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행정 신뢰
[전문가 칼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행정 신뢰
  • 정환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8.03.0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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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삼 책임연구원

[한국에너지신문] 정부의 행정행위에 행정계획(行政計畵)이 있다. 이는 최선의 방법으로 특정 공공행정 목적의 달성을 위해 미래에 있게 될 행위들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담는 산물로써 행정 활동의 기준을 의미한다. 

이 정의에 비추어 보면 정부가 2017년 12월 29일에 공고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계획’)도 행정계획으로 여겨진다. 이 계획은 ‘전기사업법’에 정한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법률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 확정한 후, 주무장관의 공고로 드디어 구속적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정계획의 입안에는 적절성, 조화성 그리고 명확성의 원칙을 갖추어야 한다. 이번 계획을 세 가지 원칙에 비추어 보면 정부의 행정 신뢰에 대해 의아함을 금하기 어렵다. 

우선, 이 계획은 에너지-환경 분야 국정 운영계획의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를 그대로 담은 듯하다. 계획 수립의 당초 목표인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적해를 찾으려는 노력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번 계획이 수급 안정과 경제성 중심에서 안전과 환경성을 더 강조했다고 하더라도, 행정계획 수립에 있어 갖추어야 할 적절성 원칙은 부족하고 과도한 조화성은 종속성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생태론자는 탈원전·탈석탄의 에너지전환은 이 정부에서 사라졌다고 불만이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기술적 판단을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고 있다고말하고 있다. 또한, 전격 도입하겠다는 신재생 기술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 있다. 

다음으로 이 계획은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자원의 조달 역량과 사회적 비용 관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미봉책으론 최대 전력수요를 낮추고 유휴 발전소를 최대한 활용하면 되지만, 결국 어디엔가 새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그러나 신재생 개발에 현저히 불리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문제이다. 사용부지 당 에너지 밀도가 원자력에 비해 100~500배 떨어진다. 

또한, 발전원 전환에 따른 사업주 좌초 비용을 포함해 환경·정책 비용 등 사회적 기회비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고려에는 이 비용의 추산과 책임의 귀속이 담겨야 한다. 이 계획이 적절성과 명확성을 충분히 담고 있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중 가장 두드러지는 논쟁은 역시 전력수요 예측의 적정성에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시발점은 전력수요 예측이기 때문이다. 계획이 공고된 지 한 달여 만에 벌써 열 번이나 수요감축 요청이 내려졌다. 최대 전력수요에 전력 공급량이 따라주지 못하면 바로 대규모 정전(black-out)이 발생한다.

수요감축 요청은 전력의 수요관리를 통해 발전소 과다 건설을 막자는 취지의 제도로 불요불급한 경우에 대비해 마련된 제도이다. 전력망 관리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유용한 제도이다.

하지만 수요감축 요청이 2014년 도입 이후 세 번밖에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이번의 연이은 요청은 전력수요 예측에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사는 격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이번 행정계획을 두고 정치공학적 제약식이 과도하게 반영된 건 아닌지 의구심도 불러일으킨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02년 이래 2년마다 수립되어 온 전력부문의 기본계획으로, 지금까지 안정적 전력 수급의 근간이 되어왔다. 계획에 담긴 내용의 적절성이 조만간 확인되거나, 이번에 불거진 논쟁이 다시 2년 뒤 수립될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개선에 교훈이 되길 바란다.

우리 미래사회의 전력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행정 신뢰를 듬뿍 받는 계획으로 계속 발전해 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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