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신문]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꽤 잘나가는 편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영화는 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의무적으로 우리 영화 상영비율을 정해 놓고 있었다. 극장마다 외국 영화 일색이었고 우리 영화는 맥을 추지 못했다.
지금은 부산영화제와 같은 국제적인 영화제도 있고 외화를 압도하는 국산영화가 바람몰이를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떻게 우리 영화 산업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을까? 산업자원부에서 정년을 하고 퇴임하여 어느 협회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금으로 말하면 영화를 관장하는 문화부는 이른바 필름을 칼질하는 것 밖에 몰랐다. 문화부의 영화담당 옥 모 과장은 영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해서 옥 모과장이 생각해 낸 것이 산업발전을 맡고 있는 산자부에 부탁을 했다. 자존심을 꺾고 부탁하는 타 부처의 일을 산자부는 흔쾌히 받아들여 6개월 동안 작업을 하여 문화부로 넘겼다. 이때 산자부가 만든 정책이 ‘영상산업진흥책’이라고 한다. 영화를 만들고 판매하는데 관련한 모든 분야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전체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문화부는 산자부가 만들어 준 정책에 감복하여 산자부 장관을 상석에 모시고 정책안을 두 손으로 받았다고 한다.
영상산업진흥안이 문화부로 넘어가자 영화 업계의 한 인사는 산자부의 관계 인사를 모두 초청하여 ‘자기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한 턱 내기도 했다고 한다. 옥 모 과장은 그 이후 차관까지 오르고 물러났다. 우리나라 영상산업은 옥 모 과장의 열린 마음으로 오늘의 성과를 얻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을 전해드리지 못해 송구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인사는 옥 모과장의 큰 마음을 몇 번이고 칭찬하였다. 부처 이기주의가 만연한 우리 공무원 사회에서 자신을 낮추고 타 부처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짧게나마 이런 일화를 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바람이 부는 한류도 영상산업의 진흥에 그 기반이 있다. 한 사람의 살신성인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감사할 따름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인이나 개인의 소개가 매일 신문 지면을 메운다. 결코 작지 않은 우리 주변의 성공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