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신문] 전력산업기술기준(Korea Electric Power Industry Code)은 원자력발전, 화력발전, 송·변·배전 분야 등 전력설비에 적용되는 기술기준의 국산화를 목표로 정부 지원 하에 전력산업계가 자율적으로 개발한 일종의 단체표준이다.
전력산업기술기준에서는 전력설비의 안전성과 신뢰성 및 품질확보를 위해 설계, 제작, 시공, 시험, 검사, 운전, 보수 등에 관한 방법과 절차를 국내실정에 맞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케픽(KEPIC)이 최초 발행된 것은 1995년이지만 실질적으로 추진된 것은 원전 건설이 한창 진행되던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설비들이 들어와 건설되고 있었다.
결국 각 원전마다 서로 다른 국가의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기술자립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만의 기준을 가질 필요성이 대두됐고, 케픽은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개발이 시작됐다.
초기 케픽의 개발은 정부의 권고에 따라 전력산업구조개편 이전의 한전에서 주관했다. 하지만 1995년 케픽의 최초 발행을 앞두고 케픽을 적용하는 주체인 발전사업자, 즉 한전이 케픽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게 된다.
이후 별도의 표준개발기구의 신설과 객관적인 제3기관으로의 이관 등 여러 방법을 모색한 결과 전력산업 전반에 밀접하고 업무 공백이 가장 적다고 판단된 대한전기협회가 가장 적합하다고 산업계의 의견이 모아져, 1995년 6월에 정부가 전기협회를 케픽 전담기구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초 원전 기술의 자립정책으로 시작한 케픽은 화력발전소까지 적용 가능한 전력산업기술기준 개발로 확대된다. 당시 1000MWe급 표준형 원전인 영광원전(현 한빛원전) 3·4호기와 500MWe급 표준형 화력발전소인 태안화력 1·2호기에 적용됐던 미국 등 해외표준을 대상으로 해 발전설비 건설단계에 필요한 표준 1만2000여 쪽을 우선 개발하고, 1995년 11월에 케픽 1995년판으로 최초 발행하게 됐다.
이후 2000년판, 2005년판, 2010년판, 2015년판 등 지금까지 5년 주기로 5회에 걸쳐 케픽이 발행됐다.
특히 6단계 사업으로 추진된 바 있는 케픽 2015년판의 경우, 총 7개 분야 480종으로 구성된 7만5000여 쪽의 방대한 자료로 집대성돼 국·영문판으로 발행됐다. 이 기간 동안 협회는 성능시험, 유지정비 등 신규표준개발과 국내 전력산업 기술 집약 시스템 운영 등을 통해 국제표준화 역량을 한층 강화하고, e북 시스템, 위원회 그룹웨어 등 웹 기반 운영시스템을 구축하여 사용자 만족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7단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케픽은 전력설비 국산화, 설비 신뢰성 향상 등 국내 전력기술 선진화 기반을 구축하는데 기여하면서 원전 건설·운영을 비롯한 전력설비 표준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영월천연가스화력 발전소에 케픽이 전면 적용돼 준공됐으며, 같은 해 아랍에미리트 원전 적용이 확정되는 등 해를 거듭함에 따라 케픽의 위상은 강화되고 있다.
케픽은 개발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술동향과 산업현장의 여건에 맞춰 지속적으로 유지 및 보완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에 따라 전기협회에서는 매년 케픽을 개정해 추록(Addenda)을 발행하고 있으며, 5년마다 새로운 판(Edition)을 발행하고 있다.
여기서 판은 직전 판에 대해 발행된 모든 추록의 개정내용과 신규 표준을 포함하게 된다. 추록은 참조표준 변경사항, 케픽의 산업계 적용 경험에 의한 개정 의견, 질의응답 결과에 따른 요건 개정, 기타 개선 사항 등을 매년 반영해 발행하게 된다. 현재 케픽의 경우 산업계로부터 요구되는 새로운 분야의 표준을 꾸준히 개발해 480종, 7만 50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표준으로 발전했다.
발행 절차를 보면 우선 실무연구팀 또는 간사가 초안을 개발하게 되면,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된 분과위원회와 산업계의 검토를 거쳐, 전문위원회의 심의 및 승인을 거치게 된다. 이후 정책위원회에 발행 보고를 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원자력·화력발전소, 송·변·배전설비 등 모든 전력산업 설비에 적용이 되는데, 안전성의 비중이 클수록 적용률도 높은 편이다. 특히 원전의 경우에는 한울 5·6호기 건설시 시범 적용을 시작으로, 신고리 1·2호기 이후 신규 건설되는 모든 원전에 전면 적용되고 있다. 2009년 수주한 국내 최초의 수출 원전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도 전력산업기술기준이 전면 적용됨으로써 국제화의 초석을 마련한 바 있다.
반면 기존 운영 중인 원전은 좀 다르다. 해외 기술표준을 적용해 건설된 기존 원전들은 기자재 보수교체, 장기가동중검사 등에 점진적으로 케픽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신고리 1호기 이후 국내 건설원전(10기) 전면적용 및 해외표준을 적용한 운영원전(PWR 16기) 전면 대체 적용 등 2020년 이전까지 국내 운영 중인 원전 전체에 케픽이 적용될 예정이다.
한편, 화력발전의 경우에는 원전과 달리 고시에 따른 강제 사항이 아니지만, 점차 그 적용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화력발전소의 건설 및 운영과 관련한 적용표준의 결정은 사업자 선택 사항인데, 2010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남부발전의 영월천연가스발전소가 최초로 KEPIC을 전면 적용한 사례이고, 최근 건설 중인 중부발전의 신보령화력 1·2호기는 최신형 1000MWe급 초초임계압 발전소로서는 처음으로 케픽을 전면 적용한 사례다.
