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리뷰/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개발史(1)
에너지리뷰/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개발史(1)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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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개발의 배경


광대한 아라비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은 그 기원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서 세계대전 후까지 20년간 용맹스럽고 과감했던 이븐 사우드(Ibn Saud)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이븐 사우드는 1913년 호푸푸에서 터키의 수비대를 패배시키고 오토만 제국(터키, 13세기말부터 1922년까지) 정부로부터 아라비아만 연안의 알 하사와 내륙의 네지드 지방의 지배자로 인정받았다.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 퍼시 콕 경은 대영제국과 사우드간의 우호협정을 주선했고, 네지드, 하사, 콰티프, 주바일 등의 지역에 대한 영국의 보호를 보장했다.
이 협정은 외국인에게 석유이권을 부여할 때는 영국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이븐 사우드는 전쟁중과 그 후에 뒤따른 조정기에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에 대한 그의 권력을 하나로 묶었다.
그는 회교의 수도인 메카와 짓다항이 속해 있는 헤자즈 지방에 대한 장악력을 획득했다.
1926년에는 헤자즈와 네지드, 그리고 하사와 아시르 등의 속국의 왕임을 선언했다.
이 왕국은 1927년 대영제국과의 조약에 의해 군주국으로 인정됐고, 그 이후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 정부를 유지해 왔다.
이 나라는 1932년 사우디 아라비아로 명명되었다.
이 나라는 홍해 부근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를 제하면 대부분이 사막으로 된 나라이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 이 국가의 수입은 대부분 성도 메카로 통하는 순례자 길의 요충지라는 데 의존했다.
프랭크 홈즈 소령이 이스턴 앤드 제네랄 신디케이트를 대신하여 최초의 하사의 석유이권을 위한 옵션을 얻기 위해 1922년 7월과 8월에 이븐사우드를 방문했다.
그는 1922년 11월 예기치 않게 오자이르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곳에서는 퍼시 콕 경과 이븐 사우드, 그리고 쿠웨이트의 대표가 국경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열고있었다.
앵글로 페르시안 석유회사의 자회사인 다아시 탐사회사의 상무이사인 아놀드 윌슨경이 그의 회사가 석유이권에 대해 협상하기를 원한다는 서한을 이븐 사우드에게 보냈으나 홈즈는1923년 5월에 하사의 석유 및 광물채굴에 대한 이스턴 앤드 제네랄 신디케이트의 독점적 옵션을 획득했다.
홈즈는 “영국왕이 이스턴 앤드 제네랄 신디케이트에 허가한 석유 및 광물이권의 전부, 또는 일부는 앵글로 페르시안 석유회사에 팔지 않는다”는 조항에 동의했다.
1924년 5월에 이븐 사우드와 쿠웨이트의 수상은 오자이르 회의에서 두 나라 사이에 설정한 중립지대에 대한 이스턴 앤드 제네랄의 옵션을 허가했다.
바레인 섬에 대한 순례자들의 초기 관찰이 다소 하사에 관계가 있는 듯 했으나 동부 아라비아의 지질에 관해서는 남아있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1913년 리스터 제임스가 본, 쿠웨이트의 부르간과 바라의 소량의 비투멘 삼출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로서 인근 지역의 석유매장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삼출들은 기타 바람직한 기준들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스턴 앤트 제네럴은 아놀드 하임과 3명의 조력자에 위탁해서 1924년 본토지역의 지질을 조사하게 했으나 그들의 작업은 적대적인 베도윈족들의 방해를 받았다.
그들은 쿠웨이트로 건너가서 바라에서 석유를 품은 물질을 발견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소문난 부르간 삼출같은 것이나 기타 다른 것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임은 1926년에 완성한 그의 보고서에서 페르시아만 쪽 아라비아의 어느 곳을 시추해 보아도 순전히 도박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스턴 앤드 제네럴 신디케이트는 하사 및 중립지대 옵션에 대한 대가지불을 허용하고는 태만해져 버렸다.
이들 옵션은 Gulf Oil Corporation이 이들 옵션과 바레인의 옵션을 1927년 11월 30일 획득하게 되자 몰수당하고 말았다.
Gulf사는 바레인 옵션을 Standard Oil Company of California에 할당할 때도 이들 이권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 회사가 터키 석유회사에 참여한 후 적선협정이 더 이상의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
Gulf사는 1932년 4월 이스턴 앤드 제네랄에 하사와 중립지대에 대한 권리의 주장을 포기한다고 통고했다.
〈Edgar Wesley Owen 著 `Taer of the oil Finders: a histing of exploration for Petroleum〉

<이승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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