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리뷰/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개발史(2)
에너지리뷰/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개발史(2)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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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스탠다드의 아라비아 진출


걸프시가 바레인의 이권을 넘겨준 직후부터 Standard Oil Company of California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진출을 정당화시켜 줄만한 정보를 결여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바레인에서 작업을 시작한 후에 홈즈 소령에게 하사의 지질 조사 허가를 요청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스턴 앤드 제네랄사의 옵션에 대한 태만한 상태는 홈즈를 미약한 처지에 놓이게 해서 이븐 사우드와의 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스탠다드의 아라비아 본토 접근은 마침내 미국의 공학자인 K.S. 트윗첼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
트윗첼은 1927년부터 1932년까지 뉴욕의 찰스 R. 크레인에게 고용되었는데 크레인은 아랍 사람들의 오랜 친구였으며 이스탄불에 있는 로버츠 대학의 이사였다.
크레인은 트윗첼과 그의 몇 사람의 조수들의 용역을 예멘의 지배가에게 제공했는데 이는 관개시설과 농업을 개선시키는데 조력하고 광물자원을 조사하는 일을 돕기 위함이었다.
크레인은 1930년에서 1931년간의 겨울에 짓다에서 이븐 사우드를 방문해서 트윗첼을 파견, 사우디 아라비아가 순례자의 길을 따라 새로운 식수원을 찾는데 조력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러한 노력은 성공했다고 볼 수 없으나 트윗첼은 짓다의 관개 시스템을 복구하고 중요 도로위에 현대적 교량을 건설하고 몇 군데의 훌륭한 광물 매장지를 발견했다.
트윗첼은 짓다에서 하사로, 그리고 바레인으로 아라비아 반도를 횡단한 후에 1932년 1월 호푸프에서 이븐 사우드와 협의했다.
이븐 사우드 왕은 당시 트윗첼에게 석유지질 전문가들과 시추가들을 동원해주기를 요청했으나 트윗첼은 바레인에서의 스탠다드의 시굴정 결과를 기다리라고 권하고 그것이 성공하면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딸리자 크레인과 이븐 사우드는 비용 지출을 종료시켰고, 그래서 트윗첼은 그해 5월 뉴욕으로 돌아와 버렸다.
바레인의 유정에서는 1932년 5월 31일부터 석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트윗첼은 6월에 이븐 사우드로부터 석유 및 광물 사업을 위한 미국 자본을 찾아달라는 요청과 인가를 받았다.
몇몇군데 광물회사에 접근해서 실패한 후에 그는 석유회사 사무실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석유사업을 하고자 하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늘상 해오던 방식으로 흔히 있는 일이었다.
트윗첼은 페르시아만의 한 섬의 유정에서 약간의 석유가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빼고는 그 가공할 프로젝트에 흥미를 끌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을 할 수가 없었다.
페르시아만 연안의 아라비아와 관계된 지질 정보를 입수했다면 고작 몇가지 안되는 자신의 관찰과 내륙에서보다 광범위한 탐사를 했던 H. 세인트 존 B. 필비의 노트 뿐이었다.
그는 상세한 지질구조적 특성을 제시할 수 없었으며 주요한 단층작용이나 그 바레인 섬에서 아라비아 반도 본토에서의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 기타 다른 요소들의 어떠한 증거도 알지 못했다.
광대한 빈 공간에 대해 지어낸 모호한 이야기들이 그가 미국 석유회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전부였다.
트윗첼의 첫번째 접촉은 Texas Company의 테리 듀스였는데 그는 충분히 생각한 후에 트윗첼의 제의를 거절하며 Near East Development Co.와 California Standard를 찾아가 보라고 암시했다.
Near East Development Co.의 스튜어트 모건과 노발 베이커는 상당한 관심을 표시했으나 적선협정이 그들의 참여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트윗첼은 그 다음 걸프사의 뉴욕 사무소에서 가이 스티븐스를 만났고, 걸프사의 피츠버그 본사에서 K.C. 힐드를 만났다.
그러나 여기서도 적선협정이 방해가 되었다.
그들은 스탠다드 캘리포니아 뉴욕 사무소의 A.S. 코리엘에게 트윗첼의 얘기를 했다.
1932년 11월, 스탠다드사는 짓다에 있는 H. 세인트 존 B. 필비에게 전보를 쳐서 이븐 사우드로부터 지질조사 허가를 얻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 지배자는 이권 협상이 있기 전에는 어떠한 조사의 허가도 내주기를 꺼려했다.
H. J 홀리가 트윗첼의 빈약한 지질 정보를 검토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다드 본사에 추천했는데 본사에서는 롬바르디와 다른 간부들이 바레인에서 상서롭게 시작된 사업을 확장하려는 참이었다.
롬바르디와 트윗첼은 1933년 1월 런던으로 가서 스탠다드의 해외담당 대표였던 로이드 N. 해밀튼과 계획을 구체화했다.
해밀톤과 트윗첼은 짓다로 가서 긴 협상 끝에 1933년 5월 29일 36만 평방마일에 이르는 지역에 대한 이권을 따낼 수가 있었다.
그동안 이라크 페트롤룸사의 스테픈 H. 롱리그와 Eastern and General Sydicate의 프랭크 홈즈 소령이 이권을 따내려는 피나는 경쟁을 했지만, 항상 준비가 잘 돼있던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오브 캘리포니아는 금화로 3만 파운드를 선불함으로서 이것이 그 경쟁의 결정적 요소가 된 것이다.
스탠다드는 1933년 11월 델라웨어에 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mpany ―후에 The Arabian American Oil Company(Aamco)가 됨―를 설립해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의 작업을 지휘케 했다.
1936년에 Texas Company가 이 프로젝트 이권의 1/2를 300만달러의 현금과 장차 있을 생산분으로부터 1800만달러를 지불하고 사들였다.
그러나 이 개발지역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에 있었다.
훗날에 이권의 조건 및 지역, 운영회사의 소유권에 있어서, 생산이 개시된 이후에도 여러차례의 수정을 가해야 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Edgar Wesley Owen 著 `Trek of the Oil Finders: a histing of exploration for Petroleum〉


<이승재 칼럼니스트/sjlee44@petro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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