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일은...IPCC 이회성 의장 당선시킨 일
2030 추가감축 발표는 2050 탄소중립과 연계한 감축목표
유 전 대사는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기후변화 악동이라는 조롱을 받는 속에서 2050탄소중립 선언이 나오기 까지 대외 업무를 총괄, 우리나라가 기후오명에서 벗어나도록 한 인물이다.
본지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글로벌 아젠다에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 대사를 만났다.
반갑습니다. 정년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나라가 환경 외교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인 P4G 행사를 마무리하고 퇴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외무부 업무는 일반 국민들로서는 가깝게 느끼지 못하지만 해외여행을 하거나 거주할 때 외교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접합니다.
재외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외교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업무이지요. 2000년에 재외국민 보호와 관련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후 영사관 인원도 많이 보충하였고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 어디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외교관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추억이라면…
추억이라고 하셨습니까? 엊그제 일 같은데요.
예, 2015년 제네바 차석대사 시절 IPCC 의장 선거 본부장을 맡아 이회성 의장을 당선시킨 일이 큰 보람이었어요.
이회성 박사는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출신으로 에너지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하지만 IPCC 의장이 된 것은 늘 궁금하던 일이였어요.
환경 분야에서 국제위상이 높지 않은 우리가 IPCC 의장국을 맡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보람이 있었던 일로 여겨져요.
2015년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는 해였어요. 의장 선거를 시작하면서 상대 후보는 ‘감축목표가 너무 약한 나라에서 의장을 할 수는 없다’는 논리가 핵심이었습니다.
이회성 의장이 워킹그룹 팀장을 하고 있어 조직을 잘 이해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한국의 감축목표를 높이려면 이회성 박사가 의장이 되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역공을 펼쳤더니 주효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제야 알았으니 ‘수고하셨다’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IPCC 의장은 2022년 6차 보고서를 내도록 되어있고 특별히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P4G 행사는 세계적인 환경회의인데 우리가 개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P4G 행사는 우리가 유치한 것이 아니고 2018년 덴마크에서 행사를 할 때, 덴마크 정부의 요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덴마크 정부의 요청에 즉답을 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요청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는 한국에서 답이 오기 전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결국 2019년 8월 우리가 답을 보냈습니다.
덴마크가 특별히 우리나라에 행사 개최를 요구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2010년 한국과 덴마크가 녹색성장 동맹을 맺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덴마크로서는 한국이 지구촌에서 온실가스 감축 비즈니스를 함께 할 최적의 파트너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나라는 아니지만 IT 기술이 발달된 높은 기술력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세계무대에서 평판이 좋고 경쟁력이 우수하다고 보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개도국에 진출할 수 있는 비교 우위 기술이 많습니다.
특히 IT기술은 자원절약으로 기후변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가진 덴마크가 우리나라를 최적의 비지니스 파트너로 삼았다니 기분 좋은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최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교관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제사회에서 높은 신뢰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유럽은 기술이 좀 높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요. 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좀 싸기는 하지만 신용도가 문제지요. 한국은 기술도 우수하고 특히 신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P4G가 국제적으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지요?
코펜하겐에서 행사를 할 때까지는 인식이 낮았는데 2018년 워싱턴으로 본부를 옮기고 세계적인 위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본부 워싱턴 이전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에 준비하여 행사를 잘 치렀다는 평가가 많던데 배경화면이 옥에 티로 남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경찰이 수사 중이라서 말씀드리는 것이 부적절한 면이 있습니다.
두 번 리허설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었어요. 배경 화면 중에 미국의 어느 마을이 줌아웃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반도에서 줌아웃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판단에 바꾸고 세 번째 리허설에서 통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주요 사항만 체크하는 단계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제작 업체에서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 하니 경찰 수사결과를 기다리는 길 뿐입니다.
P4G 행사 말미에 문재인 대통령이 2030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더 높여서 내겠다고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P4G 행사를 개최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파리협정에 따라 2020년 12월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탄소중립 2050을 선언 했습니다. 2020년에 탄소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는 2050 탄소중립과 연계한 수치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2030 추가 감축목표를 설정하여 내겠다는 발표는 2050과 연계한 수치를 내겠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번에 추가 감축안은 온실가스 감축을 절대치로 표기해서 제출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BAU(대비)에서 절대치로 바꾸어 내기로 했는데 유엔기후변화협약 에스피노 작 사무총장이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2030안은 해외에서 11% 감축하는 안을 4% 이내로 하는 방안이 담겨질 것이고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현재 제출한 안보다는 높은 감축목표를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퇴임한지 얼마 안 되어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10월말 경 최종안이 나오고 2030 감축목표도 같이 나올 것입니다. 11월 영국의 글라스고 26차 당사국회의에 보고하는 일정을 제대로 밟아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유 대사께서는 기후변화 업무를 오래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1년 사무관 초임 시절부터 기후변화 업무를 다루어 왔습니다. 결국 그러한 인연이 기후변화 대사라는 마지막 직책까지 연결된 것 같아요.
국제기후변화협약은 92년 리우협약에서 출발합니다. 지난 30여 년 정부간 협상은 시행착오의 시기였다고 보면 되겠어요. 2015년 파리협정이 국제간의 협상을 마무리하고 2021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를 ‘신기후체제’라고 합니다.
신기후체제는 어떤 의미 입니까?
97년 교토협약은 온실가스 감축을 선진국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선진국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이 더 많이 배출하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정의하면 개도국인 중국을 끌어들이는데 시간을 보낸 것이지요.
개도국은 들어가는 조건으로 지원을 요구했고 그 산물이 기후변화기금(GCF) 같은 것들입니다.
과거에는 온실가스를 선진국만 감축하는 의무를 가졌지만 파리협약으로 모든 국가들이 감축 의무를 같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신기후체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파리협약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없었지만 파리협약으로 시장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이 기후변화를 글로벌 아젠다로 확실히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받아들여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를 내려놓거나 온실가스 배출 기업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친환경 기업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데 친환경 기업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친환경 기업이라고 많이 홍보하고 이지만 시민사회의 비판이 많았지요. 2020년 유럽이 친환경 기준서를 내놓았어요.
여기에는 온실가스를 100% 발생시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각 산업별로 온실가스 발생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글로벌 아젠다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응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R&D입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국가발전을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R&D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확실한 R&D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시장에서 할 수 없는 분야에 투자하고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도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국민들의 총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교관이라는 직책으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훌륭한 외교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20대까지는 배양한 실력이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은 누구나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외교 업무는 자신의 개인 능력이 아니라 상대국 인사와 관계를 통해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내가 정직해야 하고 자기희생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희생과 신뢰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제2의 인생을 더욱 보람 있게 보내시길 기원 합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