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폐장, 유예와 방치가 답은 아니다
고준위방폐장, 유예와 방치가 답은 아니다
  • 한국에너지
  • 승인 2016.05.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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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너지신문]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행정 예고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안에 대해 우리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부지를 선정하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2028년, 중간저장시설은 그로부터 7년 후인 2035년, 영구처분시설은 그로부터 또 18년 후인 2053년에야 가동된다고 한다.

30여년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고준위 방폐장 건립을 위한 로드맵을 처음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의의를 둘 수 있겠으나, 결국 우리 세대에서는, 현 정부에서는 이를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하겠다는 뜻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준위차를 막론하고 방사성 폐기물과 관련된 정책은 1983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부지선정 문제로 중저준위 방폐장조차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30년이 넘은 현재의 시점에 ‘일단은 10년후에, 25년 후에’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것이다.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을 짓는 데에 29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고준위 방폐장을 짓는 데에는 그보다는 좀 더 걸리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단순산술이었다는 비아냥도 일각에서는 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활동을 종료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 관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정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 아래에서 탄생했고 활동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권고를 들은 정책이 이렇다면 문제가 있다. 연구와 공론화에 30년, 건설하는 데 40년, 있을지 모를 부작용을 해결하는 데에는 또 몇 년의 세월을 소비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현재 원자력발전소를 24기 가동하고 있다. 방폐물은 현재 각 원전에 고스란히 보관되고 있는 상태다. 그마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더 이상 여유롭지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각 원전 내 방폐물을 보관하는 임시저장시설이 수년 내로 포화 시점을 맞는다. 2019년에는 월성, 2024년에는 고리와 영광, 2037년에는 울진, 2038년에는 신월성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지만, 이번에 내놓은 행정예고와 이에 따른 정책은 너무 지지부진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도 벗어난다. 원자력발전소가 현재의 상황에서 건설을 멈춘다면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신규 발전소를 짓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지금 현재로서도 포화상태인데, 발전소를 더 짓고 거기서 나오는 폐기물로 들어찬다면 원자력발전소는 발전이라는 기능보다 폐연료 폐기라는 기능을 더 우선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당장 신규 원전부터는 중간저장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상의 중간저장시설보다는 더 안전하게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건설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더욱 큰 문제는 어느 지역에서 고준위 방폐물 처리를 환영할 것인가다. 우리가 보기에는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는 데에 부지를 제공할 수 있는 지자체도 주민도 없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데에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데에도 흔쾌히 제공되지 않는 부지가 원자력발전 폐기물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을 짓는 데에 원활하게 제공될 수 있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고준위 방폐장의 문제는 원자력발전 분야의 선진국인 미국과 독일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세계에서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핀란드 정도다. 고준위방폐장 건설은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로서는 가혹한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과연 원자력을 전기 생산용으로 계속 사용을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진짜 공론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논의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나와 있는 대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를 통해 상용화에 바짝 다가선 풍력과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원이, 에너지저장장치와 이를 통한 에너지경영시스템 등은 전력생산과 소비를 아우르는 원자력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원자력 내에서 자체적이고 수용가능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진보된 기술로 안정화에 대한 연구와 검증을 한시 바삐 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적은 양의 폐기물에도 전전긍긍하면서, 후대에게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양의 위험한 폐기물을 전가시켜야 할 것이다. 비용이 더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에 시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을 그냥 흘러버리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원자력발전 정책, 특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정책을 위해 시간을 제대로 썼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대해서도 제대로 쓸 예정인지 들여다보고 싶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을 위해 허락된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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