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40년만에 역사 뒤안길로
‘고리 1호기’, 40년만에 역사 뒤안길로
  • 안솔지 기자
  • 승인 2017.06.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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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강국 도약 밑거름…영광 뒤로 하고 최초 해체 원전으로
▲ 왼쪽부터 1971년 기공식, 1974년 건설 작업 중인 근로자, 1978년 고리 원자력 발전소 전경, 1978년 고리 1호기 중앙제어실.

[한국에너지신문]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지난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가동을 멈췄다. 고리1호기는 우리나라의 첫 원전으로 1978년 상업운전을 실시했다. 이후 약 40여 년간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담당하며 우리 산업 발전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우리 원전 역사의 ‘상징’이자 산업 발전의 ‘기둥’이었던 고리 1호기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첫 원전으로 새 역사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고리 1호기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 고리 원자력 발전소 전경

1971년 첫 삽…587㎿ 규모·경부고속도로 건설비 3.6배 1560억원 투입
석유파동 위기 딛고 1978년 첫 상업운전…원자력 발전 시대 돌입
건설 경험 바탕 독자 기술 수립…2009년 원전 수출 쾌거
블랙아웃 은폐·원전부품 성적 위조 등 잇단 사건으로 여론 ‘급랭’
1차 계속운전 허가 기간 끝으로 중단…해체 후 새 역사 준비

미래 에너지원, ‘원자력’이 필요하다

원자력 기술 도입을 위한 노력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전후수습으로 혼란의 시기를 보내다 1959년에 이르러서야 원자력원과 원자력연구소를 발족해 원자력 이용과 개발에 필요한 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이후 1962년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트2’를 가동하고,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원자력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1960년대는 원자력 기술 초기로, 전 세계적으로도 원자력 발전소 운영 경험이 능숙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원자력 개발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며 ‘걸음마’를 뗀 우리나라로서는 원전 건설, 운영은 물론 경험과 기술 모두 전무한 상태였다.

또 원자력발전소는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해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규모와 전력사용량을 봤을 때 500㎿ 규모의 대용량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중화학 공업으로 나아가고, 장래의 에너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한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정부 의지에 따라 원전 건설에 돌입하게 됐다.

1963년 내한한 국제원자력기구 조사단이 “197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원전 건설에 청신호를 밝혔다. 정부는 IAEA부지조사단과함께 1963년부터 1967년에 이르기까지 3차례에 걸쳐 국내 원전 건설 후보 지역 조사에 나서는 등 국내 원전 건설을 위한 초기 작업들을 진행했다.
 
고리 원전 1호기에 국가 명운을 걸다

건설 후보지 조사 결과 경남 고리 지역이 최종 선정됐다. 고리 1호기는 587㎿ 설비용량으로 준공됐고, 건설비도 약 1560억 원가량 투입됐다. 이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428억의 3.6배에 달한다.

또 1971년 국민총소득 3조 4570억 원의 약 5% 규모, 1977년 준공한 300㎿ 화력발전소인 여수 2호기 건설비 251억 원의 약 6배 규모다.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을 건 국책사업이었던 셈이다.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고리 1호기는 1967년 9월 수립된 장기전원개발계획에 따라 500㎿급 원전 2기를 1976년까지 건설하기로 확정 짓고, 1971년 11월 역사적인 첫 삽을 뜨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원전 건설 경험과 독자적 기술이 없어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빌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설계부터 시운전까지 모든 공정을 담당하는 턴키(Turnkey) 방식으로 건설 계약을 맺고, 고리 1호기 건설에 나섰다.

1971년 11월 착공에 들어간 고리 1호기는 준공까지 석유파동에 따른 물가상승과 근로자들의 장기 파업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히 1호기 건설 중 1973년 전 세계가 석유파동으로 인해 국제원자재가격이 폭등하면서 고리 1호기 건설 사업 폐기가 거론되기도 했다.

다행히 당시 교체된 한전 경영진이 대통령의 특별허락을 받아 추가공사비를 지급하고 건설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1979년 2차 석유파동까지 두 차례의 에너지 대란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석유 일변도의 전원믹스 구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전원 다변화 정책을 위해서도 원전 발전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격동기를 지나면서도 중단하지 않고 공사를 이어온 고리 1호기는 마침내 1977년 6월 26일 첫 시험운전을 거쳐, 1978년 4월 29일부터 첫 상업운전을 시작하게 된다. 준공과 함께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를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원전 보유국으로, 본격적인 원자력 발전 시대를 맞이했다.

당시 원자력을 산업에 활용한 아시아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인도까지 세 국가에 불과했기에,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원전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었다.
 
원전 수출까지 눈부신 발전…원전 강국 도약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를 통해 에너지 다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또 고리 1호기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를 겪으며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는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78년 상업운전 가동 당시 고리 1호기는 부산시 전체 연락 전력소비량인 31억㎾h보다 많은 47억㎾h를 생산해내며 획기적인 에너지 생산 설비로 평가받기도 했다.
고리 1호기의 성공적인 가동 이후, 고리 1호기 건설 및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원전들이 잇따라 들어서게 됐다. 2017년 현재 25기의 원전이 가동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고리 1호기의 성공이 있었다.

고리 1호기 가동을 시작으로 우리 원전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고, 2015년 4월을 기준으로 원전 누적발전량 3조㎾h를 돌파했다. 이는 201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6년간 사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며, 서울시가 65년간 사용할 수 있는 발전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 KTX를 이용해 서울과 부산을 약 1억 1500만 번가량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또 1960년 초 국내 원전 인력들은 선진국에서 기술을 습득해야 했으나, 고리 1호기 건설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도 자체적인 기술인력 양성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고리 1호기 건설과 시운전, 운영 등 각 분야에서 양성된 인력들은 지난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추가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며 한국표준형원전(OPR1000), 신형경수로(APR1400) 등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원전 기술을 축적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2009년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쾌거를 거두며 원전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을 다졌다.
 
추락한 신뢰…계속운전 아닌 ‘영구 정지’로

고리 1호기는 빛나는 성장과 성과를 이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만큼 수명을 다해가는 속도도 빨랐다. 1978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07년 6월, 설계수명 30년에 도달했다.

당시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은 원자력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설계수명 기한은 다가오는데, 계속운전에 대한 법적 근거조차 마련돼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설계수명이 만료되기 2년 전에야 가까스로 계속운전 심사에 대한 법적근거가 마련됐다. 법적근거에 따라 고리 1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1차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2017년 6월 18일까지 수명을 10년 연장했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원전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시킨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2012년 고리 1호기 블랙아웃 사건이다. 이는 당시 고리 1호기에서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던 중 외부 전원 공급이 끊어진 사건을 말한다. 이때 비상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발전소 전원이 12분 동안이나 완전 상실되는 블랙아웃이 발생했으나 한수원은 한 달간 이를 은폐해 논란을 빚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즉시 가동 중단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 2013년에는 원전 부품 납품과정 중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부품의 시험 성적을 위조해 수년 이상 한수원에 납품했던 것이 적발돼 공분을 샀다.

이처럼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하락하고 불안이 가중되면서, 1차 계속운전 종료 시한이 다가온 고리 1호기의 2차 계속운전 신청에도 제동이 걸렸다.

국민의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산자부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를 권고했다. 이후 한수원은 2017년 1차 계속운전 운영 허가 기간이 끝나더라도, 고리 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을 신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이었던 고리 1호기는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40여 년간의 가동을 멈추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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