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石油는 몽상가의 꿈에서…
에너지칼럼/ 石油는 몽상가의 꿈에서…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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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석유시대의 막을 여는 획기적 신화의 주인공인 에드윈 드레이크는 선박 사무원, 호텔 지배인, 철도 승무원 등 석유와는 관계없는 다양한 직종에 종사한 사람이었다. 쉬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일상인들과는 좀 달랐던 그는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 두고 어린 딸과 함께 뉴 헤이븐의 오래된 톤틴 호텔에서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중에 세계 최초로 시추기에 의해 석유를 발견, 생산하게 되는, 일대 거사에 참여해 있던 투자가들의 대표이며,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를 만나게 된다.
드레이크는 저녁 시간이면 호텔 로비의 난롯가에서 험난했던 체험담을 떠벌이고는 했는데, 타운센드는 이야기도 재미 있으려니와 드레이크라는 인물이 풍기는 비상한 면에 매료되어 저 유명한 펜실베이니어의 타이터스빌의 유정 시추를 그에게 일임하게 된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어에 석유가 있다는 확신 아래 거사를 꾸민 최초의 장본인은 죠지 비셀이란 사람이었다.
열 두살 때 자립해야 했던 비셀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기저기에 글을 기고해 학비를 벌어가면서 어렵게 다트머쓰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졸업 후 한동안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교수를 지냈으며, 워싱턴에 가서는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했다. 그는 말년을 뉴올리언스에서 보냈는데, 거기에서는 고등학교 교장과 교육감으로 활동했다.
남는 시간에는 변호사 자격시험 공부를 했으며, 수개국 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프랑스어, 스페인어 및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히브리어, 범어, 고대·현대 그리스어, 라틴어 및 독일어는 읽고 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시기가 왔다. 그는 1853년 건강이 악화돼 고향인 북부지방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서부 펜실베이니어 지역을 지나다가 원시적인 방법을 통해 석유를 채취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때 그는 석유를 이용해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영감을 얻고, 미국의 위대한 화학자의 아들이자, 당시 예일대학의 저명한 화학교수였던 벤자민 실리만 2세에게 석유의 효용성에 대한 분석을 의뢰하게 되는 것이다.
실리만 2세는 학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낮은 봉급에 가족이 늘어남에 따라 부수입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흥행가나 사업가와 손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실용적인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투기적인 사업에 직접 참여했는데, 사업에 성공해 돈을 벌어 ‘과학연구 수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처남이 그러한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실리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 좇아 다니는데, 그것은 과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그도 자신의 정도를 얼마나 벗어난 사람이었다.
이렇게 해서 근대 석유시대를 개막한 세 사람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개략했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은 그들 모두가 외도를 일삼는 기구한 삶을 살았고, 운명에 일대 도박을 거는 대담성을 지니며, 치열한 삶에 도전했다는 것일 것이다.
죠지 비셀이 시작한 타이터스빌의 대도박은 이제 전설처럼 되어 버렸다.
거금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상식을 뒤엎겠다는 이단적인 야망을 담보로 한 그것은 분명 대도박이었다. 땅속에서 석유를 캐다니·····! 당시로서는 미친 짓일 수 밖에 없었다. 죠지 비셀은 분명 꿈을 꾸고 있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는 우연스런 사건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몽상가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어를 지나다 개울에 뜬 석유를 걷어내는 걸 보았을 때 일확천금의 꿈을 꾼 것이라던가, 투자가들을 모집해 펜실베이니어 석유회사를 차리고, 예일대학 교수인 벤자민 실리만 2세에게 석유가 등화용으로 적절한지 분석을 의뢰하고 긍정적 결과를 고대하는 야망의 꿈장이인 그는 분명 현실 감각을 결여하고 있었다.
