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정책 `신뢰성이 生命이다'
에너지칼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정책 `신뢰성이 生命이다'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2.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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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장대비가 계속 쏟아져 전국이 물바다로 변하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조금 아는 것이 병이라고 이젠 큰비만 오면 기후변화와 관련있는 기상이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영국 기상청은 올해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1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던 10개의 연도 중에서 1990년 이후에 9개의 연도가 포함되어 있다.
1990년대 이후로 금세기 최대의 엘니뇨가 세 차례나 일어나면서 전세계에 기상재해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지구의 기후가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해 기후변화협약 제7차 당사국총회(COP7)가 열린 마라케쉬 회의장에선 세계적인 보험회사와 은행의 임원들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최근 엄청난 기상재해가 잦아져서 손실이 막대하다며 기후변화 방지 노력을 촉구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에 비해 최근 대형 기상재해가 4배나 빈발하여 피해액은 7배 늘어났고 보험손실액은 11배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세계의 기상학자들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소비한다면 인류는 화석연료가 고갈되기 전에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IPCC는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기온은 더욱 빠른 속도로 상승해서 21세기 말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최소 2도에서 최대 6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한다.
기후변화 못지 않게 심각한 에너지문제는 에너지원 고갈이다. 1999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1차 에너지소비의 84%를 화석연료가 차지했다. 특히 용도의 다양성, 이용의 편리성에 비해 지역적 편중성이 커서 자원분쟁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석유는 전세계 1차 에너지소비의 36%를 차지할 만큼 세계는 석유에 깊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소비한다면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가채연수는 각각 41년, 170년, 65년에 불과하다. 1,2차 석유파동의 경험에 비추에 보았을 때 화석연료, 특히 석유에 깊이 의존한 사회에서 석유 수급에 작은 차질이라도 빚어진다면 상당한 정지, 경제,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가까운 예로 2000년 OPEC이 원유 감산 의사를 내비치자 유가가 폭등하여 배럴당 30달러가 넘는 고공행진을 해서 세계 경제를 긴장시킨 바 있는데 그 당시 OPEC이 감산하려 했던 1일 100만배럴의 원유는 전세계 1일 석유소비량 8천만배럴의 2%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이었다.
기후변화를 막고 에너지원 고갈에 대비하려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유한 자원인 화석연료의 소비를 크게 줄여야 한다. 유럽연합은 기후변화에 대응해서 이미 화석연료의 소비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촉진하는 에너지정책으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독일은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수요의 6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고 덴마크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수요의 50%를 풍력발전으로 채울 전망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전체 에너지수요 중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였다. 이미 선진각국의 노력에 따라 풍력, 태양에너지, 지열, 바이오매스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원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매년 원자력이 0.5%, 석유가 0.8% 성장하고 석탄은 오히려 0.5% 감소한데 비해 풍력은 매년 24.2%, 태양광발전은 17.3%나 성장하였다. 지난 해 유럽연합 정상들이 모여 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 기후변화를 막고 지탱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2010년까지 유럽연합에서 전력수요의 22%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발표하여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뒷받침했다.
특히 독일은 재생가능에너지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로 꼽힌다. 현재 독일에서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20세기의 낡은 에너지시스템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미 지난 2000년 독일 정부와 원자력산업계는 1년 6개월에 걸친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현재 가동 중인 19기의 원전을 2002년부터 하나씩 폐쇄하여 2020년경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독일 사회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대안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깨끗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을 확대하기로 하고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2001년 한해 동안에만 2079기, 2,659MW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90만㎡면적에 태양열집열판이 설치되고 80MW용량의 태양광전지가 지붕 위에 놓였다. 독일이 이렇게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열을 올리는데는 환경에 대한 고려 못지 않게 경제적 이해도 작용한다. 바로 재생가능에너지분야가 미래의 유망한 산업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풍력발전 누적 설치용량이 원자력발전소 9기에 해당하는 9,000MW를 넘어설 정도로 큰 시장이 형성되면서 독일의 풍력발전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해 풍력발전 내수 시장 규모만 해도 30억달러에 이르렀고 덴마크 풍력회사를 뒤쫓는 독일 풍력발전 회사는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큰 풍력발전기 제조회사인 에너콘(ENERCON)은 종업원이 5천명이나 되고 1만2천명의 협력업체 고용도 창출할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독일 태양에너지산업도 지난 해 매출이 10억달러에 이를 만큼 풍력발전 못지 않게 성장하였다. 다국적 석유기업인 쉘(Shell)사, 독일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지멘스(Simens)도 태양광전지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제 재생가능에너지산업은 성장세가 가장 빠른 산업이자 미래 독일 경제를 이끌어갈 견인차로 각광받고 있다.
뒤늦게 재생가능에너지 불모지 한국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5월 29일 `대체에너지이용 발전전력의 기준가격 지침'을 발표했다. 당시 시민들의 이목이 월드컵이나 6.13 지방선거에 온통 쏠려있어 별로 보도되진 않았지만 이 지침은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이 전체 에너지공급의 0.08%에 불과한 한국에선 매우 획기적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이다. 핵심적인 내용으로 태양광 발전 전력과 풍력 발전 전력을 각각 716.40원/kWh, 107.66원/kWh기준가격에 5년 동안 우선 구매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앞서간다고 알려진 독일에서 적용한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원가를 보장해주는 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산자부의 기대대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런데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최근에는 산자부가 '오버'하는 것 같다. 7월 초에 산자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은 2006년까지 태양광주택 1만호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곧이어 2010년까지 주택 3만호에 태양광발전시설을 보급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갑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해서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올해 몇 집에나 태양광발전시설을 지원할 계획이냐고 문의했더니 10집도 채 안된다고 했다. 내년에도 시범보급계획이 올해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3만호에 태양광발전시설을 보급하냐고 반문했더니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 주셔야죠”하는 답변이 돌아온다. 산자부가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구매 지침에 따라 자연적으로 시장이 팽창하리라고 상상했으면 모를까 예산 확보나 제도적 지원 계획이 미비한 상태에서 보급 계획부터 부풀려 발표한 셈이다. 태양광발전 업체 관계자들은 “어디 이런 식의 발표가 한 두 번입니까,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겠지요”라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한 때 대기업에서 태양광전지를 연구했던 어느 박사의 얘기가 떠오른다. “회사에선 우리들을 사기꾼으로 취급해요. 정부의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계획만 믿고 설비투자 계획을 올렸다가 정부에서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저는 못 믿을 사람으로 낙인 찍혔어요.”
환경과 미래를 위해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려는 산자부의 의지는 환영한다. 하지만 인기에 영합하려는 듯 신뢰성이 떨어지는 계획을 남발하여 시장의 불신을 초래한다면 막 피어나는 재생가능에너지의 싹은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기업의 투자와 시민들의 행동에 신호가 되는 정부의 정책, 신뢰성이 생명이다.


<이상훈 에너지대안센터 사무국장 / 200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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