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열정으로 키워가는 것이다"
"시장은 열정으로 키워가는 것이다"
  • 남수정 기자
  • 승인 2013.12.02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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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SE네트웍스 대표이사

▲이용호 SE네트웍스 대표이사


태양광 외길 20년, 세 번째 출발선 앞에 서다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 태양광발전시장에서 2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존재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세계적인 기술력이나 자본력을 가진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변화무쌍한 태양광정책과 시장에 적응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올해로 20년째 태양광업계를 지켜온 이용호 SE네트웍스 대표를 있게 한 것은 ‘세 번의 선택’이다.

니켈수소 배터리, 연료전지 업무를 맡아왔던 그는 삼성전자의 배터리 사업이 삼성전관(현 삼성SDI)으로 이관되자 배터리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이 때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먼저 태양광에 주목한 홍성민 현 에스에너지 사장이 태양광 사업을 같이 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 손을 잡았다. 첫 번째 선택이었다. 1994년 4월 1일 태양광 부서로 발령받아 첫 출근을 했다. 처음 만든 태양광모듈을 판매한 곳이 서울시 오세암 약수터의 가로등 용이었다. 여수 하와도에 당시로서는 꽤 큰 규모인 60kW급 설비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태양광 보급 예산이 1년에 5억원 남짓하던 때였다. 정부 예산이 곧 시장의 전부였고, 매출 10억 짜리 부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정보통신본부, 방산사업본부 등 반도체 외에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는 동안 1997년 IMF 위기가 왔다. 

IMF 이후 삼성전자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비주력사업 중 10가지를 사내벤처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이 중 하나였던 ‘PV프로젝트’를 맡아 1년 반 정도 진행하던 홍성민 부장과 이용호 과장은 분사를 결정했다. 삼성전자 사내벤처 1호 ‘에스에너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미래가 불투명한 태양광회사를 차렸다. 두 번째 선택이었다.

삼성전자가 지원한 한양대 벤처타운 한 켠에 사무실을 냈다. 2001년 첫 해 16억원 매출에 5천만원 적자를 냈다. 2002년 32억원, 2003년 다시 17억원, 드디어 2004년 1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태양광 사업만으로 일궈낸 기록적인 실적이었다. 이 대표는 “삼성 시절 ‘우리 100억 갑니다’라고 했던 걸 10년만에 이룬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때부터 에스에너지 앞에는 항상 최초, 최다, 최대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린홈 최다 실적을 더해 매출을 늘려 코스닥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 기반을 만들었고, 2007년 신재생에너지 업계 최초로 태양광 사업만으로 코스닥 상장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그는 “보급사업, 지역에너지사업, 주택사업으로 상장 기반을 만들었고, 상장과 발전차액지원제(FIT)로 자금이 모이면서 태양광모듈 제조설비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며 “상장 이전에는 태양광발전시스템 중심, 이후에는 태양광모듈, 재작년부터 프로젝트 개발로 시장에 대응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태양광업계가 침체기를 겪는 동안 이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 대표는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본능적으로 시장을 보는 관점과 지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삼성전자 시절 대기업 관점에서, 분사 직후 영세기업 관점에서, 각각의 입장에서 태양광 사업을 보다보니 트렌드를 읽어내는 감이 좋아진 것 같다는 자체 분석이다.

‘배수의 진’도 작용했다. 그는 “조직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태양광이니 목숨 걸고, ‘헝그리’ 정신으로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더 바쁘게 더 많이 움직인 것도 주효했다. 그는 “보통 기업은 판매량을 예측해 제조와 구매 계획을 세우면 부서별로 각각 제조, 구매, 판매를 한다. 남들이 일년에 한 두 번 하는 걸 우리는 매달했다. 발주도 한 달에 네 번으로 쪼개서 냈다. 한 번에 할 걸 세네번으로 나눠서 했다. 수면 아래에서 물장구를 계속 쳤다”고 털어놨다.

대기업의 잇따른 진출과 공격적인 투자에도 에스에너지는 분기마다 기대 이상의 실적으로 태양광 전문기업의 입지를 다져왔다. 이 대표는 회사의 ‘규모’를 강조했다.