1856년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죠지 비셀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뉴욕 브로드웨이의 어떤 약국 차양 밑에 서 있었다. 그 약국 창문에는 석유로 제조한 약품 광고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염정 시추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몇 개의 유정탑(油井塔, derrick)이 그려져 있었다. 현실감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꿈속을 헤매는 죠지 비셀에게는 범상하게 보일 리가 없었다. 이것이 그가 시추로 석유를 캐겠다는 광기어린 착상을 하게 되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죠지 비셀에게 다분했던 광기어린 꿈을 우리는 보통 영감이라고 부른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지만 죠지 비셀은 타이터스빌의 대도박으로 상식을 철저히 파괴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자신이 단순한 꿈장이가 아니라 천재임을 입증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상식의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벤자민 실리만 2세가 학자로서 양심을 내동댕이치는 비상식적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개월간의 연구 끝에 성공적인 분석 결과가 기대되는 시기에 그는 용역 1차 지불금을 요구했으나 청구액이 커서 타이터스빌 투자가들이 입금을 못시키자 이에 크게 분개, 연구를 중단할 것을 밝히고 남부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버리고 만다. 투자가들은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투자가 중 한 명이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돈을 변통해 주었고, 최종 연구보고서는 1855년 4월 16일 완료돼 투자가들에게 전달됐다.  실리만 교수의 분석 결과는 펜실베이니어 석유가 비등점이 다양해 여러 가지 제품으로 정제할 수 있으며, 등화용으로 충분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리만의 보고서는 그 사업의 가장 설득력 있는 선전 자료가 돼 투자 그룹은 어려움 없이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실리만은 펜실베이니어 석유회사의 명사가 되는 한편 200주의 지분을 할당받았다.
이러한 실리만 2세의 행동거지는 죠지 비셀과 같은 대단한 몽상가의 꿈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는 이미 죠지 비셀의 꿈에 유인돼 같은 자장(磁場)안에서 똑같이 꿈을 먹는 이단아가 되기를 서슴없이 택하는 것이다.
이제 드레이크 대령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에 대해서는 허무맹랑한 속설이 분분하다. 가령 ‘대령’이란 말을 놓고 난봉꾼인 드레이크가 자칭 대령이란 칭호를 사용했다느니, 심지어는 드레이크가 퇴역 군인이니 하는 등이다. 그러나 그럴만도 하다. 전설이란 위장되고, 부풀려지고, 아예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둔갑하기가 일수이니까 말이다.
전설이란 그런 것이다. 은행가 제임스 타운센드가 타이터스빌 유정 시추 총책임자로 천거한 드레이크는 철도 승무원 무임승차권을 갖고 있어 사업에 큰 도움이 됐다. 타운센드는 드레이크를 타이터스빌로 보내기 전 그곳으로 ‘드레이크 대령 귀하’라고 주소를 적은 몇 통의 편지를 미리 발송한다. 이 기발한 착상은 대단한 효과를 나타낸다. 1857년 12월 드레이크가 우편마차를 타고 타이터스빌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 주민들로부터 퇴역 대령으로서의 존경스런 환영을 받은 것이다.
1859년까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계속된 타이터스빌의 시추작업은 마침내 죠지 비셀마져 절망에 빠지게 한다. 1859년 8월말 타운센드는 마지막 송금을 하면서 모든 것을 청산하고 되돌아 올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드레이크가 아직 이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던 1859년 8월 27일 토요일 오후, 마침내 타이터스빌의 땅 속에 숨어 있던 엄청난 양의 석유가 정체를 드러내는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인 에드윈 드레이크 역시 꿈의 사람이었다. 기대할 수 없는 결과에 끈질기게 자기의 고집을 세우는 그는 확실히 현실보다는 꿈을 택한 사람이 분명한 것이다. 근대 석유시대는 어쨌든 이러한 몽상가들에 의해 막이 열려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것이다.
