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조사, 비용보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먼저

2017-07-10     이준용 서울대 교수

[한국에너지신문] 문재인 정부의 원자력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적 관심이 높은 가운데 정책 방향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최근 정부는 신고리 5·6호기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조사’를 통해서 정책 방향을 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전문가의 지식과 시민의 의견을 기초로 합의하에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방침이기에 반갑다.

갈등 사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투표’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사회적 비용 수준이 어마어마하기에 어떤 정부도 함부로 추진하기 어렵다. 원자력 에너지 정책과 같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서 정책결정을 내려야 할 복잡한 사안이라면, 애초에 국민투표를 거론하기 어렵다. 사안 자체가 국민투표에 적합한지 검토해야 한다.

공론조사는 갈등에 대한 시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론이다. 숙의민주주의 이론과 과학적 방법론을 결합해서 국민투표를 시뮬레이션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서 대안과 근거를 제시하고, ‘모집단을 대표하는 시민들’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과 근거를 접하고 토론해서 의견을 형성한다. 공론조사는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형성한 여론을 측정하기에, 그 결과를 ‘충분한 정보와 합리적 토론에 근거한 여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해서 갈등적 사안에 대한 정책적 결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공론조사가 과거의 합의도출 방법론과 다른 결정적인 점은 ‘모집단의 의견분포를 추론하기 위해 과학적 여론조사 방법론’과 ‘시민적 숙의를 통한 의견형성 모형’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공론조사는 스탠퍼드 대학의 피시킨 교수 연구진의 방법론이 주로 사용되는데, 기초조사 자료로 의사결정 모집단의 의견 분포를 파악한다. 2차로 의견 분포에 따라 일부를 뽑아내 숙의과정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최대한 장기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람직하다. 참여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또는 정책대안을 미리 준비한 전문가 세미나, 10~20명 정도의 분임토의를 진행한다. 참여자는 전문가와 질의응답도 할 수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하는 것이 바로 공론조사다.

이렇게 하면 해당 사안에 대해 얼마나 학습했는지, 의견의 변화가 있었는지, 의견의 배경이 되는 신념의 우선순위에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 영국, 호주,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의 정책 당국은 공론조사 방법론을 이용해 다양한 사안에 대한 정책적 방침을 결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법을 적용한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정부는 2003년 사패산 터널 공사와 2007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갈등 사안을 놓고 공론조사를 추진하다가 포기한 선례가 있다. 2005년에 8.31 부동산 정책을 놓고 최초로 약식 공론조사를 수행했다. 하지만 방법론은 논란이 있었다. 2015년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공론조사는 일부 사실에 대해 의혹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례로 보면 문제는 공론조사의 도입 여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당국의 공론조사 진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앞서 말한 국민투표보다는 적은 돈이 든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시민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정책을 추진할 때 생기는 갈등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