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원개발 유관 공기업, 이름 지우면 책임도 지워진다
해외자원개발 유관 공기업, 이름 지우면 책임도 지워진다
  • 한국에너지
  • 승인 2018.03.1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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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너지신문] 산자부 해외자원개발 혁신태스크포스(TF)가 지난주 초 중대한 권고안을 내렸다. 내용은 광물자원공사를 폐지하고 유관기관과 통합하라는 것이다.

통합대상은 아직 선택하지 않은 상태지만, 주변에 있는 유관기관들은 벌써부터 겁을 먹었다. 이런 기조대로라면 TF는 아마도 이달 말까지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에 대한 통폐합안도 낼 것으로 예상된다.

TF의 안은 2016년에 나왔던 구조조정 방안 중 하나다. 당시에도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와 석탄공사의 통폐합안이 유력한 안으로 제시됐다. 2016년 이전에 계속해서 나왔던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한 것 외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TF는 설명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손실이 커지는 이유를 살필 사이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청산 아니면 통폐합하자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TF를 꾸릴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더구나 해외자원개발을 아예 하지 않도록 하고, 그것을 민간에 그냥 이전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통폐합이 과연 유용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과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으로 주공의 부실을 토공이 메워주기는 했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 그리고 광물공사와 다른 공공기관과의 통합이 현 토지주택공사(LH)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한국지엠 사태에서도 이들 공기업 처리 방안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다. 글로벌지엠은 한국지엠에 부실을 이전했다. 마찬가지로 해외자원개발 공기업에서 이 같은 부실을 냈다면, 이 부실이 이전된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고리를 샅샅이 규명해 내지 않고 각 회사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다면 의도와 달리 도리어 해당 사업의 전·현직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해외자원개발이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문제가 됐던 것은 실체가 없었던 사업을 마치 해외에서 큰 사업을 하는 양 부풀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더 따져 물어야 한다.

부풀리다보니, 없는 성과를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작은 성과를 큰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고, 끊었어야 하는 일을 질질 끌고 왔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통폐합과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묻기가 더 어려워진다. 때릴 거라면 살려 놓고 때려야 한다.

전 세계 석유·가스·광물의 주요 광구는 이미 중국·미국·러시아·일본 등에 근거를 둔 글로벌기업들이 이미 다 차지했거나 도전장을 내밀어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그들과 대등하게 되겠다고 규모를 키우는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국내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 국내 수요와 연결된 해외 수요는 어떤지 상세하게 조사한 뒤에 장기 및 중·단기 계획을 세워 대응하는 것이다. 당장 어떤 공기업을 청산하거나 통폐합하는 것은 이런 기회를 더 이상 주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부실해진 이유가 명확하고, 그 이유를 고치고자 한다면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은 아닐지 따져 보아야 한다.

청산과 통폐합 대상이 되는 공기업들 역시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이 많다. 과연, 이 사업을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수익이 보장될지, 된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등이 그것이다.

또한,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방안을 심도 있게 세우고, 사업 우선순위라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시중에는 국제 원유가격을 예로 들며 자원시장은 알 수 없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다’는 핑계로 국민의 세금을 경영재원으로 투입하는 공기업이 주먹구구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없고, 그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해당 공기업이 결론을 낸다면 결국 청산이나 통폐합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 길로 가기 전에, 아깝기는 할지언정 해당 조직은 물론이고 세금을 내서 보조해 주고 있는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자구책을 스스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TF 역시 본분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해당 공기업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를 결론 내려 권고하는 것은 차선이다. 없애 놓고 끝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보다는 국가가 공기업을 통해서 하려는 해외자원개발의 가능성과 방향을 심각하게 되돌아보고, 올바른 방향 하에서 장기 과제, 중단기 과제를 내놓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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