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파업, 심각한 석유 공급위기 전조인가?
에너지칼럼/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파업, 심각한 석유 공급위기 전조인가?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2.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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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들어 국제석유산업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베네수엘라 석유 근로자의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 석유근로자 파업은 현지시간 19일 현재 18일째 계속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그간 소규모 파업들이 있어 왔지만 금번 파업은 유전 및 정유공장의 생산 근로자들이 아니라 전문 관리직들이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베네수엘라 원유생산 감소는 곧바로 국제 원유가격에 영향을 미쳐 이라크 사태 소강으로 안정세를 찾던 국제유가가 12월 16일부터 다시 $30/bbl(WTI기준)을 돌파하였다.
베네수엘라는 금번 파업의 여파로 원유생산은 통산 생산 285만b/d의 10%에도 미치지 않는 26만b/d로 줄었다. 베네수엘라 최대 유전이 위치한 마라카이보호수 일대 유전은 겨우 24만b/d를 생산하고 있으며 동부 모나가스주와 안조아테귀주 원유생산도 2만b/d에 불과한 상태이다. 그리고 여타 유전에서의 원유생산은 완전 중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난 20년 중 가장 낮은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정유공장의 경우 안조아테귀주에 있는 베네수엘라 최대 푸에르토 라 크루즈 정유공장도 정유능력 20만b/d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만b/d를 생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지방 도시들은 현재 석유제품 특히 휘발유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파업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국내 정치의 혼란에 있다. 지난 4월 베네수엘라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좌익 성향인 차베스 정부 타도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이후 차베스정부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사(PDVSA) 직원 물갈이에 들어갔고 이로 인해 능력있는 것으로 평가되던 중간 관리직 직원 수백명이 PDVSA를 떠났다. PDVSA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부패와 무능으로 비난받던 시절에도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효율적인 경영을 해 온 것으로 국제석유산업은 평가하였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경제전체에 혼란이 닥친 경우에도 PDVSA는 관리직과 근로자들이 협력하여 석유수출만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뛰어난 관리 능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쿠데타 시도를 극복한 차베스 정부는 PDVSA 경영진에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인사들과 관리 및 전문기술이 부족한 인물들을 임명하였고 이에 중간 관리층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영국의 저명한 석유 전문지인 ‘주간 페트롤륨 아거스(Weekly Petroleum Argus)’는 차베스의 지지도가 35%정도 밖에 안 되면서 4월부터 시작된 PDVSA의 경영 혼란으로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이 정치화되어 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2002. 12. 16).
현재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파업 중인 근로자들에게 생산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명령해 놓고 있다. PDVSA는 파업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판단 소송을 제기하였고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파업 합법 여부를 심리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에게 일단 조업에 복귀할 것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파업 근로자들은 군인들과 친정부 지지자들이 생산현장을 점령하고 있어 안전 조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생산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파업상태가 계속되면 우선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도 휘발유 부족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카라카스는 파업 기간에도 지방도시에 비해 휘발유 공급이 원활한 편이었지만 조만간 휘발유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런 석유제품 부족은 전반적인 연료부족에 의한 공장가동 중단과 식료품 부족으로까지 연결될 수도 있고 이럴 경우 사회 불안 및 소요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경제의 대들보인 원유수출도 2~3일 후 이면 전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베네수엘라 경제는 전체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파업은 베네수엘라의 전통적인 석유 수출지역인 미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네수엘라 원유의 주 수출 시장인 미국 멕시코만 지역은 베네수엘라 원유와 품질이 유사한 중질 고유황 원유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중동산 대표 유종인 두바이유보다 미국 대표 유종인 WTI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파업영향은 곧 중동산 원유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파업에 따른 공급 차질을 보완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원유와 품질이 유사한 중동산 중질 고유황 원유에 대한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유가는 전체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다.
베네수엘라 파업이 더욱 심각한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는 것은 금번 파업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동시에 진행될 경우이다. 미국은 12월 8일에 마감한 UN의 이라크 군사시설에 대한 재사찰 결과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라크가 UN에 제출한 보고서에 미국이 요구하는 정보가 빠져 있으며 UN이 이미 확보해 놓은 정보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다시 들고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미국은 1월 중에 이라크 공격에 대한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베네수엘라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면 국제석유공급과 국제유가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대서양 원유공급의 핵심인 베네수엘라와 세계 최대 석유공급원인 중동이 동시에 불확실성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현재 베네수엘라 파업으로 세계 석유공급은 약 3% 정도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기존 재고에 의해 실질적인 석유공급혼란은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있을 경우 공급차질은 이 보다 훨씬 악화될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악의 석유공급혼란인 제 1차 및 제 2차 석유공급 위기의 세계 석유공급 차질 물량이 5%에 불과하였다. 단순히 공급 수치만 놓고 볼 때 베네수엘라 파업은 심각한 석유공급 차질 임계치에 근접하는 사건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베네수엘라 사태와 이라크 사태가 쉽게 해결될지 않을 것 같아 국제석유시장 불안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준범 박사
〈한국석유공사 전략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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