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의 온실가스배출권 정책
‘온실 속’의 온실가스배출권 정책
  • 한국에너지
  • 승인 2017.04.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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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원천봉쇄·배출 과징금 상향으로 정책 실질화를

[한국에너지신문] 우리나라는 지난 파리협정에서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온실가스 감축을 37%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이전에 이미 온실가스배출권 거래 시장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지금의 배출권 시장은 왜곡될 대로 왜곡됐다. 배출권 시장은 내년부터 2단계가 추진되지만, 정부는 1단계에서 잘못 추진된 정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배출권 거래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현재 배출권 거래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배출권을 그냥 쥐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정부는 에둘러 표현하지만 사실상 ‘사재기’다. 정확히 말해 그냥 ‘재기’다. 정부가 무상으로 나눠준 배출권이 지금은 3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공짜로 받아서 꽤 쏠쏠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보니 쥐고 있는 게 손해가 될 일은 없다. 무제한 이월도 가능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배출권 정책이 문제가 된 이유는 시장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에 풀려 있는 배출권은 사실상 건물 옥상에서 뿌린 돈과 다름없다. 처음부터 가격을 지금 시장 가격의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인 1만~1만 5000원 정도에 팔기만 했더라도 지금 같은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경매나 판매’ 형식으로 시장에 배출권을 내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인 동시에, 필요한 기업이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었다고 지적한다.  

배출권 정책이 처음 입안될 때, 아직 우리나라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고, 처음부터 제대로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하기 위해 배부 단계에서부터 가격을 붙여 경매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의견은 묵살되고, 일단 도입한 뒤 손을 보는 식으로 진행돼 결국 지금의 난장판 상태로 만들었다. 

실행 전에 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도 너무 많다. 정부는 외국 사례나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예상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도 없이 처음부터 무상 배분했고, 배출 할당량도 적절히 나눠지지 않아 불공정 경쟁 시장을 사실상 방조했다. 업종별 배출 할당량은 업종마다 너무 적다고 투덜거렸던 때가 이미 옛날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실행과정 실사나 연구용역을 해 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배출권의 무제한 이월을 통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미약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늦은 중에는 가장 빠른 대응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과이월분만큼 할당량을 줄이는 방식 정도로는 쥐고 있는 배출권을 제대로 토해 내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우리 시각이다.

차라리 1단계 사업에서 무상 부여했던 배출권을 소위 신권으로 교환해 초과 이월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쥐고 있는 여유분 배출권을 사실상 소각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책을 설계할 때 이러한 항목이 있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용이 아닌 제출용으로서만 사용하기에 시장 적정 가격이 아닌 암거래 가격에도 거래가 잘 되지 않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 배출권 시장을 처음 도입할 때부터 제기됐던 것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 지적을 반복하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이 정책을 제대로 설계해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부족했던 준비를 되돌아보기에는 너무 많은 길을 왔다. 

그러면 당장 지금은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일단 정부가 실제로 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하기를 원한다면 거래를 실질화하기 위한 조치를 조속하게 도입해야 한다. 이월 제한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준으로 실행된다면 ‘무뎌진 과일칼’에 불과하다.

‘면도날’ 같은 예리함과 세밀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언급한 것처럼 이월을 예외 없이 원천봉쇄해야 한다. 기한을 정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원천봉쇄가 원칙이어야 한다. 더불어 과징금 금액도 올려야 한다. 현재는 과징금이 배출권 가격의 3~4배 수준에 불과하지만, 격차가 더 커야 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거래도 더 활성화될 수 있다. 

해외 사업으로 획득한 배출권의 국내 사용, 스왑 거래, 배출권 경매 시장 도입, 시장조성자 도입 등 다른 활성화 방안은 위와 같은 전제가 충족된 뒤에 실행돼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실행되지 않으면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온실가스배출권 정책을 이제 온실 밖으로 내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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