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블록체인을 만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에너지, 블록체인을 만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8.05.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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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4주년 특집] 에너지 시장의 새물결 ‘블록체인’

[한국에너지신문] 블록체인은 최근 뉴스에 나온 것처럼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분야에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에너지 프로슈머 등장과 확대가 더 쉬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력 회사와 각 가정 등 에너지 시장의 행위자들이 재생에너지를 투명하면서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 발전량 조절 어려운 재생에너지, 생산-소비 균형 맞춰

블록체인 에너지 거래 개념도 
블록체인 에너지 거래 개념도 

블록체인(Block Chain)은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Chain)’한 것이다. 이 블록에는 일정 시간의 거래내역이 담겨 있다. 이를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된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해 거래의 위·변조를 막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여기에 저장되면 누구도 임의로 수정할 수 없고, 누구든지 변경 결과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

풍력과 태양광, 태양열 등의 재생에너지는 발전량 조절이 어렵다. 햇빛과 바람은 인간의 통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발전량이 적은 경우는 신뢰할 수 있는 수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가동해 부족한 양만큼 보완하면 되지만, 발전량이 너무 많으면 대처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에너지 분야에 도입될 여지가 생긴다. 이를 최근 들어 ‘에너지 블록체인’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 에너지 거래 방향과 주체 자유자재 전환

에너지 블록체인은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원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술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거래 방향은 항상 남는 쪽에서 부족한 쪽으로 흘러가므로, 일반 주택의 에너지가 남아도는 시간에는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 다소비 시설로 소비가 집중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구나 공급자가 되고, 누구나 수요자가 돼 하나의 전력망 안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거래 그 자체가 쉬워지는 것은 물론, 거래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계약과 정산 자체가 서류나 화폐가 아닌, 계량된 에너지 그 자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발전 설비를 공유하거나, 기업이나 단체, 또는 마을 단위에서 에너지 연합체를 만드는 일이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에서 모아진 에너지 데이터는 수요 예측에 활용돼 발전소는 필요한 만큼만 지을 수 있게 된다. 개인별 에너지 사용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각 가정이나 가구에 발전 설비를 맞춤형으로 설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에너지 블록체인에 현실적인 장애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블록체인이든 신재생에너지든 아직까지는 돈이 많이 드는 기술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간헐성’이 계속해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고, 작업을 증명하거나 블록체인망의 보안을 유지하는 데에 비용이 들 수도 있다.

우청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원에 따르면 에너지 블록체인 유형은 5가지로 P2P전력거래, EV 충전 및 공유, 에너지 데이터 활용, 에너지 공유, 탄소자산 거래 등이다. 그에 따르면 에너지 블록체인 유형 중에서 전력거래 P2P, 사례가 가장 많았고 블록체인이 에너지 분야에 도입되면 에너지 산업의 가치사슬 변화가 일어난다.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력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개인 건물 간에 거래할 수 있게 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이고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새로운 전력, P2P거래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된다. 중앙집중형 전력거래방식에서 블록체인 기반 분산형 전력거래방식으로 전환되면 전력거래 중개자 역할을 했던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고 에너지 프로슈머의 역할은 커지게 된다.

일례로 제너럴일렉트릭(GE)은 프랑스 남부 카로(Carros)에 스마트 태양광발전 송전망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마을의 주택은 자가발전소인 동시에 남는 전력은 판매된다. GE는 프랑스 송전망 운영사인 에네디스(Enedis)와 공동으로 가정집과 상업용 건물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수요반응(DR) 기술을 도입해 전력망 전체에 전기를 저장하는 설비를 설치했다.

전력망에서 발생하는 수요를 예측하고 일기예보를 소비 정보와 결합해 GE의 분산에너지 자원 관리(DERM) 소프트웨어로 분석한다. 한 마을은 에너지 프로슈머가 모인 마이크로그리드 단위다. 낮에 사람이 집에 없을 때 주택 소유자는 가정에서 발전한 전력을 전력 수요가 높은 기업에 판매하고, 귀가 후에는 인근의 축전지나 전기 자동차, 또는 에너지 가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으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수 있다. 모니터링 시스템이 수요 발생 시점을 관찰하고 있다가 즉시 가상화폐로 전력을 사들이는 것이다.

■ P2P 전력거래, 에너지 거래와 분배의 개념을 바꾸다

에너지 블록체인 유형 (자료 : 우청원 ‘에너지 블록체인 도입방안 연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8.4.9)

미국에서는 브루클린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에서 생산한 태 양광발전 전기를 이웃 사이에 거래하는 에너지블록체인이다. 50가구 주민들이 자기 주택에 설치한 태양광 설비에서 발전된 전기를 쓰고 남는 전기는 팔고 있다.

