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트럼프, 그리고 틸러슨
푸틴과 트럼프, 그리고 틸러슨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 승인 2017.01.16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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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한국에너지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정자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관한 국가안보팀의 브리핑을 받았다. 미국의 안보 책임자들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이 진주만 공격과 같은 강도의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적의 침공을 받은 것이고 대처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내정자에게는 이것이 대수로운 것이 아닌 것 같다.

러시아는 왜 이토록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러시아의 현 경제 사정과 구소련 회복에 집착하는 푸틴의 국수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연가스와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는 푸틴 재임 16년동안 최악의 경제 공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초 러시아 재무장관 안톤 실루아노브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2017, 2018, 2019년의 세수 확보를 위해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국방예산은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지만 구소련 회복의 야심을 가진 푸틴은 군사비를 한푼도 축낼 수 없다.  

미국의 다국적 석유화학기업 엑슨모빌의 CEO인 렉스 틸러슨이 미국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되면서 푸틴은 트럼프와 틸러슨이라는 폭발적인 원군을 얻게 됐다. 엑슨과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는 러시아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의 사업 파트너였고 이 때문에 틸러슨은 1999년 푸틴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푸틴은 틸러슨에게 2013년 외국인에게 주는 러시아의 최고 훈장인 ‘우정의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해 로스네프트와 엑슨은 5000억불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계약을 맺었지만 러시아의 크리미아 침공에 따른 유럽과 미국의 견제 조치로 오바마가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푸틴은 “이 조치는 반드시 미국이 후회하도록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엑슨은 현재 뉴욕주,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17개 주 검찰 총장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  엑슨이 30년전 자회사 과학자들로부터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대중이 알지 못하도록 은폐해 왔다는 혐의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그들의 창업자 록펠러 가족에게서도 소송을 당했다. 엑슨은 록펠러가 창업한 ‘스탠다드 유니온’에서 시작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틸러슨이 국무부장관이 돼 경제제재를 풀어주고 무산되었던 계약이 성사되면 경제회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을 축하하는 러시아 관료들의 이메일이 노출되었다는 CNN 보도도 있었다. 그들이 축하하는 것은 러시아 경제 회생의 모멘텀이 될 수 있겠지만 엑슨과 로스네프트의 계약에 따라 북극해에서 27억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면서 초래되는 환경 위협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닌 듯 하다.  

엑슨은 화석연료와 기후변화의 관계를 막대한 자금으로 30년 이상 은폐하고 대중이 의심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로 대응이 늦춰지면서 온난화로 북극해의 해빙을 녹게했고, 석유탐사를 위한 바닷길이 열리면서 5000억불 계약도 가능하게 됐다.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 영구동토대의 땅에서 메탄가스의 배출이 이뤄졌다.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효과가 24배 더 큰 메탄배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사실상 과학자들도 잘 모른다. 얼어있던 메탄 저장량이 얼마인지 아무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양은 현재의 온난화 보다 수십배 심한 강도의 것일지도, 지구를 금성처럼 생명이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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