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리뷰/아메리칸 스타일의 왕조건설 존 D. 록펠러
에너지리뷰/아메리칸 스타일의 왕조건설 존 D. 록펠러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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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풍미한 미국 현상(美國 現象)의 하나로서 자선기금(Philanthropic Foundation)이란 것이 있다.
자선기금이란 개인의 부를 공공의 목적에 적용시키는 법적 사회적 수단을 말한다. 자선적 기부행위는 고대에도 물론 있었지만 20세기 미국에 와서 현상화한 것이다. 이 대규모의 자치적 조직은 교육, 과학, 의학, 약학, 공중보건, 사회복지와 같은 공공 서비스를 지원하는게 목적이다. 그러나 보통은 일반적인 원조를 행하는 조직으로 통한다.
그 법적 형태는 자선 신탁의 형태를 취하거나 비영리 법인의 형태를 취한다. 개인은 유산을 기증하거나 생존시에는 재산을 선사함으로써 이 기금에 기부할 수 있다. 회사나 한 가문은 계속적인 기부를 함으로써 이 기금을 창설하거나 지원할 수 있다.
고대의 이집트, 그리이스, 로마에서는 아카데미나 도서관 또는 지방 자선단체를 지원하려는 단순한 목적으로 자선기금이 설립되었다.
중세 유럽의 전형적인 자선기금은 수도원이나 양로원, 고아원 또는 학교를 운영하는 교회의 지속적 지원을 위해 쓰여졌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상인들이 수많은 특별 자선기금을 설립, 교육이나 지방의 자선단체를 도왔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 기금이 잘못 운영되거나 본래의 목적이 퇴화함으로써 1750년 이후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18세기 경제학자들인 영국의 애덤 스미스나 프랑스의 튀르고 등이 비난자들 중에 들었다.
그러나 자선기금은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근대에 들어서서 이 기금은 미국에서 대형화되고 그 목적이 광범위해지고 활동이 신축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최초의 것은 Smithsonian Institute로서 영국의 과학자인 제임스 스밋슨의 유산에 의해 창설되어 `인간 지식의 증대와 확산'을 목표했다.  이 기금은 1846년에 미 의회가 공식 승인했다. 1867년에는 Peabody Fund가 설립되었다. 영국에서 은행가로 부자가 된 죠지 피보디가 창설자이다. 그 후 앤드류 카네기, 죤 D, 록펠러 등의 자선기금 창설자가 나왔다. 카네기는 3억3천만 달러가 넘는 돈으로 카네기 공사, 국제 평화를 위한 카네기 기부 기금, 기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그런가 하면 가히 아메리칸 스타일의 왕조라 할 수 있는 록펠러 가문은 30억 달러를 기부, 수많은 자선기금을 설립했다. 이 자선기금의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석유에서이다. 자선기금 이야기를 하는 본론은, 한때 세계 석유산업을 지배했던 석유의 왕가 록펠러 가문의 1세대인 존 D. 록펠러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실업가이며 박애주의자이며, Standard Oil사의 창설자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1839년 7월 8일 뉴욕주 리치포드에서 태어나 1937년 5월 23일에 타계했다.
세계 석유산업을 지배했던 그의 Standard Oil사는 미국 최초의 대규모 트러스트이기도 했다.
1860년대 초에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위탁판매업을 하던 그는 당시 펜실베이니아 북서부에서 미국 최초의 유정시추로 인해 오일 붐이 일자 즉각 석유의 상업적 잠재성을 간파하고 1863년에 그의 최초의 정유공장을 클리블랜드 근처에 건설했다. 1865년까지 거의 독점적 정유업 위탁을 도맡았던 그는 당시 클리블랜드에 성행하던 정유공장 중 가장 큰 정유공장을 소유했다. 1870년에 그와 그의 동업자들은 Standard Oil사를 설립, 그 지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 후 계속적으로 정유공장을 매수하고 유통망과 파이프라인 시설을 확보함으로써 1877년에는 미국 전체에서 지배적 위치에 올라섰다. 1881년에는 상기 회사와 이 회사의 이사회가 지휘하는 다른 주의 연합회사들이 최초의 현대적 트러스트를 창출했다. 1880년대에는 유전들을 사들임으로써 Standard Oil사는 거의 완전 독점을 달성했고 록펠러에 대한 적개심은 미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1892년에 그는 자산의 장악력을 지주회사인 Standard Oil(뉴저지)에 이양시킴으로써 반 트러스트적 오하이오 대법원의 판결을 교묘히 벗어났다. 그러나 1911년 미국 대법원은 마침내 Standard의 해체를 명령했다.
 록펠러의 거금의 기부로 1891년에 시카고 대학이 세워졌고, 1897년 이후에 록펠러는 완전히 자선사업에 헌신했다. 그가 설립한 대규모 자선기금에는 의학연구를 위한 Rockefeller Institute, General Education Board, Rockefeller Foundation 등이 있다.
그의 다섯 아들 중 첫째인 존 D. 록펠러 2세는 Rockefeller Foundation의 이사장이 되었고 넬슨 A, 록펠러는 부통령이 되었으며 로란스 스펠만 록펠러는 자연보호주의자로서 두 개의 국립공원을 만들었다. 또 윈스롭 록펠러는 아칸사스 주지사로서 민권 운동을 했으며 데이비드 록펠러는 체이스 맨하탄 은행의 회장이 되었다.
석유왕가의 족보가 이러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석유를 근거로 해 건설된 아메리칸 스타일의 왕조, 존 D. 록펠러 왕국은 석유 문명이 빚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절정을 반영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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