스마트 미터기에서 실시간으로 전력 발생량과 거래량이 기록되며, 각 가정의 구성원들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를 볼 수 있다. 서비스회사는 수수료를 걷고 미터기를 판매하며, 전력회사는 운영 수익과 마이크로그리드 시공 관련 수익을 얻는다. 에너지 프로슈머는 전력을 거래할지, 에너지저장장치에 저장할지, 가정에서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호주 에너지 기업인 파워 레저(Power Ledger)는 최근 블록체인으로 개인 간 전력 판매를 허용하는 시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이더리움 기반의 암호화폐도 개발하고 있다. 승인된 사람만 이 판매망에 들어올 수 있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거래를 중개하고, 총전력량이 실제 송전 용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전력거래, 전기차 충전, 탄소 거래 등 에너지 전 분야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더리움 기반의 토큰 또는 코인은 전력거래의 안전성을 담보해 주는 또 하나의 수단이다.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는 개발자, 호스트, 참여자 등 모두에게 분배된다.

중국의 에너고(Energo)는 에너지 블록체인 분산앱을 개발해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전력거래를 하는 분산형 자율 에너지 시스템이다. 에너고는 일반 가정이 전력 소비량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 착안해 에너지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공유하는 것을 제안했다.

참여자는 소비량과 거래량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다. 에너고 시스템도 복잡하지는 않다. 태양광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는 마이크로그리드 저장시설에 보관하면서 스마트 미터에 기록된다. 소비자와 공급자는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입찰을 진행하고, 스마트 계약에 의해 거래가 승인되면 저장된 전력을 공급받고 판매된 전력량 내역은 분산 장부에 기록된다. 이들은 호주와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확장하고, 획득한 토큰으로 전기차 충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설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태양광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암호화폐 솔라코인(SolarCoin)을 제공하고 있다. 인증을 받는 태양광 발전 주택만 받을 수 있는 이 코인은 1㎿h 당 1코인을 지급해 다른 암호화폐나 신용화폐로 교환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개인, 가정, 기업의 에너지 데이터를 분산원장에 기록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거래소 모델을 대체하고, 발전사와 소비자 간의 거래내역을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해 공유하고 있다. 일조량과 전력소비량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수요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데이터 자체를 거래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 개도국에 에너지 공급하고 기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에너지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국가에 에너지를 공유하기 위한 시스템이 추진되고 있다. 수급 예측과 가격 폭등을 막으면서 투명하게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기부받은 비트코인을 제공해 학교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비트코인으로 전기와 가스, 유류 등을 살 수 있어 비정부단체(NGO)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대체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지로 등 중간 비용을 공제할 수 있고, 요금을 자동으로 지불할 수 있다.

덴마크에서도 남아공과 유사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돕고 있다. 특히 태양광발전시설은 공유되며, 주 또는 월 단위로 결제하다가 50회 이상 결제하면 장비를 영구 소장할 수 있도록 했다. 거래 및 결제 내역에 따라 신용 등급을 올려 주어 상위 등급자는 의료보험과 교육프로그램을 제공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탄소 배출권거래제나 사용후핵연료 관리, 발전소 데이터 보안 등 에너지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다. 중국에서 IBM과 에너지블록체인랩스가 진행하고 있는 탄소자산 거래 사업은 거래 주기를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에너지 블록체인은 단기적인 사업이나 특정 지역에 실증사업을 도입하는 정도로 매우 간단하고, P2P 이외에는 사업 모델이 모호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 시설을 확충하고, 에너지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고, 전력판매제도를 개방하는 등 다양한 환경 정비가 이뤄진다면 에너지 블록체인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내에서도 한전과 민간기업 등이 블록체인 관련 시범 사업을 벌인 사례가 있다. 한전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P2P 전력거래와 전기차 전력거래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했다. 에너지 정보기업인 이젠파트너스도 블록체인 기반 소형 건물 에너지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수요 반응량을 측정하고 검증하면서 이 데이터를 분산원장에 공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요관리사업자와 한전 간의 거래 신뢰성을 높이고, 비용과 정산시간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우청원 연구원은 “블록체인 기반 P2P 전력거래 도입을 위해서는 국내 전기사업법의 개정과 블록체인의 사후 규제방식 도입, 분야 특성에 최적화된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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