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재화 경계 허무는 에너지저장장치
서비스-재화 경계 허무는 에너지저장장치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5.07.13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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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신산업의 중심, 에너지저장장치
▲ LG화학 ESS 모습

[한국에너지] 상품은 시장에서 팔린다.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지점에 생기고, 바로 그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수요자가 중시하는 조건은 제품의 ‘품질’이다. 가격은 어쩌면 2차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급자가 중시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혹시 제품의 ‘재고 수량’이 아닐까? 공급자가 수요자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재고는 정해진 기간 내에 소진돼야 한다. 그래야 수요자가 원하는 ‘품질’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에서 너무 빨리 소진돼도 문제다. 예측이 잘못돼 더 팔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위에 나오는 상품의 예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재화 상품에 해당되는 예다. 서비스 상품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바로 그 장소와 그 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제품의 재고 수량 같은 것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다만 ‘불만족’과 ‘만족’이라는 고객의 평가만이 기다리는 시장이 바로 서비스 시장이다.

전기공급 ‘서비스’는 서비스 시장의 상품이다. 그것도 거의 대표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구분은 적어도 전기에서만큼은 흐려지고 있다. 바로 에너지저장장치 덕분이다.

에너지저장장치···그 시작은 ‘전지’
전기 공급 품질 제고에도 단단히 ‘한 몫’

 
에너지저장장치는 발전소에서 과잉 생산된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일시적으로 전력이 부족할 때 송전해 주는 저장장치를 말한다. 전기를 모아두는 전지(배터리)와 전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주는 축전지(커패시터) 등 관련 장치들로 구성된다. 전지식 에너지저장장치는 리튬이온과 황산화나트륨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에너지를 저장해 사용하는 장치인 전지는 기원전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용 전기제품 등에 충전과 방전을 꽤 장기간동안 할 수 있는 2차 전지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일본에서부터다. 처음에는 휴대용 전기제품 정도에서만 쓰이던 전지가 골프카트나 오토바이, 놀이용 탈 것 등에 쓰인 것이 지난 2000년대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충전식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돼 국내외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렇게 활용도가 높아진 2차전지는 자극에 의한 폭발 등을 안정화하는 기술이 점점 향상되면서 전기에너지를 충전하고, 그렇게 충전된 에너지를 비교적 긴 시차를 두고 공급하는 데에까지 발전해 가고 있다.

그런 발전상은 전기공급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생산과정을 보면 ‘서비스’시장에서 거래되기에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 바로 전기산업이다. 특히 공급과정에서 손실률이 많고, 한 번 생산된 전기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취약해 과잉생산에 대한 대비가 약한 대표적인 산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물량과 기술로 극복할 수 있게 되면서 에너지산업은 이미 서비스 상품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전기’라는 저장 가능하고, 재고도 엄연히 존재하는 재화 상품을 공급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력 주파수 조정’ 새로운 가능성 열어
신재생 에너지 부족분 보충에 특효…야간전력 저장해 ‘피크’ 시간대 사용도 가능

 

▲ 자료사진: 에너지저장장치는 신재생ㆍ친환경 에너지의 불안정한 전력 생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저장장치의 가장 큰 장점은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불안정한 전력 생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생산량이 일정하지 않아도 에너지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과 우리나라에도 조성된 에너지 자립 공동체 또는 단체 등은 필수적으로 대형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낮은 요금의 야간 전력을 저장해 전력소비가 집중되는 시간에 활용할 수도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효과도 실질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전기 요금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수요 공급 관리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전기산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기는 특히 흐름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제품에도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주파수관리가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갑자기 과전류가 흐르거나, 반대로 전류가 흐르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제품의 잔고장과 이로 인한 재산 피해는 막대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전력 주파수 조정의 해결책으로서도 에너지저장장치의 활용도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량 분포를 보면 화석연료의 분량이 월등히 높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석탄 및 가스, 복합연료와 석유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66%에 달한다. 나머지 중에서는 원자력이 29%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수력 및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고작 5% 내외다. 화력의 발전량 비중이 월등히 높은 이유 중의 하나는 생산 원리가 간단해 전력 주파수 조정용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주파수 조정을 위해 매일 발전을 유보하는 용량은 약 500㎿에 달한다.

따라서 기존 생산된 에너지를 일정 기간만이라도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는 기존 화력발전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그만큼의 에너지 과잉생산을 막는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주파수는 60㎐로 맞추고 있는데, 저장장치를 활용하면 5% 가량을 예비전력으로 확보할 수 있다. 주파수가 떨어지면 이를 활용해 출력을 높이고 주파수가 높아지면 출력을 줄이고 그만큼에서 손실분을 뺀만큼은 다시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 주파수 조정용 에너지저장장치는 주파수가 초과될 때 전력을 충전해 담아놨다가 주파수가 부족할 때 전력을 방전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전은 지난해부터 2017년까지 500㎿의 에너지저장설비를 변전소에 단계적으로 설치하기로 하고 1단계 시범사업으로 신용인 24㎿급, 서안성 28㎿급 변전소에 주파수 조정용 에너지저장설비를 설치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연간 발전 대체효과는 3000억원에 달한다.

양산과 본격 활용에는 시간 더 소요될 것
상용화 연구는 ‘끝이 보이는’ 현재진행형

여기에도 물론 한계는 있다. 아직은 생산비와 설치면적이 크다는 점이 그것이다. 신용인 변전소에 12개나 설치된 전지 컨테이너 1개에는 BMW i3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무려 6600개가 들어간다.

더구나 이 컨테이너는 습기조절, 단열, 외부먼지 유입 차단 등의 특수기능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전지의 일반적인 문제점인 폭발이나 단락 등에 리튬2차 전지는 특히나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양산과 본격 활용을 위해서는 적절한 가격이 형성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렇다고 상용화되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국내에도 이미 에너지자립 공동체가 속속 들어서고 있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활용도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에 한전 등의 업체가 이미 이를 시범용으로라도 운영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한전이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모잠비크라는 나라에 에너지저장장치를 연결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을 통해 제어하는 소규모전력망의 경제성을 실제적으로 검증하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 그 예이다.

OCI, 한양대학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는 지난 6월말부터 공동으로 분산형 태양광발전의 불안정한 출력을 안정화시키고, 태양광발전량과 소비량의 불균형 및 공급 시차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를 상호 연계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에너지저장장치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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