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에서] “어서 와, ‘급전(給電)’은 처음이지?”
[양재천에서] “어서 와, ‘급전(給電)’은 처음이지?”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7.08.11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강희 기자.

[한국에너지신문] 문제가 된 매체명은 밝히지 않겠다. 제목도 안 밝힌다. 기사의 태그는 무려 ‘팩트 체크’다. 번역하면 ‘사실 확인’이다. 도대체 어디서 확인한 사실일까. 기사를 쓴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걸 교정교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쓱 훑어 보았을지도 모르는 윗선 기자에게는 더더욱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그 회사에 전화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매체명 밝히지 않는다. 심지어 그 부끄러운 기사를 홈페이지 대문 맨 위에 걸어 놨다. 지면에는 안 났기를 바랐지만, 1면 아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해당 기자 포함 그 회사에 누구도 알 리 없다. 알았어도 고쳤을 리 없다. 그 논리대로 가야하고, 그 논리대로 가도 전기 소비자들은 속아 줄 것이라고 믿을 터. 사실 속는 것도 아니다. 귀찮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다. 아마 그걸 기대했을 거다. 아니면 글을 쓴 기자나, 검토하는 윗선이나 다 귀찮았던 거다.

급전지시. 문제의 ‘팩트 체크’ 주제다. 전문용어다. 전력거래소가 정상 또는 비상상황에서 전력수급의 균형유지 및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전기사업자에게 필요한 지시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산자부 고시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 2조 32항에 있는 용어 정의다.

해당 기사에는 없지만, 다른 매체의 기사에 언급된 ‘전력시장운영규칙’에서도 ‘급전지시’ 항목은 대동소이하다. ‘상황’과 ‘전기사업자’, ‘필요한 지시’ 부분이 조금 더 세밀하게 구분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급전지시를 실제로 내리는 기관은 대통령도 청와대도 산자부도 아니다. 전력거래소다. 이 전력거래소가 2003년 이 시장규칙을 만들기 위한 선행 자료집으로 만든 ‘전력거래용어해설집’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 어쨌든 어디에 있는 어떤 ‘급전’도 급해서 전화기로 메시지를 넣는다는 뜻이 강하지 않다. 오히려 줄이든지 늘리든지 그냥 전기의 ‘공급과 관련된’ 지시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급전지시다.

그렇다면, ‘급전’의 한자가 ‘急電’이라는 그 말은 그냥 비아냥대기 위해서 만든 말이거나, 기자가 오해를 한 것이 분명하다. 정치인들 중에 한 명은 비아냥, 한 명은 오해다. 기자는 거의 99% 오해다. 1%의 가능성은 ‘받아쓰기’다. 그리고 에너지업계의 다른 공기업이나, 관련 매체에서도 빠를 급(急)자를 쓴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는 100% 오해다.

이 오해는 그러면 왜 생긴 것일까. ‘급전’이라는 말의 영어가 ‘파워서플라이(Power Supply)’가 아니라, ‘디스패치(Dispatch)’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디스패치’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그 글을 쓴 기자나 필자나, 그 말을 아는 사람이면 다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니, 결국 믿을 건 영어사전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동사로는 보낸다는 뜻이 실제로 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보내는 것부터, 편지나 전화나 전보를 이용해 어떤 내용을 보내는 것, 그리고 아예 어떤 사람이나 동물을 ‘골로 보내(?)’ 버리는 것까지가 이 단어의 동사 뜻이다. 여기까지 찾아봤다면 가상한 일이지만, ‘팩트체크’로서는 부족하다.

