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 주민들과 상생하라
풍력, 주민들과 상생하라
  • 이상훈 신재생에너지학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 승인 2013.03.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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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훈 신재생에너지학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함부르크에서 해상풍력산업의 중심지로 부상 중인 브레머하펜으로 가는 길 주변에 풍력발전기가 즐비하다. 때론 손에 잡힐 듯이 고속도로 정면으로 보여 시야를 방해하기도 하였다.

한밤 중에 하노버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변엔 붉은 색 점멸등이 끊이질 않았다. 자동차가 고개를 내려갈 땐 어둠 속에 펼쳐진 붉은 색 점멸등 호수가 눈에 거슬렸다.

경관을 중시하는 환경선진국 독일에서 우리 일행조차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시야를 불편하게 하는 풍경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함부르크에서 덴마크 접경 지역인 디륵스호프(Dirkshof) 풍력단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창고를 개조한 사무실 지붕에 올라서니 북해를 따라 쭉 펼쳐진 농경지에 2MW 풍력발전기 70기가 돌아가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 거대한 풍력단지는 농민 240여명이 투자해서 세워졌다.

관리회사도 농업을 겸직하는 사장이 운영한다.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에선 농업과 풍력발전을 겸하는 농가들이 부지기수이다. 마을 농민들이 호밀과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경지와 함께 풍력단지를 세우니 풍력발전기에 반대하는 지역 민원도 거의 없다.

어둠 속에 깜박이는 점멸등도 구경꾼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풍력발전기가 잘 돌아갈수록 주민들이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2012년 말 현재, 독일엔 31GW의 육상 풍력이 설치되었다. 풍력 발전량이 독일 전체 전력 소비량의 9.2%를 차지했다. 풍력산업의 직·간접 고용만 10만 1천명에 이르렀다.

풍력발전 사업자는 다양한데 그 중 상당수는 개인과 농부들이 주축인 회사이다.

기준가격구매제에 의해 안정적 투자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독일에선 개인과 농부가 풍력단지에 투자하여 수익을 누리는 경우가 흔하다. 풍력발전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 물론 높지만 퇴직연금을 투자한 개인이나 에너지 농업에 투자한 농민들이 특히 풍력발전 확대에 강력한 추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최근 육상풍력 보급이 주춤했지만 대용량, 고성능의 신형 풍력발전기로 10년 이상된 낡은 풍력발전기를 교체하는 리파워링과 풍력발전 인허가 및 규제 완화로 다시 증가할 전망이다.

독일의 해상풍력 보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아직 해상풍력 설비용량이 280MW에 불과하다. 해상풍력 보급 면에서 덴마크나 영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해상풍력 기술과 설비는 독일이 단연 앞서 있지만 일단 비용이 두 배로 드는데다 해상풍력의 환경영향을 살피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다 보니 시작이 늦어졌다.

디륵스호프 풍력단지 바로 앞이 갯벌 국립공원이다. 갯벌 국립공원엔 개발과 이용이 엄격히 금지되기 때문에 해상풍력 시범단지인 알파 벤투스(Alpha Ventus)는 해안선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설치되었다.

프라운호퍼 브레메하펜연구소에선 기술과 설비, 시공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환경영향과 합리적인 계획 절차도 다각도로 연구 중이었다.

그리고 해상풍력재단이 이미 만들어져 해상풍력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육상풍력 누적설치량은 0.5GW도 되지 않는다. 독일이 국토면적은 우리보다 3.6배 크지만 육상풍력 설치량은 63배가 넘는다.

바람이 약하고 풍력단지 설치할 곳이 부족한 물리적 여건의 차이도 있지만 풍력 규제와 주민 수용성 같은 사회적, 정책적 여건이 이런 격차를 낳았다. 우리나라는 현재 53개소 1823MW 규모의 풍력발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사업자가 부적절한 부지를 탐색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복잡한 인·허가 과정이 풍력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고 일부 지역에선 의사 결정과 이익 배분에서 소외된 주민들이 풍력단지를 반대한다.

이런 와중에 해상풍력은 앞서가자는 외침 아래 국내에 세계적 규모의 해상풍력단지가 계획 중이다. 각각 서남해 2.5GW, 제주바다 2GW, 전남바다 4GW에 이른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엔  기술과 설비만 있으면 육상과 달리 바다는 손쉬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해상풍력은 비용이 두 배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 영향, 해운과 어업 행위 제한 등을 고려하면 육상에 비해 결코 쉬운 사업이 아니다.

지금처럼 관련 기업과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해상풍력 계획은 결정적 순간에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암초에 좌초할 수도 있다.

우리는 육상의 풍력자원을 포기해선 안된다. 풍력 관련 규제를 개선하는 한편 주민들이 투자하고 이익을 보는 마을 풍력회사(community wind power)가 활성화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해상풍력도 인·허가 규제, 환경영향평가, 이해관계자 참여 등 사회적, 정책적 여건을 마련하는 노력을 지금부터 병행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 특히 주민 수용성이 클수록 풍력의 공급가능 잠재량은 더 커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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