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에서] 에너지업계, 취재원과 전문지의 관계는?
[양재천에서] 에너지업계, 취재원과 전문지의 관계는?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6.01.2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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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우리의 소원은 통일?
▲ 조강희 기자

[한국에너지신문] 취재원을 만나러 출입처를 다니다보면 종종 듣는 질문과 요청(?)이 있다.

“한국에너지신문에는 기자가 몇 명인가요?”

“왜 한국에너지신문에는 전문적인 기사가 안 올라오나요?”

이런 질문은 그나마 양반이다. 우리 매체에 대한 피드백이 있다고 위안 삼을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 질문으로 되돌려주자면 이렇다.

“귀사 홍보팀에는 인원이 몇 명인가요?”

사실 에너지업계는 공사기업을 막론하고 홍보팀의 인원이 많은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업무도 그 분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온갖 잡일(?)을 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대외적인 리스크 헤지는 몽땅 홍보팀이 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 일찍 나오는 건 기본이고 야근은 보너스다. 야근비가 나오는 곳도 있겠지만 그 돈이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그래서 참 피곤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더 진한 스킨십이 허용된다면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곳이 에너지업계 홍보 담당자들이다.

인원이 별로 많지 않은 전문 신문 역시 동일하다. 솔직히, 작은 매체의 기자에게 그런 날선 질문을 할 일이 아니다. 동병상련을 느끼는 게 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전문적인 내용을 왜 매체에서 보려고 하시나요?”

이 반문에는 진짜 심정이 담겨 있다. 전문지가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다면 사실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내용은 학교나 연구소에서 나오는 간행물에 어느 정도 있다. 그것을 기자는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지,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사실 모두 따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연구 내용이나 전문적인 내용은 전문지가 아니라 학술지에 어느 정도 소개가 된다. 기자는 그 내용 중에 일반 독자나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엮어 줄 수 있을 뿐이다. 결론은 질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전문인에 대한 내용이나, 전문적 내용을 풀어 써 주는 기사가 왜 없느냐고 물었어야 한다.

그 말이 그 말이었다면 좀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 매체가 좀 더 노력해 보겠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좀 곤란하다.

“왜 이렇게 전문지가 많은 겁니까?”

내가 하고 싶은 반문이다. 왜 이렇게 많은 발전 회사, 왜 이렇게 많은 가스 회사, 왜 이렇게 많은 석유 회사가 존재하는 것인가? 왜 이렇게 많은 신재생에너지 회사, 왜 이렇게 많은 배터리 회사, 왜 이렇게 많은 협회, 왜 이렇게 많은 유관기관이 있다는 말인가?

최근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 ‘복고’가 유행이다. 어딘가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같은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건너들은 얘기지만 에너지업계에 저유가 상황, 아니면 또다른 어떤 상황을 틈타(?) 각 업계에서 이합집산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실 하루 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어서 신선할 것도 없지만, 길지도 않은 기간동안 비슷한 푸념을 너무 들어 가볍지 않게 들린다. 에너지전문지 업계에도 이합집산이라는 상황이 엮어질지는 잘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여전히 아직도 한국에너지신문은 살아있다는 것.

PS: 한국에너지신문에 기고나 취재를 원하시는 모든 연락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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