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수력, 40년의 집념이 성공을 일궈 내다
대양수력, 40년의 집념이 성공을 일궈 내다
  • 남수정 기자
  • 승인 2013.04.01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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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력 한 우물로 매출 100억원 달성
섬진강에 10MW급 수차 개발 중

 

박봉일 대양수력 사장
한 젊은 청년이 창업을 했다. 비상용 디젤 발전기를 만들어 파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발전기 시장에서 10년을  고군분투 했지만 밥도 제대로 먹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고민하던 청년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소수력 발전기 터빈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그때가 1983년이었다.

서울 구로동 온수 기계공단, 남의 공장 한 구석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망치 하나가 전부일 정도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러 상상도 못하던 일본 수출의 길에 나섰다. 일본 가고시마 신소기에 500kKW 수중터빈 발전기를 주문받아 제작하고 있다. 터빈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검사할 정도로 까다로운 검증을 거쳤다.


외국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수차 터빈 시장에서 발을 내딛기란 더욱 어려웠다. 제품을 만든다고 영업을 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었다. 3년이 지나서야 소수력에 뜻이 있는 한 인사가 젊은이에게 주문서를 냈다.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국내 시장을 휩쓸고 다니는 외국 기업들을 보면서 국내 기업을 키우지 않고서는 소수력 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550kW 1기를 주문했다. 1986년 임기 소수력이 국산 1호기 수차다.

젊은이는 모든 정성을 다했다. 20년 만에 100기를 제작했고 4대강 사업에 소수력발전이 도입되면서 160기까지 늘어났고 매출도 100억원 대로 성장했다.

올해 75세인 주인공 박봉일 대양수력 사장은 지난달 22일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는 김포 새 공장에서 작업복으로 실험실동 건설 작업을 지휘하다 기자를 만났다. 연구실, 슈퍼 컴퓨터실, 사장실로 안내를 하면서 설명했다.

“새 공장으로 이사를 오신 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 “그저 그렇지요. 뭐”하고 웃으며 대답하더니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합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박 사장은 40년을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까지 회사로 출근했다.

기자가 인생 산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이야기를……”하더니 한마디 내뱉는다.  “나는 거짓말 하는 게 제일 싫어요.”

그의 말처럼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그리고 한가지 집념이 더 보태어져 오늘의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게 됐다.

기자가 또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업계에서 성공한 분이 두 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한 분이 박 사장님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더니 티없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국내 소수력 발전소는 2010년 기준으로 70개소가 채 안된다. 1980년 이후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것을 제외하면 한 해 한 개도 개발되지 못한 것이 소수력이다.

국내 조사 자료에 따르면 약 2만개소에 소수력을 설치할 수 있지만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정책적으로 가장 등한시하는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으로 국내 기업이 없으면 외국 기업들은 몇 배의 가격을 요구 한다. 수차를 제작하는 토종 기업의 성공은 비록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소수력발전 개발 비용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박 사장은 현재 섬진강에 10MW급 수차를 개발하고 있다. 처음 제작하던 것에 비하면 무려 20배의 용량이다. 이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대형 수력 발전소 터빈의 개발도 가능하게 된다. 외국 제품 일색인 수력발전소의 핵심 제품인 수차의 국산화도 멀지 않았다.

한 인간의 필생의 노력이 에너지 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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