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에서] 급히 편성한 예산, 탈 나는 건 아닐까
[양재천에서] 급히 편성한 예산, 탈 나는 건 아닐까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9.12.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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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계획 필요한 분야에 단발성 예산은 ‘독(毒)’
조강희 기자
조강희 기자

[한국에너지신문] 산자부가 내년 예산을 확정했다. 9조 4367억원이 확정됐는데, 지난해에 비하면 23%나 증가한 것이다. 이 기세로 가면 내년에는 아마도 산자부 예산만으로 10조원을 돌파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번 예산의 주요 기조는 소재‧부품‧장비 등 제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수출 활력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에너지 분야는 에너지 전환과 복지를 지원하는 예산은 편성됐지만, 살짝 뒤로 밀린 느낌이다. 내용상으로도 별다른 것은 없다. 재생에너지 지원에 1조 2071억원이 드는데, 그 가운데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이 2926억이 배정됐다. 에너지 안전 예산 2026억원 가운데 일반용 전기설비안전점검에 1041억원이 든다. 에너지 복지 예산 2563억원 가운데 에너지바우처로 1675억원이 배정됐다.

수소경제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 예산이다. 전체 943억원 가운데 수소생산기지 구축에는 299억원이 들어간다. 미래차 예산도 2227억원 가운데 시장자립형 3세대 전기차 산업 육성에 390억원이 투입된다.

수소경제와 미래차, 로봇 등의 분야에 나름대로 큰 예산을 편성해 놓은 것은 경제의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의지’를 뒤집어 볼 수는 없을까. 큰 액수의 예산을 편성했다면, 멀리 보고 계획을 세웠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최근의 이슈가 된 부문이다. 일본과의 분쟁 때문에 관심사가 그 쪽으로 쏠리면서 편성된 것이다. 미래차, 수소경제, 로봇 등의 분야도 퍽 최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물론 정부에서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사업들이 어떤 성격인지는 진단해 보고 지원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소재‧부품‧장비 등의 분야는 긴 안목의 계획, 5년~10년 정도가 아닌 20~30년 주기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분야다. 처음에는 작은 액수로 시작해 차츰차츰 늘려나가면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래차, 수소경제, 로봇 등도, 에너지 전환도 그런 측면에서는 똑같다.

예산을 편성했다는 그 자체에 토를 달거나, 이를 마구잡이로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최근의 산업은, 그리고 기술개발과 이의 사업화는 돈만 투입한다고 되지 않는다. 계획과 지속성이 중요한 분야다. 초창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와 같은 단계마다 지원을 달리 해야 승산이 있다. 아니 본전을 잃지 않는다.

아쉽지만, 2017년, 2018년, 2019년의 예산 편성을 보면, 3~10년 후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매년 제각각이었고, 세부 예산을 짜기 위해서 먼저 세워야 하는 계획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거나 비만으로 이어지거나 결국은 탈이 나게 돼 있다. 벌써 해당 산업의 기업체 관계자와 학계 인사들은 눈먼 연구비와 관련 예산을 따기 위해 보고서와 계획서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이 소문이 헛소문이기를 그보다도 정부가 조금은 긴 안목을 가지고 에너지와 산업 제 분야를 챙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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