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생명체의 열역학
에너지칼럼/ 생명체의 열역학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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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들은 오랫동안 피어있지 않다. 봄이 되면 매화와 산수유로부터 시작해 천지가 꽃의 향연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그루의 나무, 한 송이의 꽃에 주목해 보면 특정의 꽃이 피어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종자와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조금 먼저 피거나 나중에 피어 전체적으로 보면 꽃들을 제법 오래 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송이 한 송이의 붉은 기운은 그야말로 열흘을 가지 못한다. 그뿐이랴. 같은 꽃이라 해도 어제의 그것과 오늘의 그것은 다르다. 절정기를 지나 져가는 꽃을 보면 시간의 덫에 아무런 저항도 소용 없이 꽃은 작아지고 변색하고 약해진다. 며칠 전의 그 화사한 생명력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시골집에 놓인 맷돌이나 장롱도 이제 와서 가보면 어릴 적 보았던 견고한 모습과는 무척 다르다. 작아 보이고 약해보이고 늙은 생물체처럼 보인다. 단순히 그렇게 보일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물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조금씩 소멸되어 간다. 꽃들이 시들어 간다면 개화했을 때의 에너지는 어디론가 이동했을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에너지 보존법칙은 하나의 시스템이 외부와 에너지를 주고받지 않고 고립돼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 안에 있는 에너지는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할 뿐 총량은 일정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 해도 그 이동이 무작위한 방향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산 위의 돌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부서질 수는 있지만 한 번 떨어진 돌이 주위의 에너지를 흡수해 산 위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바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즉 무질서한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꽃을 보면 희망을 느낀다. 실제로 활짝 핀 꽃은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요, 그것이 시들어 가는 것은 에너지를 내쏟고 스스로는 힘을 잃은 상태이다. 꽃마다 마주나기니 어긋나기니 돌려나기니 하여 해있을 때는 질서가 있지만 흩어진 꽃잎들이 규칙적으로 누워 화문석 돗자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모든 사물은 흩어지고 무질서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심도 약속도 새 출발의 다짐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한 해 동안의 사계절을 두고 보면 세상이란 결집된 에너지가 주위로 흩어지고 무질서는 증가해 가지고 있던 한 웅큼의 에너지를 여기저기에 나누어 쓰는 과정처럼 보인다. 일정한 수입을 나누어 생활에 필요한 것들과 맞바꾸어가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이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고 이동은 무질서가 증가하는 상태로 일어난다는 것은 외부와 에너지의 주고 받음이 없는 완벽한 평형상태를 가정했을 때 성립한다. 그런데 하나의 시스템이 외부와 에너지를 교류하고 있을 때, 즉 비평형상태에서도 한 가지 방향으로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일정한 방향을 말할 수 없다보니 주위의 에너지를 흡수해 보다 정돈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바로 생명체의 출현을 에너지의 결집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명체는 구성 요소들이 매우 복잡한 구조를 이루면서 한편으로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체계이며 그 안의 엔트로피가 극히 적다.
 일단 탄생한 생명체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려는 것을 막아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에너지의 공급이 필요하다. 이것이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근거가 된다. 추가적인 에너지의 힘으로 엔트로피의 증가, 즉 구성요소들의 질서를 유지한다고 해도 속도가 느리다는 것뿐이지 조금씩은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오는 능력을 구사할 수 없게 되면 생명력을 잃는 것이고, 죽음은 탄생시에 응축되었던 에너지마저의 상실이요 무질서의 극치이다.
 그러나 한 생명체의 일대기 안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그 생명체의 외부에서는 부단한 에너지의 주고 받음이 있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끔하게 정돈된 주소록을 만들어 쓰다보면 어떤 이는 이사를 가고 어떤 이는 직장이 바뀌고 어떤 이는 무슨 이유인지 이름을 바꾼다. 주소록은 고쳐지고 지워지고 흐트러진다. 마침내는 버전을 바꾸어 새로운 주소록을 만들게 된다. 어느덧 즐겨 돌리던 전화번호마저 기억을 떠나고 질량을 잴 수 없는 그리움만 남는다. 뜻밖에도 우리는 변화에서 에너지의 이동을 생각하기 보다는 시간을 본다. 허무해 할 일만은 아니다. 무질서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변화 속에는 이미 새로운 질서의 탄생이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 꽃들은 어김 없이 진다. 하나의 꽃이 피는 일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하나의 꽃은 그대로 하나의 완벽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다소 병들고 불완전해 보이는 생명체도 나름의 질서를 가진 개체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생명이건 탄생 이후로는 점차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서 건강하고 아름답다.

<김종석 박사/ 한국원자력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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