물론 급전지시 수단으로는 아직까지는 전화가 가장 낫긴 하다. 빨라야 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급전’이 ‘디스패치’의 뜻을 담아 위에 쓰인 대로 ‘보낸다’는 의미였다면, 지시를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 ‘긴급전화 지시’ 보다는 긴급지시나 긴급전화가 낫다. 그나마 전기를 끊으라는 내용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급전’ 뒤에 들어갈 말은 ‘지시’ 외에도 ‘순위’가 있다. 이것 역시 전문지와 업계에서만 쓰는 용어다. 이것만 확인해 봤어도, 그리고 전문지들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즐겨 쓰는 ‘경제급전’, ‘환경급전’ 정도만 체크했어도 이런 참사는 막았겠지 싶다. 전기를 끊는 순위가 급전 순위는 아니다. 환경을 위해 전기를 끊는 것은 말이 될지 모르나, 경제를 위해 전기를 끊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나마 실마리가 되는 건, 전산용어인 ‘디스패치’다. 전력시장이나 수요반응시장은 퍽 최신 개념이다. 디스패치와 이를 번역한 '급전' 역시 최신 관련 분야인 전산용어로 풀어나가는 게 그나마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디스패치는 첫 번째로, 컴퓨터 처리결과를 데이터 처리 의뢰처에 배포하는 것 -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컴퓨터 처리결과’로 놓고, 전력의 수요공급처를 ‘데이터 처리 의뢰처’로 놓아도 부족함이 없다. 두 번째, 다중 태스킹 환경에서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작업이 수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 자원을 할당하는 것 - 많은 종류의 발전소가 있는 환경에서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급전이다. 급전지시는 그것과 관련된 지시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보낸다는 뜻이어서 급전(急電)일 수도 있다. 전기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서 효율성과 신속성을 기할 수 있게 해 줬다. 물론 한 번 생산하면 저장하기가 어려워서 급하게 보내야 하기는 한다.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급하게 연락해 전기를 끊으라는 지시를 했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좀 멀다. 전기를 끊는 것만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그러한 지시가 가장 눈에 띄는 지시일 수 있다. 한 번 생긴 발전설비는 대부분 켜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끄라는 지시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 기자의 그 글은 아쉽다. 1cm만 더 파봤어야 한다. 1cm를 더 파기 전에 다른 취재원에게 가서 동의를 구했으니, 그도 대충대충 수긍해 줬을 것이다. 수요자원 시장 계약조건의 ‘대가’가 ‘공돈’이었던 과거는 이제 없다는 생각에 튀어나온 볼멘소리도 그 수긍에 같이 담겼다.

왜 이렇게 썼을까 해당 매체 사이트도 한 번 뒤져봤다. 그랬더니 그 매체에선 ‘급전’은 대부분 ‘급히 쓸 돈(急錢)’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해당 기자도 그 쪽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듯했다. 사실 한국의 경제 전반을, 그리고 그와 연관된 정치와 사회, 산업, 기타 등등을 모두 다루는 매체에서 전기 분야의 용어를 콕 집어 설명하고 기사로 다루기는 너무 어려웠을 터. 그래서 실수했겠지 싶다.

결정적으로, 사실 확인에 필요한 냉철함을 유지하기에 7월말 8월초는 너무 더웠다. 그래서 급하게 내린 급전지시가 너무 급해 보였고, 그래서 급하게 송고한 글이 급하게 ‘팩트 체크(?)’ 된 뒤에 급하게 홈페이지 대문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아마 그러고 나서 기자는 머리를 급랭시키기 위해 급하게 휴가를 간 건 아닐지.

그 글에서 탄력을 받아, 또는 영감을 얻어 ‘국가 기간통신사’라는 어떤 매체도 “‘急電’인지 ‘給電’인지 논란”이라고 적었다. 아침 저녁이 시원하지, 아직도 덥긴 더운 모양이다. 그걸 또 여기저기서 받아 썼다. 더위가 얼마나 갈지 몰라도 걱정이다. 

그래서 이 글은 선선한 바람이 창문으로 새어드는 밤중에 썼다. 팩트 체크는 언제든지 환영한다. 참고로 이 글의 근거가 되는 고시와 규칙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꼭 검색해 보시길 바란다. 어쨌든 ‘급전지시’, 한자로는 ‘給電指示’라고 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