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카바나의 추억
코파카바나의 추억
  • 이승재 명지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9.0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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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재 명지대학교 교수
코파카바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해변이다.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에 있는 이 해변은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15년 전 리오데자네이루에서 ISAP 학회가 열려 참석한 적이 있다. 하루는 그 날의 학회 일정이 끝나 같이 간 동료 교수 두명과 함께 그 유명한 코파카바나 비치를 가기로 하고 나서려는데 호텔 측에서 말린다. 밤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정 가려면 대신 덜 위험한 이파네마 비치를 가라고 한다. 조금 망설여졌으나 우리는 건장한 한국 남자 세 명인데 뭔 일 있겠는가 싶어 그대로 나섰다.

택시를 타고 드디어 코파카바나비치에 도착했다. 길가에는 많은 레스토랑과 술집으로 휘황찬란했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이리 사람이 많은데 뭐가 위험다고 그랬을까하고 비웃고는 유유히 물가를 향하여 걸어 나갔다.

거의 물가에 다가와 물위를 어른거리는 달빛을 바라보며 “야, 정말 좋구나 !”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수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몸을 웅크리고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보자 그들은 와락 덤벼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덤벼드는 괴한들을 손으로 쳐서 물리쳤다. 그리고는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나에게 덤벼들듯하다 포기하고는 다른 쪽을 향했다. 다른 동료 교수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또 다른 괴한들에게 벌써 잡혔다. 나는 동료들이 그들에게 붙잡힌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를 돌아 멀리 보이는 불빛을 향하여 뛰어가기 시작했다. 뛰어가며 “폴리스 폴리스 헬프 헬프”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드디어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경찰도 왔다. 경찰과 나는 물가를 향해 뛰어갔다. 강도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쫓아가며 총을 쏘았다. 그러나 하늘을 향하여 쓴 엄포였다. 동료교수들은 넋이 나가 눈이 풀리고 말도 하지 못하였다. 옷도 다 찢겨 너덜너덜 했다. 강도들은 몸을 뒤지느라 옷을 다 찢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시계, 담배, 라이터등 몸에 지닌 모든 것을 털어갔다. 그리고는 아마도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하여 어떻게 할까 하고 잡아놓고는 궁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경찰이 돌아왔다. 경찰은 자기도 혼자라 애초 그들을 잡을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한마디씩 한다. 어제 그제도 두 명이나 칼에 찔려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세상에...

우리는 호텔의 충고에 따라 각자 현금 삼십여 불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털린 돈이나 물건은 많지 않았다. 동료 한 분의 시계가 가장 값진 물품이었으나 우리는 정신적으로 힘들고 지쳐서 그만 됐다고 잊어버리겠다고 했다. 경찰도 의당 매일같이 있는 일이라 귀찮은데 잘 되었다 싶은지 가버렸다.

동료들의 얼굴은 여전히 백짓장 같았다. 우리는 맥주 집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참을 말도 못하고 앉아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맥주 한잔을 더 들이키고서야 정신이 돌아와 말문이 열렸다. 그놈들이 덥치고는 두 놈이 양팔을 잡고는 다른 놈이 칼을 들이데는데 죽었구나 싶었다 했다. 돈이 얼마 안나오자 칼로 옷을 막 찢고는 뒤져서 나오는 모든 것을 털어갔다 했다. 만약 나마저 같이 잡혔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을거라고 했다. 나라도 안 털려 그래도 이렇게 맥주라도 한잔하고 호텔로 돌아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말도 하면서 점차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로소 주변에서 브라질에 대하여 한 말이 맞구나 했다. “브라질은 빈부 격차가 심해 강도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데 강도가 따로 없다. 누구나 상황이 되면 강도로 변한다. 심지어는 아이들마저 돈있어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면 노리고 있다가 턴다. 으슥한 골목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버스 뒷좌석에서도 털린다. 관광객은 일차 타깃이 된다. 리오데자네이루에 사는 사람치고 강도를 서너번 안 당한 사람이 없다” 등등. 그러니 강도를 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도는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웃통도 벗고 팬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웃음을 찾았다. 정말 인생에 하기 어려운 경험을 했다고. 이후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 때 이야기를 한다. 코파카바나는 두고 두고 술안주를 삼아 평생 가지고 갈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15년전 얘기다. 지금은 브라질도 많이 변했으리라.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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