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의 말(言)!
[특별기고]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의 말(言)!
  • 한국에너지
  • 승인 2016.01.04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종환 일신회계법인 탄소자산연구소 부회장
▲ 노종환 부회장은 동력자원부 대체에너지과 사무관으로 에너지 분야에 첫발을 들인 후 공공 부문 기후변화 대책을 주도적으로 이끈 한국 기후변화 전문가그룹의 1세대다.

《2016 신년 기획- 신기후체제, 국내 대응 점검②》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 37% 달성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에너지 시스템 혁신적 접근 필요

 

[한국에너지신문] 말에는 무게가 있다.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가에 따라 그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절절한 눈빛으로 “살아서 ‘꽃분이네’서 만나자”는 아버지의 말은 영화 ‘국제시장’의 어린 윤덕수에게는 천근의 무게였다. 그 무게와 염원으로 그는 ‘꽃분이네’에서 60년을 넘게 아버지를 기다린다. 반면에 선거철이면 쏟아지는 정치가들의 공약들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러면, 올 11월 30일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에너지효율과 높은 제조업 비중에도 불구하고, BAU대비 37%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출하였습니다. (중략)... 이를 통해 2030년까지 ‘100조원의 신시장’과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INDC도 달성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연설한 우리 대통령의 말의 무게는 어떠할까? 


2년 전 당사국총회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뭐 특별한 거 있겠어?”하는 시니컬한 자세를 보였다. 교토의정서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지, 이를 대신할 새로운 논의는 ‘선진국 먼저 해야 한다’는 개도국의 주장과,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던 1997년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개도국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선진국의 의견이 타협점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러다 회의 말미에 선진국은 물론이고 주요 개도국들도 ‘지구의 온도상승을 2℃ 이내로 억제하는 데 기여할 바’를 정리해서 2015년 3월까지 유엔에 제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제출하는 보고서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도 ‘선진국은 계량적 감축목표를 포함시켜야 된다’는 것 이외에 딱히 정해진바가 없었다. ‘그저 알아서 열심히 자술서를 써 오세요’하는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자발적감축기여(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INDC)다. 물론 기후변화협약서상 주요 개도국인 대한민국은 타의 모범을 보이며 금년 9월, 이를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했다. 앞서 대통령께서 파리 당사국총회에서 언급한 내용은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2030년도 온실가스 감축목표로 정한 ‘BAU대비 37%’는, 당해 연도에 배출될 것으로 전망되는 8.5억톤의 온실가스 중 3억톤(정확히는 315백만톤)을 줄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2억톤은 국내노력으로 나머지 1억톤 정도는 국제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달성하겠다는 것이 대한민국 INDC의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NGO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의 2020년에 30%를 줄이겠다는 계획보다 실질적으로는 더 후퇴한 계획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한 산업계에서는 “2020년 배출전망(BAU) 대비 30% 감축목표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2030년 감축목표를 제출할 경우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깰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이런 평가도 있다. 얼마 전에 블룸버그에서 각국의 INDC를 비교·분석해서 발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INDC가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EU도 훨씬 앞질러 가장 의욕적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왜 이런 높은 수준의 INDC를 발표했을까? 지구가 더워지는 것을 정말 걱정하여 모든 국가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외부의 압력 때문에? 의사결정과정에 직접참여하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혹 외부압력이 있었다해도 그것이 일부 영향은 주었겠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이도저도 아니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혹시 어쩌면 ‘2030년’이라는 이행연도와 ‘자발적’이라는 수식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2030년! 15년 후. 어차피 예측이 맞을 리 없다. 2030년! 15년 후. 나는 그 자리에 없다. 아니, 현직을 떠났을런지도 모른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기여에 관한 이야기다. 설혹 못 지키더라도 무슨 벌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시하여 첨언하는 데,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의 태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어차피 불확실성도 크고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우니 계획수립이 훨씬 유연해진다.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 석탄발전이 일반화 된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한반도를 원자력 발전소로 둘러쌀 수도 있다. 생산되는 모든 승용차는 그린카라고 강변할 수도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 옥상을 태양광 판넬로 덮을 수도 있다. 계획수립만 유연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대단히 편하다. EU는 절대량으로 30%를 줄이는 데 우리는 잔뜩 부풀린 정상수요에서 이것 밖에 줄이지 않는다고 ‘기후불량국가’라고 비난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추가적 감축을 위한 제반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정부의 과도한 감축목표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스스로 잡는 또 하나의 암 덩어리 규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은 과장되게, 가능한 멋있게 계획도 만들고 평가도 하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파리시간으로 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7시 조금 지나, 우리 대통령께서 멋있게 연설을 한 바로 그 회의장에서 역사적인(?) ‘파리협정(The Paris Agreement under the UNFCCC)이 채택되었다. 채택된 합의문이 역사적이냐 아니냐는 그야말로 시간이 좀 더 흘러봐야 안다. 관계국들이 합의문에 적힌 내용을 어떻게 실천에 옮기는 지를 봐야만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구평균 기온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하고, 더 나아가 1.5℃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기로 한 결정이 모든 당사국이 보다 강력한 목표를 설정하는 디딤돌일지, 아니면 그저 그럴듯한 미사여구에 불과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또한 5년마다 강화된 INDC를 제출하기로 하였으나, 과연 당사국들이 얼마나 의욕을 보일지 역시 미지수이다. 특히 선진국들이 개도국 지원을 2025년 최소 1000억 달러를 시작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는데, 이 역시 누가 얼마를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없어 대단히 모호하다.


어쨌든 이런 모든 불분명한 점에도 불구하고 교토의정서와는 달리 기후변화를 막기 위하여 선진국만이 아닌 모든 당사국이 나서기로 한 것은 매우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파리협정이 어떻게 진화되어갈지 우리 모두 선의를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파리협정의 핵심은 INDC 이행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데 있다. 신기후체계 온실가스감축의 키워드는 ‘모두 함께’ ‘자발적으로’ ‘투명하게’이다. 이 중 투명성은 사실상 교토의정서에서 감축공약의 이행준수에 버금가는 의미를 가진다. 이번 파리협정에는 강화된 새로운 ‘투명성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목표설정과 이를 이행하는 수단과 방법은 각국이 각자의 사정에 맞춰 알아서 결정하지만, 그 결정과정과 이행성과가 지구온난화 방지에 얼마나 기여하는 지는 투명하게 외부에서 보겠다는 이야기다. 본인들이 한 약속을 정확히 잘 지키고 있는지 성과는 잘 내고 있는지 서로 잘 지켜보자고 한다. 대충 말로 때우고 넘어가는 시절은 이제 끝났음을 의미한다. 뭐,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본인들이 한 약속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할 생각만 있다면.


아뿔싸! 대충 만들고 대충 발표했는데,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제대로 하는지 꼼꼼히 살펴보겠단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 문제만 나오면 선발개도국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된다며 국내외의 압력을 받게 되는데, 여기에 너무 의욕적인 INDC는 그대로 우리에게 족쇄가 되어버렸다. 뱉은 말에 대해 확실히 책임지라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대응의 주된 방향이 에너지 신산업의 육성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나가겠다고 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고 판매할 수 있게도 할 예정이란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제주도를 아예 ‘탄소 없는 섬’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꼭 실천에 옮겨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해 있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혁신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담대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보다 과감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저 남들 하는 정도를 따라가서는 신성장동력도, 새로운 일자리도, 국가경쟁력도 요원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한 약속도 지키는 동시에 기후변화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
어떠신가요? 37%를 줄일 수 있으신가요? 이를 위해 돈을 쓸 준비가 돼 있으신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