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 세월은 흐르지 않는데 나 자신이 흘러가고 있다.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또 한 살의 나이만 먹어간다.
어느 노 철학자의 시간 개념이다. 흔히들 세월이 흐른다고 하지만 정작 세월은 그대로 있고 인간만 흘러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은 그대로 있는데 에너지 소비는 날로 늘어만 가는 것도 이 같은 이치일까?
코로나로 야기된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에너지 소비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경제활동이 일시적으로 주춤하면서 지난해는 에너지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일시적 현상이었다.
모임을 제한하면서 많은 행사들이 디지털로 전송되고 있다. 과거 같으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만 에너지를 소비하였던 것이 디지털로 몇 배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전기소비를 늘리고 있다.
펜데믹으로 택배 산업이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디지털로 주문하면서 전기 소비를 늘리고 있다. 과거 같으면 가게에 걸어가서 물건을 샀지만 이제는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물건을 사게 된다.
펜데믹은 비대면 디지털 산업의 성장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모든 데이터저장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전기를 소비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는 전기를 잡아먹는 하마다.
예전에는 굴뚝에 연기가 나야 불을 때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게 에너지가 사라지고 있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게 에너지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50년경이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량의 2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특별히 제조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없는데 전기소비가 폭증하는 이유는 디지털 산업발전 때문이다.
늘어나는 전력소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050년 전력생산 규모가 2억kw에 이르면 최소한 기저부하는 1억kw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기저발전으로 이용하는 원전은 크게 쪼그라들고 석탄발전은 거의 접는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급변하는 시대라 30년 후를 예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1억kw를 기저부하로 감당할 전력생산 체계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대를 책임져야 할 사람은 현재 10대들이다. 그리고 필자를 비롯해 그 당시를 설계한 우리는 사라지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역시 사람은 바뀌고 세상은 그대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이 난다. 독일은 지금 쯤 2040년에서 2060년까지 에너지 설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독일은 20년 단위로 장기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 오고 있다. 지금 그들은 2040년 이후 20년 동안 에너지 정책 설계를 위해 논쟁을 펼치고 있을 시기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원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원전을 들먹이지 않고 우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나라다.
과연 그들은 어떤 논쟁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답을 그들에게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섞인다.
2022년, 기자라는 직업으로 일해 오면서 올해처럼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사방이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막혀 있어 취재기사 한 번 제대로 쓴 적이 없다. 보도 자료가 유일한 취재원이었음을 숨길 수 없다.
이 또한 세월은 흐르지 않는데 나 자신이 흘러가야 변할 모양인가?
어둠이 깔리고 전기불이 창마다 새어나오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어둠속에서 새어나오는 많은 전기 불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아져 오늘이 있는 것일 게다.
우리는 몇몇 사람들의 정치적 과오로 에너지의 앞길이 막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앞길은 나침반도 없는 항해와 다름없다.
이제 누군가가 어둠이 쏟아진 밤하늘에 빛을 낼 것인가?
암흑인자의 농도가 짙을수록 빛의 강도도 높아진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새벽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일 뿐이다.
필마를 타고 돌아와 보니
산천은 예나 다름없는데 사람들은 어딜 갔는가?
회한에 젖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또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