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없는 대자연을 위해
목소리 없는 대자연을 위해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 승인 2014.11.17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한국에너지신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커피 소리가 “꿀덕꿀덕” 크게 들린다. 그렇게 급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행렬에 끼어들자마자 한 사람이 내가 들고 있는 커피를 유심히 본다. 마시겠냐고 했더니 잡아채듯이 컵을 뺏어서는 꿀덕꿀덕 한참 들이킨다.

지난 3월 1일에 캘리포니아에서 떠난 34명 중의 한 사람이다. 그 먼 길을! DC 프렌드십 하이트인데 여기는 매릴랜드와 디시 경계선이고 어디선가 나타난 오토바이 경찰이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8개월간의 대장정의 마지막 날이다.

그 사람은 멈추어 나를 보고는 한 모금 더 마셔도 되냐고 묻는다. 친구를 주려고 산 커피이지만 어찌 그 눈길을 거부할 수 있으랴. 그의 피곤한 몸에 따끈하고 달콤한 한 순간을 선사할 수 있다면.   

워싱톤 모뉴먼트가 저 앞에 보인다. 50개의 도시를 들리면서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간마다 합세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키스톤 파이프라인과 화석연료 에너지 산업을 규제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애리조나 사막을 가로지르고 콜로라도의 높은 산을 넘었다.   

한 부인이 강아지 한마리와 함께 유모차를 끌면서 걸어 간다. 강아지도 캘리포니아에서부터 걸어 왔느냐고 물으니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고개만 끄덕인다. 오늘의 침묵자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양쪽에서 ‘의사협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한다. 플래카드 한 쪽을 든 턱수염이 더부룩한 중년의 의사는 행진자들의 건강을 돌봐왔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 애리조나 사막을 건널 때였는데 뜨거운 낮 1시를 피하려고 새벽 4시반에 일어나 행진해서 작렬하는 태양을 업고 산을 올라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작 산에 올라가보니 어이없게도 눈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 부인의 발에 생긴 물집을 치료하려 물집을 터트리고 보니 그안에 줄줄이 더 많은 물집이 생겨 있었는데 그런 것은 의사로서도 처음 봤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뒤에서 걸어 오는 노인의 신을 가리킨다. 그러고보니 그 분의 운동화가 특수하다. 밑창에 스프링이 달려 있다. 행진 도중 무릎을 다쳐서 집에 가야 했는데 의사의 아이디어로 특수 운동화를 제작해 신고 2주 후에 다시 행렬로 돌아왔다고 한다. 덕분에 행렬의 맨 뒤에서 걸어오는 최고령의 77세 할아버지까지 한 사람의 탈락자도 없었다.

행진자들의 참여 이유는 다양하다. 의사협회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주로 선교를 한다는 장로교 목사님은 “이 세상이 몇 사람의 욕심의 인질로 잡혀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산다는 한 분은 어느 날 집에서 바베큐를 하는데 검은 먼지가 까맣게 몰려와 집과 동네를 새까맣게 덮었다고 한다. 그것을 주민들과 함께 시에 진정했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아서 알고 봤더니 그 싸움의 대상이 정치권에 큰 돈을 대는 화석연료 거부 ‘코크 브라더스’였다고 한다.    

이 행진에서 한 사람은 언제나 침묵을 한다. 그것은 기후변화로 희생된 목소리 없는 자연과 희생자를 대변하기 위해서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시도해 109일간 침묵을 지킨 22살의 발랄한 에모리대학의 여학생 샨 그랜을 만났다.

“이번에 가장 깊이 체험한 것은 인류가 너무나 자연과 떨어져 있다는 것이예요. 옥외의 자연과 인간이 만든 실내가 너무나 다른데 그 조정 가능한 실내에서 우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잖아요. 우리는 자연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기후변화를 일으킨 베이비부머 부모 세대와 달리 자신 세대의 미션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백악관 앞 라피엣 공원에서 간단한 종료식을 가졌다. 각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해준 메모들을 레이스에 묶은 길다란 줄을 잡고 한 사람씩 나와 자신이 선택한 메세지를 읽었다.

일행의 대모격인 할머니 한 분은 두손에 새 깃털 하나를 들고서 “이 깃털은 나바호 인디안이 선물한 것으로 자신에게 ‘이 땅이 성스러움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행진의 마지막 피곤한 몸을 누이는 곳은 성스테판 성공회 교회이다. 거기서 그들은 지나온 여정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시와 노래와 춤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목소리 없는 자연과 멸종된 동식물 그리고 또 워싱톤 정치권에서 무시당하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 없음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