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을 세계일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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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민규 기자
  • 승인 2014.05.27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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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한국에너지신문 소사
▲ 올해로 창간20년을 맞이한 한국에너지 제호 변천사. 가술린저널에서 격주간 한국에너지신문, 현재의 주간 한국에너지까지.

시작은 미미했다

1994년 5월 3일, 등록번호 라_6584로 이름을 지은 한국에너지신문이 창간 20년을 맞이했습니다. 솔직히 20년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처음으로 상자 안에 보관하고 있던 한국에너지신문의 역사를 풀어 헤쳐 보았습니다. 

창간호의 제호는 ‘가솔린저널’이었습니다. 에너지다이제스트를 발행하는 잡지사 김관술 사장이 창간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간호는 상자 안에 없었습니다. 2호부터 보관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창간사의 변을 읽어 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제호가 말해주듯이 석유산업의 발전을 위해 창간된 국내 최초의 석유산업 전문지였습니다. 기사 내용도 모두 석유관련 내용입니다. ‘가솔린저널’의 제호로 발행된 것은 4호까지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발행하는 월간지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1994년 9월 30일 발행된 5호부터 ‘한국에너지신문’으로 제호를 바꿨습니다. 발행체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에너지산업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월간에서 격 주간으로 발행했습니다. 이러한 발행체제는 97년 9월까지 지속됐습니다. 

1997년 10월 6일자 67호에는 사고가 게재돼 있습니다. 9월 내부사정으로 인해 신문을 발행하지 못해 독자님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내용입니다. 편집국을 총괄하는 당시 남부섭 부장의 명의로 돼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너지신문의 발행인으로 되어 있는 남부섭 대표이사가 한국에너지신문을 인수하면서 한국에너지신문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1998년 1월 최기창 사장에 이어 2004년 7월 이명용 사장이 한국에너지신문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일들

가솔린저널 2호(94년 6월 24일자)에는 ‘정유 5사 휘발유 전쟁’이라는 기사가 톱을 장식하고 있군요. 주유소 사진에는 리터당 39원을 할인해 598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격세지감이라 아니할 수 없겠지요.

66호(97년 8월 18일자)에는 ‘북한 경수로 19일 첫 삽’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KEDO협정, 남북 공동사업 분단 이후 처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동해항에서 기공식에 참석하러 가는 한나라호를 배웅하는 흑백 사진에는 모두가 하얀 셔츠를 입고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지금 남북관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현대 우리 에너지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67호(97년 10월 6일자) 한국에너지신문의 필진이 바뀌고 본격적인발전 궤도에 들어선 첫 페이지에는 ‘발명왕 에디슨과의 만남’ 전시회에 10억 짜리 전축도 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에디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회라고 합니다.

1997년은 민자발전사업을 처음 도입한 해로 민간 기업이 발전사업권을 수주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있습니다.

69호(97년 10월 13일자)에는 국가 에너지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제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확정지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은 20년 단위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지만 시작 단계에서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공이 SK로 사명을 변경한다는 광고도 있습니다. 72호(97년 11월 3일자)의 인천 LNG 인수기지 준공 기사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한갑수 가스공사 사장이 참석한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182호(98년 2월 9일자)에는 대체에너지를 2006년까지 2% 보급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10년간 민자를 포함해 52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으로 최초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것입니다. 제주도 마라도에 50kW급 풍력발전기를 시범 설치하는 것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118호(98년 11월 16일자)에는 한.중 첫 전력협정을 체결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중국과 에너지 분야의 교류 물꼬를 튼 첫 번째 협정으로 의미가 있지요. 이어 119호에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찬반 논의설전’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서울대 이승훈 교수와 김태유 교수가 논쟁을 벌이는 공청회장에 400여 명이 참석했다는 내용입니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 이후 일 년 만에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43호(99년 6월 21일자)에는 미국의 엔론사가 에너지 산업 진출을 가속화 한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SK와 전력·가스 사업에 공동 진출한다는 내용입니다. 에너지 분야에 미국의 진출이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6호(99년 7월 12일자)에는 석유공사가 전남 여수에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석유 비축기지를 준공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지하저장기지의 준공으로 당시 국내 석유 소비량의 약 51일 분을 저장할 수 있는 선까지 비축 규모를 확대 할 수 있었습니다. 준공 사진에는 나병선 석유공사 사장이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지하비축기지인 관계로 조감도 앞에서 보고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153호(99년 9월 6일자)에는 ‘강원랜드 카지노 첫 삽 뜨다’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400여 곳의 탄광을 폐쇄하고 태백·정선 탄광지역이 대변신을 맞이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96호(2000년 8월 14일자)에는 ‘이루크츠크 PNG사업 본격화’라는 기사에서 한·중·러 3국간 정부 공식서명만 남아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사업은 아직도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189호(2000년 6월 19일)에는 북한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1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손을 치켜들고 활짝 웃는 사진이 역사적 기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남북교류로 당시 1000만 톤의 재고를 안고 있던 무연탄 북한 공급이 경제협력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상 200호 까지의 한국에너지신문이 기록했던 에너지의 역사를 간략히 간추려 보았습니다.

세계 일류로 가는 길

한국에너지신문사는 세계솔라시티 대구총회를 계기로 전시컨벤션 전문기업인 엑스코와 2004년 그린에너지엑스포를 개최해 올해 1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불모지나 다름없던 당시에 재생에너지 산업발전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재생에너지 전문 전시회로 출범했습니다. 시작 당시 200부스 규모도 되지 않았으나 발전을 거듭해 2011년에는 1000부스 규모를 달성하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산업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린에너지엑스포는 국내 에너지 산업을 대표하는 전시회로 발전한 것은 물론 이 분야 세계 10위권의 컨벤션으로 인정받아 우리의 에너지 산업은 물론 컨벤션 산업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컨벤션 산업의 양축인 비즈니스 컨퍼런스를 재생에너지 11개 전 분야에 걸쳐 운영하여 최고의 재생에너지 비즈니스 장으로 만든 것은 물론, 문화관광부로부터 2013년 국내 3대 컨벤션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시작은 비록 보잘것 없었지만 20년을 에너지인들과 함께 걸어왔습니다.

우리의 에너지 산업이 세계일류로 가는 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 한국에너지신문사는 2004년부터 국제 그린에너지엑스포 공동주관사로 참여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화해 기여해오고 있다. 사진은 2013년 엑스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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