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에너지 중소기업 노하우에 대가 지불해야
[전문가 칼럼] 에너지 중소기업 노하우에 대가 지불해야
  • 함경선 전자부품연구원 수석연구원
  • 승인 2018.01.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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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선 수석연구원

[한국에너지신문] 오늘날의 산업 사회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 ‘탐색’과 그렇게 얻은 기회를 안정적으로 ‘고도화’하는 프로세스의 반복으로 발전해 왔다. 새롭게 주목받는 기술들이 원천기술 단계에서는 대학과 연구기관에 의해, 상용 기술 단계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들에 의해 사업화를 거치면서 성숙된 산업으로 진화해왔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평판디스플레이는 이와 같은 혁신의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LCD 기술로 성장하여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중소기업이 만들어낸 카메라 영상처리 기술 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실적을 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에너지 산업도 다르지 않다. 화석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이 쇠퇴하면서 다양한 에너지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 ESS, 수요관리 등 에너지의 공급과 저장, 소비의 가치사슬 위에서 다양한 혁신들이 출현하고 있고 어느새 우리 삶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역동적인 탐색 단계의 중소기업과 안정적인 성장 단계에 필요한 대기업의 역할이 그리 원활해 보이지 않는다. 몇몇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으로 저가 출혈 경쟁을 조장하고 있고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하는 하드웨어 장치 위주의 제도적 시스템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태양광 발전과 ESS가 부품들로만 이뤄진 기계 덩어리라면 문제 삼을 수 없겠지만, 현장에 필요한 고도의 에너지 시스템은 노하우가 반영된 기획과 운영기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소프트웨어적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하우로 무장된 ‘탐색의 주역’들이 자본에 떠밀려 사지로 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문제의 시작은 에너지 신기술 시장이 대기업이 매력을 느낄 만큼 충분히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돈 되는 것을 독식하려는 자본의 탐욕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 욕심은 잠재적인 경쟁자를 없애려 하고 중소기업은 애써 만들어 놓은 시장을 지키려 하지만 버티기는 점차 어려워진다.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에 의해 자행되는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게임이 필요한 시기다. 우선, 대규모 자본은 보다 긴 숨을 쉴 줄 알아야 한다. 아직 에너지 시장은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역동적인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중소기업들의 기업가 정신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같이 영위하는 상생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중소기업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시장이 영원히 나의 것일 순 없다. 언젠가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존재감을 과시해야 하므로 고도화보다는 탐색전에 능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에 편승할 수 없다면 다양한 사업 모델 속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범위의 경제를 주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대기업과의 상생 과정에서도 그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게임을 위해서 정부 정책도 중요해진다. 중소기업이 주도했던 탐색에서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는 고도화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부는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도록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 무분별한 가격경쟁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구체적으로는 조달 과정에서 중소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이 축적한 노하우와 노력으로 얻어진 소프트파워에 대한 대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은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에너지 기술 혁신의 가치가 이러한 소프트파워에서 나올 것을 감안하면 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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