년에는 평균 202만4,870b/d에 이르게 되었다.
대전 후 탐사작업이 재개되었을 때 특수한 이동가능장비와 개선된 기구들 그리고 충분한 지원 인원이 제공한 보다 나아진 효율성을 제외한다면 그 작업의 방법이 과거의 것과 거의 다른 것이 없었다. 현장 인원들은 보다 편안한 작업조건에서 일 할 수 있는 장비와 끊임없이 통신을 계속할 수 있는 송수신 겸용 무전기 등으로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그 무전기로는 다란에 있는 본부와 통신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9월에서 6월까지 비교적 서늘한 기간 중에 작업을 했고 뜨거운 여름에는 보통 사무실 일을 하거나 장비를 분해 검사했다.
1951년 세팀의 지표지도 제작팀과 삼각측량팀 두팀, 중력·자력계팀 두팀, 지진계팀 두팀, 6대의 리그를 사용하는 구조 시추팀 세팀이 일했다.
탄성파 탐사작업은 1947년 말경에 재개되었으나 결과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가와르(Ghawar)의 주요 추세의 중요한 정부(頂部)지역에서는 지진계 사용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측면에 관한 얼마간의 정보를 제공해주었지만 말이다. 가와르 유전의 Bouguer 중력지도는 지표면 이하의 지질 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가와르 유전의 남쪽 절반을 커버하는 자력지도는 별 특징이 없는 것이었다.
구조시추는 계속 가장 효과적인 조사방법이 되었다. 이 구조 시추는 7천∼1만피트에서의 층위적 시추가 증대됨으로써 보완될 수 있었다.
천박한 지질 구조 구멍 데이터와 깊은 유정 데이터의 지표면 이하에서의 상관관계는 가장 우선시 되는 정보였다. 특수 그룹이 조직되었는데 이 그룹은 장거리의 기본 정보에 중점을 두고 짥은 시간을 쪼개어 즉시적 작업 문제 해결에 몰두하게 하는 전반적인 지질 조사에 착수했다.
l953∼1954년에 '공백의 구역' 오지부분에서 층위적 시추가 시행되었는데 이를 위해 트럭들이 하라드의 철도 끝으로부터 자갈돌 평원과 흔들리는 모래 언덕을 거쳐 물자를 운반했다. 신 발견과 추가적 개발의 결과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고 보다 정확한 정보가 요구됨에 따라 지표면 이하 지질 및 저류층 토목공사에 있어서 작업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생산성 있는 구간에서의 다이아몬드 비트를 이용한 코아 채취가 1950년대에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다.
아라비아 층위학의 광범위한 조사결과가 1952년 막스 스테인네크와 R.A브램캠프의 해석으로 신문에 공표되었다.
1955년에는 N.J.샌더의 해석에 의해 다시 공표되었고 1958년에는 스타인네크, 브램캠프, 샌더의 공동 저작으로 책으로 출판되었다. 1962년에 파우어는 쥬라기 탄산염 저류암의 암석분류에 대한 보고를 했다.
(참고: Trek of The Oil Finder, E.W.Owen)

<이승재/ sjlee44@petro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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