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신문] 정부가 원전해체를 원전산업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2035년까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0% 달성과 세계 5대 원전해체 선진국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 원전해체 글로벌 시장은 2030년까지 123조원으로 전망되며, 향후 50년 이내에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원전 전체가 해체된다면 400조원 이상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80% 기술 확보…’21년 100% 목표
고리1호기·월성1호기 기반 연구개발 강화
정부, 연구소 설립 추진·지자체선 인력 양성
기계연구원 등 원격해체 시스템 개발 나서
시간·비용 많이 소요…방폐장 문제 해결돼야
현재 세계 각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으로 운영 원전 453기, 영구정지 원전 170기가 있다. 해체 중이거나 완료된 원전은 미국 35기, 영국 30기, 일본 18기, 프랑스 12기, 독일 9기, 러시아 7기, 캐나다 6기 등이다. 2020년대에는 260여기의 설계 수명이 도래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해체시장은 더욱 커지게 된다. 국내 역시 2030년까지 원전 12기의 수명이 종료된다.
가동을 멈춘 원전은 제염, 절단, 폐기물 처리, 부지 환경복원의 순서로 해체 작업이 이뤄진다. 세계적으로도 상업용 원전해체 경험을 통해 관련 기술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 상업용 원자로를 해체 완료한 경험이 있는 국가는 미국과 독일뿐이다. 일본, 러시아, 불가리아, 스위스, 스페인 등 국가는 연구형 원자로 등 소형 원자로를 해체한 경험이 있거나 상업용 해체가 진행 중이다.
국내 첫 상업용 원전해체 대상은 고리1호기다. 고리1호기는 2022년 해체 절차를 시작하면 2025년 12월까지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한다. 이어 2031년 1월까지 부지복원에 들어가 2032년 12월 해체를 종료한다.
국내에서는 연구용 원자로를 해체해 본 사례가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옛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가동되던 ‘트리가 마크(TRIGA MARK)’ 2호기와 3호기를 해체했다. 3호기의 경우 1972년부터 1995년까지 24년간 가동되다 해체됐다.
용량이 상업용 원전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한 2㎿급의 소형 연구용 원자로였지만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12년에 걸쳐 17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됐다.
소형 연구용 원자로 해체에 이 정도의 시간과 비용이 든다면, 상업용 대형 원자로를 해체하는 데에는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앞에 설명한 해체의 전 주기를 모두 다 거칠 경우 최소한 20년 정도의 시간이 든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최근 고리1호기의 해체기간을 10년으로 설정했지만, 당초 한수원은 15년의 기간을 설정했다.
산자부는 지난 2012년 기준 원전 1기당 해체 비용을 6033억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원전 1기를 새로 짓는 데 드는 비용의 20~30% 정도다. 그나마 이 비용은 최소로 산정됐다는 의견이 업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원전을 해체하는 데에 해체 선진국들이 들인 비용은 평균 6500억원에 이른다. 특히 미국은 7800억원, 일본은 9600억원 정도다. 한수원이 매년 충당부채 형태로 원전해체 비용을 적립하고 있지만, 2012년까지 4000억원 정도였던 것을 현실화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앞으로 해체 연구가 끝나고 해체 작업을 실제로 시작하면 더욱 많은 비용을 적립해야 할 수도 있다.
■ 핵심기반 기술 38개 중 28개 확보…고리1호기 해체 비용 1조 경제효과 7500억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원전해체 작업을 해낼 수 있는 핵심 기반기술 38개 중 우리가 확보한 것은 28개다.
해체 기술 보유 수준은 선진국 대비 약 80% 수준으로, 나머지 10개 기술은 2021년까지 연구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해체산업의 초기시장 창출을 위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해체물량을 조기 발주하고 연구개발을 강화할 방침이다.
원전해체 전문기업 육성을 위해 전문인력 양성과 자금지원을 강화하고, 지역산단 등을 중심으로 원전해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원전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주요국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향후 단독진출을 목표로 하는 ‘해외진출 3단계 전략’을 추진한다.