드레이크의 석유 발견 소식을 듣고 조지 비셀도 시간을 다투어 타이터스빌에 도착했다. 그는 인근의 오일 크리크(Oil Creek) 주변의 농장을 임대하고 구입하는데 수십만 달러의 돈을 퍼부었다. 그는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곳에서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요. 모든 사람들이 거의 미친 듯하며, 그러한 광란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소. 서부 전체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으며 석유가 나올만한 땅에는 엄청난 가격이 매겨지고 있소”라고 적고 있었다.
비셀은 지난 6년 동안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제 우리는 성공했지만, 그 동안은 기진맥진해 있었고,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 이제는 큰 돈을 벌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비셀은 실제로 거부가 되어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석유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은 석유 샘플병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다트머쓰 대학에 체육관을 기증했다. 그는 체육관에 6개의 볼링 경기대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것은 그가 대학생 시절 볼링에 빠져 있었을 당시 시설 부족으로 연습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셀은 만년에 “그의 이름은 미국 대륙 어느 곳에서나 석유 종사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큰 경제적 위험을 감수해가며 이 사업에 참여했던 은행가 제임스 타운센드는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영예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뒷 날, “모든 계획은 내가 제안했고, 그 제안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금을 모으고 보내는 것도 내가 했다. 만약 내가 그때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석유는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내 본위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실일 따름이다”라고 그 때의 비통한 심정을 글로 썼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내가 경험했던 그 고통과 고민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드레이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는 석유매입상이 되어 석유 주식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월스트리트에 있는 한 회사에 동업자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866년에는 전 재산을 날리고 거의 폐인이 되어 병고와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마침내 1873년 펜실베이니어 주정부는 석유사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소액의 종신 연금을 주기로 하였다. 말년에 그는 계속 병고에 시달렸지만 이것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드레이크는 자신이 한 일을 역사에 남기려고 애썼다. “나는 두드려 박는 파이프를 고안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물이 가득 찬 지역의 땅 밑을 뚫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추를 통해 유정을 발견하였다. 만일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금세기의 탄화수소시대 도래를 예언하는 대사건이 막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고난의 여정을 즐거움으로 치부했던 이들이 그 초긴장 상태의 굴레를 벗어나 저 세상에서나마 편안한 안식의 상태 속에 행복해 있기를 빌 뿐이다.
그런데 드레이크 대령이 벌인 역사적인 이 대 사건은 오일 맨(oil man)과 석유산업의 성격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는데 또한 의미가 있다.
드레이크 이후 석유의 역사에서는 숱한 영웅군(英雄群)들이 할거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존.D. 록펠러를 기점으로 해 오일 맨들은 기업군에 흡수돼 버렸다. 석유 상류부문(upstream)이 퇴조하고, 하류부문(downstream)이 석유산업의 중점사업이 되어가는 추세에서 이들 오일 맨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의하면 신과 인간 세계의 끝날(日), 즉 ‘신들의 황혼(Ragnarok or Doom of Gods)이 있었다.
‘신들의 황혼’은 10세기 말의 아이슬랜드의 시와 13세기의 서양의 산문에 묘사돼 있다. 이 두 가지 원천에 의하면 신들의 황혼은 잔인한 여러 해의 겨울과 도덕적 혼란에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침반의 모든 지점으로부터 임박해오는 거물들과 소물들이 신들을 공격하고, 신들은 그들을 대적해 영웅처럼 죽음을 맞는다. 태양은 암흑으로 변했고, 별들은 사라졌으며, 땅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한참 후에 땅이 다시 솟아올랐다.
발할라(Valhalla)궁전에 살았던, 전쟁의 신이었고, 영웅들의 보호자였으며, 시인들의 신이며, 기묘자였던 오딘(Odin)신과 그의 아내 프리그(Frigg) 사이에서 난 순진한 아들 발데르(Balder)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서 황금지붕의 큰 건물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석유의 시대, 즉 탄화수소의 시대가 끝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주) 석유 상류부문(upstream)은 석유산업에서 탐사, 개발, 생산 등 의 단계를 말하고 석유 하류부문(downstream)은 정제, 유통, 판매 등의 단계를 말한다.

이 승 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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