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을 향한 사회(1)
하늘을 바라보는 눈 '모아이'
지속가능성을 향한 사회(1)
하늘을 바라보는 눈 '모아이'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 승인 2014.06.30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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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한국에너지신문] 사람들이 사라진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수백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최근 몇 예만 들어 본다. 말레시아 항공 370편이 239명의 승객을 태우고 사라졌다. 세월호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승객 275명과 함께 사라졌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시골에서는 뒷산이 산사태로 무너지면서 마을주민들을 생매장 시켰다. 흙이 너무 두껍게 쌓여 재해 현장을 그대로 집단 무덤으로 만들겠노라고 마을 시장이 선언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상도 순탄치 않다. 중동의 이삭과 이스마엘 후예들의 지속되는 집안 싸움은 잦아지기는 커녕 과격의 도가 점층되어 무정부 상태의 위기까지로 치닫고 있다. 총기규제를 거부하는 미국에서는 무장 경찰이 학교를 전쟁터인양 지켜야한다. 미 국방부의 최근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국가안보가 그 어느 전쟁보다도 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 자꾸 생각나는 섬이 하나 있다. 지구에서 가장 먼 태평양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원주민의 언어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부른다. 포르투갈 제독이 처음 이 섬에 상륙한 날이 부활절이어서 유럽인들은 ‘이스터섬’이라 부른다. 처음 상륙해서 이들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바닷가에 줄줄이 커다란 석상들이 바다를 등지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몇 안되는 주민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으나 그들도 모른다고 한다. 도대체 이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 미스테리의 섬은 곧 고고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의 초점이 되어 진행된 다양한 연구에서 내려진 결론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한다. 이 섬에는 고도의 문명이 발달되었지만 주민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지속불가능성에 기초를 두었기에 사라졌다는 것과 그 지속불가능성의 주요인이 이 석상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석상들을 원주민의 언어로 ‘모아이’라고 하는데 그뜻은 ‘하늘을 바라보는 눈’이다. 키가 10m, 무게가 56톤이나 크고 무거워서 나무를 이용해야만 바닷가까지 운반할 수 있다. 이들은 보름밤이면 석상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모아이들은 신과 땅사이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신의 중재자로 믿었고 각 씨족들은 경쟁적으로 더 크게 더 많은 모아이를 만들어 바닷가로 옮겨 놓았다. 섬 전체에서 900여 개나 발견됐다.

최초의 원주민이 이주해 왔던 1200년대 쯤에는 섬에는 숲이 울창했다. 섬 전체에는 맑은 물이 흘렀고 비옥한 땅의 농사 소출은 풍성했고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카누를 만들고 모아이를 바닷가로 날랐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43km2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섬에 인구가 2만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기만 하고 다시 심지 않았음이 꽃가루를 이용한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나무는 계속 잘려 나가고 숲이 사라지고 토양은 피폐해지고 물은 오염되어 인근 바다에는 고기가 없어졌다. 물과 음식이 귀해지면서 노동계급이 봉기해 지배계급을 없애버리고 노동계급은 서로 싸워서 죽고 죽이면서 결국은 멸종과 함께 문명도 사라졌다. 고고학자들은 섬의 동굴에서 고래뼈와 사람뼈가 같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이 인육까지 먹었음을 유추했다.

수년간의 가뭄으로 곡창지대인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서부지역은 지속되는 산불과 함께 농산물 수확이 3분의 1이 줄었다고 한다. UN은 시리아의 가뭄으로 발생한 난민이 5100만명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지구의 폐라고 부르는 아마존은 수년간 지속적인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만 팜오일을 수확하기 위한 불법 벌목을 막을 길이 없다.

숲은 눈에 보이는 신의 은혜이다. 숲은 식물과 동물이 산소와 탄소를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사랑의 장소이며 생명이 잉태되고 번식하며 죽음이 발효되어 맑은 물과 공기로 정화되는 성역이다. 숲은 신의 창조와 나눔과 정화의 속성을 가장 가까이 느낄수 있는 거룩한 곳이다.

우리의 종교는 철저히 종족중심적이고 환경을 배재한 인간만을 위한 것이어서 자연은 상생의 대상이 아니고 소비의 대상이다.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의 종교가 숲의 거룩함과 신성함을 인식하고 눈에 보이는 신의 은혜인 숲의 보호를 강구하지 않는 한 우리도 이스터섬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스터섬 바닷가에서 모아이들은 오늘도 그 큰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신도 자신이 부여한 은혜의 가치를 모르는 이스터섬 주민들의 우매함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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