한편 원전해체연구소의 추진과 전문기업 확인제도 도입, 원전해체 세부기준 등을 조기 마련해 해체기술표준 개발 등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부산·울산 경계지역과 경주에 2021년까지 들어서는 원전해체연구소를 산업 육성의 구심점으로 삼아 원전기업의 일감을 창출하고 주변지역 경제활력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고리1호기 해체에 필요한 인력은 1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소요기간은 약 15년, 비용은 1조원, 경제유발 효과는 75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먼저 부산시와 울산시는 미국 아르곤연구소 연구진을 초청해 기업인과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원전해체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부산대에는 원전해체엔지니어링과 등을 신설하기로 했다.
울산시는 울산과기원 원자력공학부, 국제원자력대학원대, 울산대 등을 중심으로 원전해체 인력을 육성한다. 울산시 관내의 원전해체관련 기업들을 집적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경북은 지역 5개 대학에 수요자 맞춤형 원전해체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한다. 또한 울진원자력마이스터고, 경주 원전현장 인력양성원 등을 중심으로 원전해체기능인력도 육성한다. 부산대, 울산과기원, 경북테크노파크 등이 경북도내 원전 관련 기관과 협업해 원전 중소기업 경력자를 대상으로 해체 관련 교육도 실시한다.
■ 원전 원격 해체 시스템 개발…레이저 수중 절단·플라스마 절단 기술 등 동원
원전해체가 안전을 위해 원격으로 이뤄지는 만큼 국내 연구진들이 이를 위한 기술 및 시스템 개발에도 착수했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산기계기술연구센터 레이저기술산업화연구단 서정 박사 연구팀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원격해체 시스템 가상 운전 기술 개발 사업 총괄기관에 선정됐다. 해당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2년까지 국비 37억5000만원을 투입해 진행한다.
기계연 연구팀은 방사능 오염 같은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원전 원격해체 시스템 가상 운전 기술을 만들 예정이다. 레이저 절단을 비롯해 플라스마·전기 아크·기계적 절단 등 기술이 구현될 계획이다.
실제 작업환경과 유사하게 구축한 시뮬레이터에서 작업자가 훈련할 수 있는 모의훈련 프로그램과 해체 시나리오 등도 설계한다.
이번 사업은 기계연을 비롯해 한양대·부산대·상명대·한전KPS·에이치케이·율시스템 등에서 참여한다. 기계연 연구팀은 이미 지난해부터 국내 최대 출력인 20㎾급 수중 레이저 절단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 블루오션에는 위험요소도…최소기간 20년 고준위 처분장 문제 걸림돌
업계와 정부, 지자체가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시작했지만, 원전해체는 블루오션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위험 요소도 상당하다.
원전은 해체되기 전까지는 수천도의 열을 내는 하나의 불덩어리다. 연소가 아닌 핵분열이라는 특이한 과정으로 열을 내기 때문에 한 번 운전을 시작하면 정지하기가 어렵다. 영구정지를 했더라도 사람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냉각되기 위해서는 5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해체기관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해체 인허가를 받는다. 인허가 후에 화학 제품을 투입해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 원격 장비를 이용한 절단 및 철거, 방사성 폐기물 처분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에 최소 2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모든 과정을 거친 뒤 환경 복원을 한 뒤에도 잔류 방사능을 검사해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 됐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미지수다.
과정 가운데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지만, 특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부지를 구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주에 있는 국내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 데서부터 실제로 들어서서 임시저장고 처분을 시작하기까지는 20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1·2차 저장고를 실제로 짓고 본격적으로 처분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준위 방폐물의 경우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더구나 이웃나라 일본도 도카이원전이 지난 2001년부터 해체 작업을 하고 있지만, 저준위 처분장조차 찾지 못하면서 작업이 난항에 빠졌다.
고준위 처분 문제는 지금껏 정치·사회적 갈등에 밀려 국내에서도 35년 넘게 장기 표류해 온 미해결 국책사업이다. 정부는 최근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의견수렴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인사 15명 이내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호선에 의해 선출한다. 정부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식으로 재검토를 추진하기 위해 원전지역·환경단체·원자력계·갈등관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운영했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공론화과정을 거쳐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한 바 있다. 2028년까지 영구처분시설 부지 확보, 2035년 통합형 중간저장시설 운영, 2053년 영구처분시설 운영 등이 골자였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를 결정했다. 지난 정부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환경단체 위원이 불참하는 등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고 미흡했다는 판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