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메르켈, 그리고 재생에너지
박근혜와 메르켈, 그리고 재생에너지
  • 이상훈 신재생에너지학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 승인 2013.01.18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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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훈 신재생에너지학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대선은 예상과는 달리 조용히 지나갔다. 오해는 마시라, 에너지 분야 얘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 믹스와 원전 안전 규제, 값싼 전기요금이 초래한 수요 급증과 전력 수급 불안, 녹색성장의 치적에 가려진 재생에너지 산업의 고사 위기 등은 지속가능한 미래와 직결된 중요 이슈이다. 그래서 에너지 공약이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리라고 나와 주변인들은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나와 주변인의 이해는 협소했고 시야는 좁았으며 균형감각은 뒤떨어진 셈이다. 대선 이슈는 정치 쇄신, 경제 개혁, 복지 확대 등에 집중되었고 에너지 이슈는 마지막 대선 후보 방송 토론에서 사회 안전과 관련하여 잠깐 등장하는데 그쳤다.

물론 후보 공약집에는 에너지 이슈가 포함되었다. 문재인 후보는 10대 공약 중에 꽤 구체적으로, 박근혜 후보는 14대 과제에서 간략하게 에너지를 포함하여 지속가능한 미래상을 제시하였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혁신적 공약을 유세와 방송 토론을 통해서 언급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떤 후보도 에너지 문제를 대선 이슈로 이끌어가진 않았다.

프랑스 대선을 포함하여 유럽의 정치 일정에서 원전 정책이 주요 이슈로 다뤄지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결국 후보와 캠프의 이런 행태는 유권자들의 표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9.15 순환 정전에도 불구하고 값싼 전기와 안정적이고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유권자들에게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새 정부 준비 과정을 보면 MB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답습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새 정부에서 에너지 행정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맡는다. 통상 업무를 되찾아올 지경부는 표정관리에 바쁘다.

이번에도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자립 강화 등을 위해 에너지기후변화부 같은 독립적인 통합 에너지 행정 전담부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논의 의제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에너지 행정은 산업 진흥과 수출 확대에 더 예속될 우려가 크다.

인수위 전문위원인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정치적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에너지 가격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에너지 가격 기능 정상화의 걸림돌은 부처 내부에서도 존재했다.

에너지 관련 인수위원은 원자력 전문가인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가 유일하다. 장순흥 교수의 역할 때문인지 인수위는 장관급이 맡는 독립 규제 위원회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 기술 개발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격하한다고 발표하여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국제원자력기구의 권고에 따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진흥과 규제를 정상적으로 분리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원자력 진흥론에 밀려 원자력 안전 규제를 약화시키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온 것이다.

재생에너지 분야는 2013년 예산까지 줄어들면서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및 보급 정책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의 에너지 공약이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밑그림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국민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전원믹스를 원점에서 재설정”하겠다는 공약처럼 지경부가 미리 준비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신·재생에너지보급계획을 서둘러 확정하기보다는 새 정부는 활발한 이해당사자 협의 절차를 거쳐서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에너지 정책의 대강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자는 ‘친구’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치적 성공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먼저, 메르켈은 야당인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하여 재생에너지를 독일 경제 부흥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였다.

2005년 11월 총리 취임 이후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서 20% 급증했고 더불어 재생에너지 분야 고용도 38만명으로 두 배 늘고, 투자도 2010년엔 279억 유로까지 증가하였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2050년까지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에너지 전환 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메르켈은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안전한 에너지 미래를 위한 윤리위원회’의 결론을 받아 들여 기존 입장을 바꾸어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하기로 결정하였다.

2010년까지만 해도 물리학자 출신인 메르켈은 원전 수명을 평균 12년 연장하는 원자력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후 국민 여론을 받아 들여 원자력 전기보다는 안전을 우선시하면서 소신을 접은 바 있다. 이렇게 민의를 수용한 결과 메르켈에 대한 지지도는 지금까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경제 부흥과 국민 안전을 강조한다는 점은 박근혜 당선자와 메르켈 총리가 다를 바 없다. 박근혜 당선자가 메르켈의 길에서 성공의 교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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