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에세이] 이스터 섬, 그리고 파리협정
[특파원에세이] 이스터 섬, 그리고 파리협정
  • 김은영 미주 특파원
  • 승인 2016.01.11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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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두드리는 자연의 온전함을 위하여
▲ 그린랜드의 빙하 약 50톤이 운반되어 시계로 탈바꿈했다. 빙하가 녹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한국에너지신문]

인류 진행방향 ‘지속 불가능’ 에서 ‘지속 가능’으로 
사고와 생활습관 혁신해야 새로운 꿈꿀 수 있어


암흑같이 캄캄한 밤이었다. 이스터 섬에서 일어났던 일이 자꾸 생각났다. 너무 멀어 인류사에서 잊혀진 그 섬.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진 그 섬의 역사는 외부와 차단된 한 문명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멸망하는지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애초에 그 섬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고, 맑은 물과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다. 인구가 늘어난 이후, 씨족이 생겨나고 경쟁이 시작되면서 씨족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신이 필요했다. 석상을 만들고, 숲의 통나무를 이용해 바닷가로 옮겨놓은 후 보름날이면 제사를 드렸다. 씨족이 늘어날수록 경쟁적으로 석상의 크기와 숫자는 늘어났다. 그와 함께 숲에 나무도 사라져 갔다. 숲이 없어지면서 모든 것이 부족해졌다. 바다가 오염되어 고기도 잡아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이 봉기해 지배계급을 죽인후 자신들도 싸워서 결국은 인육까지 먹은 증거가 동굴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졌다.


우주의 바다에 떠있는 지구라는 행성은 어떤가? 사자나 호랑이가 뛰어다닐만한 숲이 남아 있는 것일까? 산성화되어 가는 바다에서 부루 웨일이나 돌고래는 얼마나 오래 헤엄쳐 다닐 수 있을까? 아랍의 봄으로 시작한 민중봉기는 독재자는 내려 앉혔지만, 극악무도의 테러집단이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이들은 세계의 피끓는 젊은이들을 파괴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초여름같은 워싱톤의 날씨 속에서 연말을 맞이한다. 전 NASA 과학자 제임스 한센박사는 기후변화로 지구에 축척되는 에너지가 핵폭탄 40만개를 매일 터트리는 것과 같은 양이라고 계산했다. 이대로 가면 세기말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8℃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정상온도를 15℃로 본다. 우리 몸의 온도가 몇도 더 올라간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새벽이 오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잔혹한 테러의 상처가 그대로 노출된 인간사 비극의 현장. 파리에서 어두움을 털고 새벽을 깨우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인류의 진행방향을 지속불가능에서 지속가능으로 바꾸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것입니다.” 12월 12일 전 세계의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를 총망라한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유엔기후회의 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함께 울려 퍼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외침이다.


세계는 감축목표를 애초의 목표인 2℃보다도 더 강한 1.5℃로 낮추었다. 그리고 그 이후 5년마다 모여 더 낮은 감축목표를 설정한다. 부자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기후변화의 적응과 대책마련을 위해 100조원의 기금을 조성한다. 만약, 어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위해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수행해 줄 경우, 그 프로젝트는 자국의 감축 목표에 포함된다. 감축의 실행 방법으로는 종래의 산업 분야에 더해 숲의 재조성과 빗물의 이용을 중요한 분야로 추가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결정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걱정하고,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는 것은 물론, 지속해서 노력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1.5℃가 더 마땅한 목표다. 2℃ 한계점이 높다는 것은 그것을 최초로 제시한 전 NASA의 한센박사 또한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 또한 기후변화 취약지역인 섬 국가들이 주장한 1.5도 한계점을 강력히 지지했다. 일찍이 그는 시진핑으로부터 양국간 배출목표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프란시스 교황은 특별교서로 ‘우리 모두의 집’을 살리자고 호소했고, 반기문 총장은 기후변화 취약지구를 돌아다니며 심각성을 알려왔다. 그리고 수많은 세계의 지도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협조해 왔다.


회의장 밖에서의 열기는 더 대단했다. 각국에서 78만명이 행진하며 파리에 도착했고, 전세계적으로 총 30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2천여개의 행사가 열렸다. 20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됐던 파리에서의 공식 도보행진은 테러사건으로 무산되었지만, 프란시스 교황의 검은 신발과 반기문 총장의 운동화를 포함한 행진자들의 신발 2만 2천여개가 그 광장에 진열되었다. 그린랜드에서 옮겨진 50톤 상당의 빙하가 광장에 있는 시계 앞에 진열돼 녹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린랜드의 빙하가 그렇게 녹고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인류사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은 적이 없다. 이것은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 속성의 훌륭함을 믿을 수 있다는 증거다. 이제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지구의 숲이 다시 울창해진 이후, 하늘에는 새가 날고, 바다에는 고기가 넘치는 이 행성에서 그 풍요함과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갈 우리 후세들을 위한 꿈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 지속불가능을 향해 달리는 현재의 사고와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생활습관이어야만 새로운 꿈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벽을 두드리는 자연의 온전함과 아름다움을 위하여 우리를 내어주는 일이고, 인간다움의 훌륭함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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