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전쟁
탄소전쟁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3.02.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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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외조카가 반수를 하고 있던 올 여름의 일이다. 조카가 학원에 가있는 동안 갑자기 집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발신번호는 틀림없는 조카의 것이었다, 필자의 누이가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한 남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댁의 아들을 납치해서 데리고 있으니 빨리 3천만원을 송금하라는 것이었다.

혼비백산한 상태에서 계좌번호를 받아 적은 누이는 혹시나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아들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에선 신음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틀림없는 아들의 음성! 누이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당시 모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남편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 돈을 준비하라고 말을 해놓고서는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한 상태로 근처 은행으로 달려갔다.

은행창구에 도착한 누이, 급하다며 절규하는 여인의 몰골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많은 은행 지점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며 송금을 일시 보류하자고 권유했다.
금융권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매형 또한 누이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이 생각에는 이들 모두가 비정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아들 목소리를 구분 못하는 엄마도 있느냐며 절규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때마침 계속 통화중이던 조카의 학원과도 연락이 닿았는데 학원장이 급히 확인한 결과 조카는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모든 정황을 전해들은 누이는 그만 바닥에 철석 주저앉고 말았다. 진이 다 빠져 버린 누이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전화번호까지 조작해 가며 사람의 다급한 심리를 이용해 치밀하게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의 치밀한 지능범죄에는 안 넘어갈 수가 없다.

이런 경우 범인을 잡는 일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누이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였는데 아마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에는 조금 덜 속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0월 중순, 영국의 B사는 2013년 CER 가격이 14유로가 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유럽의 배출권전문업체인 P사나 S사는 13유로를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U사가 내놓은 예상치는 11.8유로였다. 한편, 스위스의 U사는 2012~2013년 기간 중 EUA 가격이 5유로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며 현재의 가격수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전망을 제출하였다.

그들이 의도했건 안했건 대부분 전문가들의 가격예상치는 현 수준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탄소배출권 가격의 폭락을 예상하는 소수 전문가들도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높은 전망을 내세우는 유명 금융기관이나 전문기관들의 다수설 앞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결론을 보건데, 놀랍게도 당시 상당한 근거를 들어가며 가격폭락 내지는 시장붕괴를 예견했던 소수 전망들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2월 13일 독일 EEX거래소가 제공하는 그레이 CER 가격은 12센트, 당시 전망치와 엄청난 괴리를 보이고 있는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뭐 CER이 거의 종이쪼가리라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다. 힘들게 CDM을 추진했던 이들은 말 그대로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고 한 때 찬란히 빛나는 업적은 애물단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필자도 매년 국제 탄소시장의 중요행사를 찾아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러 쟁쟁한 전문가들을 접촉해 왔다.

그 중 하나가 영국 B사의 S박사인데 이분은 탄소시장의 오피니언 리더 중 한 분이었으며 이 분의 발언은 탄소시장 여기저기에서 자주 인용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B기업에서 더 이상 이 분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최근 발생한 일이다. 본인 스스로 나간 것인지 구조조정이 된 것인지 일반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외에도 어렵게 안면을 터놓은 전문가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물론 이는 물론 향후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전개가 예상되는 탄소시장에서 발을 떼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과 금융권의 출구전략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먹고 튀겠다는 것인가?

과거 이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이들의 예상에 따라 배출권거래시점을 미루어 놓았던 기업들로서는 이제 돌을 던질 대상조차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새벽안개처럼. 하지만 자신의 책임과 판단으로 내린 결정을 남의 탓으로 미루는 것도 어른답지 못한 일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수년 전 엄청난 CER 판매수익을 기대하며 지구온난화 대응의 선봉에 서서 CDM을 개척해 나가던 개발도상국 담당자들과 기업들의 애매모호한 현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표현도 드물 것이다.

한 때 벅찬 꿈과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이들의 가슴 속에 지금은 허무와 실망, 그리고 배신감만이 가득할 뿐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치밀한 배경과 원리를 간파해 내지 못한 순진함이 죄인이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가며 세상의 냉혹함을 알아차린 이들의 미래는 좀 더 지혜로워 질 수 있겠지만 간교한 이들은 그 이상 수를 높여 그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실은 중국은 CDM사업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CER의 최저가격(floor price)을 정해 놓고 그 이하가격에서는 배출권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중국 국가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해외바이어와 CER 거래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서(ERPA)를 첨부해야만 CDM 추진 승인이 떨어졌다.

탄소시장의 미래가 밝던 과거에 이는 매우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것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위기가 다가오자 중국 정부가 얼마나 혜안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비로소 드러났다. 역으로 말하자면 다른 이들은 그만큼 우둔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화폐전쟁’은 약 300년 동안 세계에서 발생한 굵직하고 중대한 사건의 모든 배후에 국제 금융자본세력이 개입하며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역대 미국 대통령들조차 이들의 필요와 음모에 의해 제거됐다는 주장까지 포함하고 있다. 크게는 세계대전, 세계 대공황, 아시아 금융위기까지도 이들의 철저한 전략과 계략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 쑹훙빙의 설명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 거짓이냐 진실이냐를 두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론적으로 이는 사실에 허구를 더한 픽션으로 역사적 사실과 실전 인물의 이야기에 저자의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인 ‘각색실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완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저자 쑹훙빙은 중국인이다. 그의 조국인 중국 정부 또한 자국 기업들을 위해 미리 탄소시장의 리스크를 현명하게 헤지해 놓았다는 점에서 그 예단능력과 통찰력이 대단해 보일뿐이다.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중국인들과 경쟁해 보았던 필자도 당시 이들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탄소시장의 부흥과 몰락도 쑹훙빙이 말한 이들 국제 금융세력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해보았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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