그밖에도 강릉안인 1·2호기, 고성하이 1·2호기, 서울복합 1·2호기 등 신규 발전소 건설에도 케픽 전면 적용이 확정된 상태다. 아울러 성능시험, 유지정비, 환경 분야에서도 신규 표준이 개발됨에 따라 화력발전소 운영단계에서도 케픽 적용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송·변·배전 분야의 경우에는 IEC 국제표준을 많이 채택하고 있는데, 케픽은 ASME, IEEE 등과 같이 민간표준이기에 현재로서는 일부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전기협회는 송·변·배전 분야 국가표준개발협력기관(COSD) 업무 수임을 통해 관련 표준의 영역 확대에도 노력하고 있다.
케픽은 성능이나 효율성보다 안전성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기준이지만 다양한 부가가치도 창출하고 있는 기준이다. 그 이유는 바로 케픽이 하나의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수많은 표준들을 집대성해서 이를 단일 패키지화한 전력산업계의 ‘전용표준’이기 때문이다.
케픽에는 전력설비의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총 7개 분야 480종(2015년판 기준)의 단위기술기준이 체계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이 같은 점은 전력설비 건설 프로젝트에 적용할 경우, 단일 표준의 적용만으로 건설 및 운영 등 전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높은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국내 업체들은 원자력 분야 사업 참여에 대해 처음부터 어렵다는 인식 하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케픽은 이런 기업들에게 원자력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고, 업체들의 활발한 시장 참여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원가 절감 효과로 이어졌다.
케픽 적용의 직접적인 효과는 한글로 된 표준활용으로 기술자들의 표준 요건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된다는 점이다. 또한, 국내 제도를 운영하고 국산 기자재의 활용 폭이 넓어지면서 비용 절감 효과도 창출되고 있다. 더불어 전력산업 분야 표준 보유국으로서 국제 표준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돼 국격의 증진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 효과로 꼽을 수 있다.
자격인증제도는 원자력발전소 등 전력설비의 안전성 및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조직 및 인원이 케픽에서 규정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주관기관인 전기협회가 그 자격을 평가 및 관리하는 인증제도를 말한다.
이는 국내에서 적용하던 외국 기술표준에 의한 제도를 참조해 우리 실정에 맞도록 제도화 한 것으로, 국내기관에 의한 인증제도 운영으로 관련 정보입수 및 자격취득이 용이하고, 각종 외국 자격 취득 및 유지에 소요되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격인증제도의 종류는 크게 조직에 대한 자격인증과 개인에 대한 자격인증으로 나뉜다. 전자는 원자력 품질보증 자격인증을 받는 발전사업자·제조자·제작자·시공자(설치자)·재료업체·역무업체(설계, 비파괴, 열처리), 공인검사기관, 압력방출장치(안전밸브) 시험 및 용량인증 기관 등이 대상이며, 후자는 공인검사감독원·공인검사원, 등록기술자, 비파괴검사원 등이 그 대상이다.
자격인증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력 품질보증 자격인증’은 ASME 코드에 의한 인증제도와 유사하며, 케픽 원자력기계(MN), 원자력 전기 및 계측제어(EN), 원자력구조(SN) 및 공조기기(MH) 적용품목의 제조자 및 시공자 등이 전기협회로부터 소정의 자격인증서를 취득하도록 규정한 제도이다.
한편 공인검사 관련 자격인증의 경우에는 압력기기의 제조 및 시공과정에서 자격인증서를 취득한 공인검사기관의 공인검사감독원에게 훈련을 받고, 소정의 교육과정 수료 및 자격시험합격 후 자격등록 신청을 하면 자격인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력설비에 케픽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발전사업자가 원자력발전소의 인허가 서류인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에 적용을 규정하고, 구매 기술시방서에 적용을 명시해야 하며, 계약자는 해당 품목의 입찰 전까지 케픽인증을 취득해야 한다. 따라서 케픽 인증은 업체가 원자력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증취득을 희망하는 업체는 인증품목과 관련된 케픽을 구입해 검토하고 케픽 인증취득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케픽 자격인증서를 확보하기까지는 대략 1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자격인증인 만큼 엄정하고 까다롭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1997년 기존의 해외인증자격 전환업체 57개사에서 출발한 케픽 자격인증업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6년 8월 현재 케픽 자격인증업체는 총 234개사이다.
전기협회는 케픽의 미래 비전과 관련, 2020년도 비전을 ‘앞서가는 기준, 세계적 동반자(Advanced Standard & Global Partner)’로 설정하고 있다. 비전의 의미는 제대로 된 표준을 잘 만들어서 국내외로 널리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표준화 기술 선진화로 케픽을 국제적인 표준과 대등한 수준으로 도약시키고, 국내 기술의 집약과 반영을 통해 독창성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표준화를 도모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표준과 부합화해 국제적 활용 기반을 확대하고, 국내외 전력산업 여건에 부합하는 최적의 표준을 통해 경제적 효과 창출을 극대화 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전기협회는 ‘케픽 바이 케픽(KEPIC by kepic)’이라는 추진전략을 통해 14개 세부 목표를 설정했고, 목표 달성을 위해 차분히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제 케픽은 단순한 산업표준을 넘어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중심이자 세계 속의 표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기협회는 안전성, 전문성, 신뢰성을 바탕으로 케픽을 지속적으로 개발·보급해 전 세계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전력산업표준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현실화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