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차라리 에너지價格 개편을 포기하든지…
에너지칼럼/ 차라리 에너지價格 개편을 포기하든지…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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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기름값 보조해 달라”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3천여명의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 레미콘 운반단가 현실화 같은 요구와 함께 유가 보전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지난 5월, 정부와 화물연대가 맺은 합의 사항에 `사업용 화물자동차에 사용되는 경유에 대해 교통세 추가 인상액을 전액 보조금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때부터 예견되던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저런 명목으로 유류세제 개편의 예외를 허용해선 안된다.
정부는 2006년까지 경유가를 휘발유가격 대비 75%, LPG를 60%로 인상하는 유류세제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저유가 정책에서 비롯된 연료 낭비를 막아 에너지소비절약을 유도하고 환경개선을 꾀할 목적으로 과세를 통해 경유와 LPG의 휘발유 상대가격을 단계적으로 인상 중이다.
환경단체가 주장해 온 생태적 세제개혁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국 현실에서 최소한의 정책과제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저에너지가격 정책의 바탕 위에서 고속 성장했다.
물가안정, 산업지원 등의 명목으로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한 결과 에너지소비도 급격히 늘었다.
지금 한국의 에너지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에너지의 97%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면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낭비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한다. 국민 1인당 연간 에너지소비량이 독일, 일본 수준이며 1인당 전력소비량도 영국을 넘어 독일 수준이다.
에너지소비량 세계 10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 석유수입 세계 4위이다.
1인당 소득이 2만달러쯤 될 2015년이면 에너지소비가 60-70% 더 늘어나 미국에 버금가는 에너지소비대국이 될 전망이다.
인구밀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토 면적당 에너지소비량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
누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같은 석유전쟁과 매년 전세계에서 급증하는 기상재해를 떠올린다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수긍이 갈 것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가 최근 대책으로 추진 중인 것이 전력요금 개편과 유류세제개편이다.
생산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에너지가격에 고스란히 반영하여 에너지이용의 효율화를 기하고 환경개선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세수 확대에 대한 기대가 빠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여기고 특혜 요금에 길들여진 국민들로부터 초기부터 엄청난 저항과 반발을 샀다.
영업용이라고, 장애인용이라고, 농업용이라고, 산업용이라고 당사자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이 대목에선 진보와 보수,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따로 없었다. 인천제철과 전농이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장애인과 택시회사 간부가 함께 에너지세제개편 공청회장을 점거했다.
입만 열면 국가를 위한다는 정치인들도 에너지가격개편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한 몫을 거들었다.
오로지 정부만 죽일 놈 소리를 들었다. 정부가 기존 에너지가격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안을 제시했지만 민감한 이해당사자들은 값싸게 에너지를 소비해 온 기득권을 고집하고 있다.
화물차에 유가 보전을 해주기로 한 이상 다른 교통수단의 경유가 인상분 보전 요구를 정부는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같은 논리로 전기요금체계 개편도 난항을 거듭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물류대란에 서둘러 끝내려고 참여정부가 화물연대에 유가 보전까지 합의한 것은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은 매우 경솔한 조치였다.
이런 식이라면 지금처럼 왜곡된 가격체계에 따라 값싼 에너지를 낭비하는 구조를 뜯어고치기는 어렵다.
에너지 안보는 더욱 취약해지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라는 국제적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정부는 원칙을 가다듬어 에너지가격 개편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한걸음 나아가 지금처럼 유류에 부과하는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등 복잡한 과세체계를 환경세나 탄소세로 단순화하고 세출을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쓰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에너지가격 개편, 나아가 세제 개혁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세수가 늘어난 만큼 근로소득세 등을 경감하여 저소득층이나 노동자들의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이익집단의 요구에 따라 이런 저런 예외를 만들 요량이면 차라리 개편을 포기하는 편이 낮다.
현실을 바꿀 수 없으면서 갈등 비용만 발생시킨다면 아예 변화를 입밖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가격 개편에 따른 저소득층과 관련 업계의 부담 증가는 에너지가격 정책의 바깥에서 해결해야 한다.
복지 정책이나 대중교통 정책의 필요에 따라 보조금이 지급되거나 관련 업계의 비용 부담이 합리적으로 가격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상훈 에너지대안센터 사무국장/leesh@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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