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유 교수 고향에 돌아오다?
김태유 교수 고향에 돌아오다?
  • 한국에너지
  • 승인 2013.07.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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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새 정권 들어서 출범한 에너지 테크 혁신포럼의 기조 연설자로 서울대학교 김태유 교수가 기조 강연자로 나왔다. 명쾌하고 논리적인 강연은 꽤나 세월이 흘렀지만 200여명의 청중을 사로 잡았다.

강연의 요지는 역사적으로 영국이 석탄을, 미국이 석유라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산업 기술과 융합시켜 산업 강국으로 발전한 점을 예로 들면서 충분한 에너지 공급 기반을 갖춰 지식산업 사회의 발전을 구가해야 한다는 논지였다.

그러나 강연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김 교수가 포럼 출범의 초대 기조 강연자로 나섰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포럼의 의장을 맡은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요청이 있었지 않나 싶었다.

김 교수는  이 전장관이 국 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계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시대의 화두인 창조경제와 에너지를 연결시킬 적임자로 김 교수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이날 김 교수의 강연은 그가 지난 1998년 전력산업 민영화 문제의 토론장 이후 약 15년 만에 이루어진 에너지 분야의 강연이었다.


김 교수는 과거 자원경제학회 회장,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를 역임했을 정도로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사실상 에너지 학계 정책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했다.

에너지 분야를 떠났으면서도 김 교수는 에너지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해 이면에서 정책 자문역을 가끔씩 해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향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해외자원개발과 재생에너지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의 이런 제안으로 해외자원개발 예산은 3배 가까이 늘어나고 2005년부터 획기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이 추진됐다.

이 두 분야가 오늘날 에너지 분야의 핵심 정책으로 발전한 이면에는 김 교수의 혜안이 초석을 놓았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 산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던 김 교수는 1998년 전력산업 민영화를 계기로 이 분야를 떠나 정보통신 쪽으로 갔다. 

김 교수는 외환위기가 오기 전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민영화 방안을 5년여에 걸쳐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 극복책으로 전력산업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요식행위로 여러 공청회를 열면서 구색을 갖추기 위해 김 교수를 반대론자로 내세웠다. 어이없는 역할에 김 교수는 극구 사양했지만 정권은 공청회의 구성요건을 갖추기 위해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김 교수를 반대론자로 끌어냈다.

여기까지는 연구비를 확보해야 먹고 사는 교수로서 어쩔 수 없이 악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공청회가 끝난 뒤 그에게는 싸늘한 시선과 함께 모든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다. 한 때 정부 부처에 문턱 없이 드나들던 김 교수에게 이 시절 사무관이 “그렇게 높은 줄 처음 알았다”고 고백한 옛 일화가 있다.

필자는 강연을 마친 김 교수에게 “이제 고향으로 돌아 왔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아직 못 돌아온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인재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에너지 테크 혁신 포럼이 김태유 교수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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