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에서] 전문 분야는 전문지에게
[양재천에서] 전문 분야는 전문지에게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7.08.24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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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主流)’와 ‘주류(酒類)’ 사이에서

[한국에너지신문] 지금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 중에는 술을 먹지 않으면 글이 안 써진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흉내만 내는 기자들이 아니라, 실제로 글을 잘 쓴다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들은 그냥 알코올 중독자 취급 밖에 못 받는다.

실제로 술 없이 기사 못 쓴다는 ‘주류(酒類)’ 기자 중에는 교정교열 기자들이 없었다면 도저히 지면에 못 올라왔을 것이라고 ‘사후평가’, 시쳇말로 ‘뒷담화’를 듣는 이들도 많다.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져서 교정교열이 아니라, 부장이나 국장의 수정지시도 흔치 않은 일이 된 듯하다. 오타는 기본이고,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 되는 게 보통이다. 오죽하면 ‘팩트 체크’가 나왔겠는가.

가짜뉴스는 이제 먼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사이비뉴스’다. ‘주류(主流)’ 언론에서 나온다는 이유로 진짜 대우를 해 주고 싶지만, 기본적인 사실 관계부터 뒤틀려 있어 뉴스 같지 않은 뉴스가 그런 뉴스다. 뒤틀린 사실이라는 요리에 풍미를 더하는 건 익명 취재원의 불분명한 언급이라는 양념이다.

최근에 소위 ‘주류 언론’은 적어도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관한 한 ‘사이비뉴스’를 여러 번 낸다. 자신들이 이제껏 애써 취재해 온 것들은 예사로 뒤집어진다. 분명히 전 정권에서는 ‘A는 B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고는, 현 정권이 되자 ‘A는 B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보통이고, ‘A는 B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는 언급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부였던 사람이 경제부나 산업부로 배속되고, 스포츠부였던 사람이 정치부에 출입하니 모르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웬만한 사실은 인터넷 검색만 하면 다 나온다. 언론사이니, 자기 회사 뉴스DB를 찾아보면 다 나올 것이다. 그들의 핑계는 독자 눈높이다. 독자들 수준에 맞춘다면서 모르는 척 눙친다. 하지만, 그건 자기네 선배들의 기사를 깔아뭉개는 짓이고, 기자로서는 기본이 안 된 일이다. 기자는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자사 뉴스의 1차 독자여야 한다. 자신이 속한 매체에 어떤 기사들이 나왔는지 알아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더 한심한 건, 말뜻을 잘 모르겠다면서 뜻을 제멋대로 찾아 제맛대로 주워섬기는 짓이다. 얼마 전에는 ‘급전지시’ 용어가, 그리고 최근에는 ‘에너지 전환’ 용어가 때 아닌 이슈가 됐다. ‘에너지 전환’ 용어 문제를 먼저 보도한 건, 현 시대에 돈을 잘 버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경제지다.

‘단독’이라는 태그를 달았던 그 기사는 ‘탈원전’이라는 용어를 대신해 ‘에너지 전환’을 공식 용어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게 첫 문장이다. 기사 안에도 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빌려 자세히 나오지만, ‘탈원전’은 ‘에너지 전환’에 포함되는 용어다. 대신 쓴 게 아니다.  

‘에너지 전환’은 용어를 변경한 게 아니라, ‘에너지 믹스 전환’의 준말이다. ‘에너지 믹스 전환’은 원전을 완전히 탈피하자는 게 아니다. 에너지의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사용을 위해 에너지원의 편중된 정도를 바로 잡자는 것이다. 과거에 주로 논의됐던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수준의 에너지 믹스에 맞추자는 것.

그러자면 현재 각각 30-40%가량씩 차지하고 있는 석탄과 원자력의 비중을 조정해야 한다. 그들 수준에 올라서도 기후변화협약을 따르자면 허덕거릴 판이기에, 가스발전이나 재생에너지 등을 늦었지만 급하게 그들 수준으로라도 확산시키자는 논의가 있어 왔다. 그것이 ‘에너지 (믹스) 전환’이다. 발전원만의 문제를 넘어서 석유와 석탄 등의 자원 도입 다변화도 때에 따라 포괄될 수 있는 용어다. 그런 말을 가지고 ‘프레임 전환’용이라고 한 건, 에너지 ‘전환’과 프레임 ‘전환’이 같이 눈에 들어왔던 탓이었을까.

이런 용어는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만이 아니라, 수십년째 에너지 담당 부처에서는 일반적인 용어다. 지난 번 ‘급전지시’ 용어가 ‘감축요청’ 용어로 바뀐다는 어떤 보도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해 주자면, 감축요청이 급전지시의 하위개념이다. 하지만 이제껏 그런 용어는 신문지면에는 안 나왔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실렸을지 몰라도.

하지만, 이제 명분이 생겼다. 에너지가 정책 우선순위로 들어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이비뉴스’가 나오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중요한데 진짜 몰라서 터뜨리는 오보일 수 있다. 그거라면 다행이다. ‘바로잡습니다’ 하고 끝내면 될 일이다. 아니라면 진짜 큰일이다. 매체 지면과 기자 명함의 가치를 버려서라도 시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정책을 혼선에 빠뜨리자는 짓이기 때문이다. 후자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나저나 그 기사에 ‘단독’ 태그를 단 건 사실 “나만 ‘단독’으로 몰랐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도 몰랐다!”, “나도!”, “나도!” 하며 이 매체 저 매체가 너나할 것 없이, 정신 없이 베껴 썼다. 쓸 기사가 없어서였을까.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지와 경제지라면 다른 쓸 기사가 많았을 텐데. 그래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전문 분야는 전문지에게’라는 말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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