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에서] 원천기술, 그게 뭔데?
[양재천에서] 원천기술, 그게 뭔데?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6.07.1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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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지원금보다 유지보수 비용 고민해야
▲ 조강희 기자/ 편집국

[한국에너지신문] 어떤 기업이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요즘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정작 ‘원천기술’이란 용어 정의는 잘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이 용어는 대략 1980년대부터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그러나 완전히 정착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체세포 배아복제 기술로 유명한 황 모 박사가 이 용어의 정착(?)에 큰 몫을 했다. 황 박사 이후 10년여가 지난 지금 그 용어가 또다시 남용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 필자뿐일까.

원천(源泉)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물의 근원 또는 사물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거기에 ‘기술’을 붙이면 근원적 기술이라는 말이 된다. ‘큰 효과로 파급될 수 있는 기술’ 정도의 뜻 같다. 그러면 ‘원천기술’ 용어의 ‘원천’은 어디일까? 역시 미국이다. ‘original technology’가 원래의 용어인데, 이 용어의 원 뜻을 살리자면 ‘독자적 기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원천기술 확보’ 뉴스는 대부분 관련 분야 대기업이 그 분야의 독자적 기술을 가지고 있는 외국이나 국내의 스타트업이나 벤처, 또는 중견기업 등을 인수합병했다거나, 그들이 보유한 기술 그 자체를 사들였다는 내용이다.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기술확보’는 왠지 ‘연구’를 통해서 얻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일반인들로서는 ‘클릭하고 보니 김새는’ 소식이 될 수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냥 ‘독자적 기술을 이전받았다’거나 ‘사왔다’고 하는 편이 낫다. 제목으로서는 ‘기술 도입’ 정도가 적당하지 않나 싶다.

더구나 독자적 기술을 확보했다고 그 사업이 바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독자적 기술 확보는 이제 겨우 사업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가야 할 길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얘기다. 이런 의미에서 ‘원천기술 확보’가 주식시장에서 단기 호재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은 난센스라고 할 수 있다.

독자적 기술로 수행하는 사업이 성공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경로는 여러 가지다. 일단 시작된 사업은 반드시 일정 정도 이상 확산돼야 한다. 손익 분기점을 일단 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유지보수가 중요하다. 사업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유지보수비를 낮춰야만 한다. 특히 확보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독자적 기술이라면 확산 단계가 대개 시뮬레이션 단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지보수비가 의외로 많이 들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인 만큼 새로운 소재가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 관련 소재의 가격이 오르면 유지보수비 때문에 사업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관련 사업의 원천기술, 아니 독자적 기술의 사업화는 사실상 유지보수비 위험을 감수하고 가는 사업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 사실은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자적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관련 신사업은 대부분 국가 정책 차원에서 초기 단계 지원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지원이 없었다면 뛰어들지 않았을 사업을 일단 뛰어들어서 초기 단계 지원을 받고도 정작 유지보수비 때문에 접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에너지 관련 ‘구(舊)’사업에도, 독자적 기술이 없는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는 얘기지만, 새롭고 독자적인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에는 아마도 거의 예외가 없을 것이다.

물론 돈이 될 수 있는 독자적 기술에 대해서는 기술이전을 받든지, 거액을 주고 사오든지 확보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금이 필요해서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은 의미가 없다. 아니 사실은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가 되니 당장 좋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확보한 기술을 사업화하고 나서, 지원금과 투자액을 너끈히 상쇄하고도 남는 유지보수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져 덮칠 일을 그 어떤 사업을 하는 회사든 꼭 염두(念頭)에 두어야 한다.

대한제국 말 의병장이었던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1842~1915)이 남긴 말은 의미심장하다. “시작이 좋았더라도 끝이 나쁜 경우는 열이면 늘 여덟아홉이고, 시작이 나빴더라도 끝이 좋은 경우는 열에 한둘도 되지 않는다(始善而終惡 十常八九 始惡而終善 十鮮一二).”

원천기술, 아니 독자적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통해 들어오는 지원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당장은 그것도 중요하다. 그 지원금 덕에 시작이 좋을 수는 있다. 그러나 좋은 시작을 떠받칠 수 있는 뒷심은 유지보수 비용이다. 미래에 들어갈 수 있는 유지보수 비용을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예측해 내야 그 사업의 진짜 사업성을 알 수 있다. 진짜 사업성에 입각해서 사업을 해야 그 회사가 ‘여덟아홉’이 아닌 ‘한둘’이 될 수 있다.

‘원천기술’,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지보수’다. 원천기술보다 유지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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