그는 “태양광 모듈은 에스에너지 규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업 분야다. 대기업은 모듈 사업으로 부가가치를 얻기 어렵다. 스마트폰은 2년마다 바꾸지만 모듈은 20년 동안 사용한다. 수익률이 굉장히 낮고, 최첨단 기술도 아니다. 폴리실리콘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공동 창업자로서 13년 동안 에스에너지를 이끌어 오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많다. 2001년 회사 설립 후 의미있는 첫 실적이었던 삼척시청이 발주한 동굴박람회도 그 중 하나다. 그는 “1월에 회사를 설립하고도 첫 수주를 못해서 개업식을 못하고 있다가 LG와 쌍용 컨소시움을 이기고 4월에 개업식을 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코스닥 상장’을,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낀 부분은 태양광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꼽았다.

그는 “처음엔 사람을 만나면 태양광발전이 무엇인지, 에스에너지는 또 무얼 하는 회사인지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1분 내로 태양광, 에스에너지를 설명하고 다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목표였다. 예전엔 태양광발전을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에스에너지란 회사를 통해 ‘비즈니스’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온 그는 이제 세 번째 선택, 세 번째 출발선 앞에 서 있다.

▲이용호 SE네트웍스 대표이사

이용호 대표는 에스에너지에서 함께 일했던 김장면, 한성용 후배와 함께 ‘SE네트웍스’를 설립했다. 에스에너지 태양광모듈의 국내 총판과 프로젝트 개발을 맡았다. 

그는 “에스에너지가 이제 다음 단계로 성장, 변화해야 하는 시점에 겹쳐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나빠졌다. 지난 여름 잠시 쉬는 동안 그동안 놓친 것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되돌아 보게 됐고,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나와 조직을 위해 더 멀리, 더 크게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열정있고 역량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제 나만의 스토리를 써보자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SE네트웍스는 이 대표의 20년 태양광 사업 노하우를 살려 기존의 모듈 판매, 프로젝트 개발 기업과는 다른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현재 태양광 시장은 사용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다. 이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는 모듈 판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포 서비스, 애프터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에스에너지가 해외사업에 주력하면서 국내시장에는 모듈을 잘 안 판다는 이미지도 바꾸고 싶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국내 태양광시장 500MW에서 10% 정도인 50~60MW를 에스에너지 모듈로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에스에너지가 올해 3천억원, 내년 4천억원 정도 매출이 예상된다. 여기에 10%를 SE네트웍스가 판매하는 걸로 시작해서 ‘시가총액 1조’를 달성할 때 20% 정도를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스에너지의 ‘포스트 IPO(기업공개)’ 목표로 정한 시총 1조를 끝까지 놓지 않고 지속가능한 ‘윈윈’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에스에너지와의 13년은 태양광 20년 인생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내 인생에서도 태양광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에스에너지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나의 역할, SE네트웍스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스에너지 공동 창업자 트리오인 홍성민 사장, 장인철 전무와의 인연도 이 같은 파트너십을 통해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난 20년에 이어 다가올 20년도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장인철 대표의 SE머티리얼즈를 통해 태양광 관련 부자재를 공급받을 계획이다.

앞으로 이 대표는 앞장서서 끌고가는 것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내가 그리는 그림보다 우리 후배들이 그리는 그림이 더 중요하다. 내가 앞장서기 보다는 내 경험과 자본력이 밑거름이 돼 후배들이 주도적으로 회사를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가기로 했다. 그는 “태양광사업을 하면서 얻은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에 공헌할 것”이라며 “함께하는 김장면, 한성용 이사도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다. 그는 ‘열정’을 강조했다. 태양광 초창기에는 ‘철학’이 원동력이었다면 시장이 만들어진 후에는 열정으로 일궈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태양광 일을 하는 후배들 가운데 열정이 부족한 모습이 종종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앞으로 국내사업에 주력하기로 한 만큼 국내 시장에 대한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한국 시장이 내년에 500MW 정도 될텐데 각자 싸우는데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면서 우리 시장을 잘 지켜가면 좋겠다. 국내시장에서 한 기업 당 많게는 100MW, 적어도 60~80MW 정도 가능한데 일본 등 수출물량까지 감안하면 의미있는 실적이 될 수 있다. 국내 업체끼리 과당경쟁을 통해 중국에 시장을 내주기 보다 협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SE네트웍스 본사에서 창립 기념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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