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을 읽는 능력
행간을 읽는 능력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2.12.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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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1950년 6월 27일,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이틀만의 일이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이 단호한 어조로 대국민 특별담화를 송출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국군이 적을 잘 물리치며 선전하고 있으니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고 동요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대통령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들과 함께 수도 서울을 반드시 사수할 것이라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피난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주저하고 있던 당시 서울 시민들에게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거듭 방송된 대통령의 담화는 국민들을 감동시켰고 신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국 많은 시민들은 대통령도 남아 있는데 굳이 우리가 피난을 떠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며 서울에 남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실은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생방송이 아니었다.

방송이 있기 18시간 전 녹음된 내용이었고 이를 대통령이 현장에서 방송하는 것처럼 내보낸 것이었다. 이미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으로 피난을 가버린 상태였던 것!

다시 말하면 있어서는 안 될 엄청난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비슷한 일들이 전 세계 여러 분야에서 반복되며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교훈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때로 부동산가격이나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기도 한 것 같다. 과거 강남집값이 하루에 몇 천만원씩 뛰어 오르던 시절,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부족을 그 원인으로 제시하며 많은 물량의 주택이 시장에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덕분에 아파트 건설사들은 호황을 누릴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음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이들은 큰돈을 벌었지만 주저하다가 잔치가 끝난 후 뒤늦게 뛰어든 순진한 이들은 지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일부에 국한되어 있겠지만 몇몇 전문가들의 경우에 객관적 사실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필요에 따라 전망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일이 탄소시장에서도 목격되었다. 글로벌 탄소시장의 붕괴 조짐이 엿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은 여전히 탄소배출권 가격과 관련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경우가 있었다.

신뢰할만한 기관에서 내놓은 이러한 가격전망 정보를 순진하게 믿어버린 적지 않은 수의 투자자들은 현재 급속한 속도로 폭락해 버린 탄소배출권을 손에 쥔 채 망연자실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일부 탄소배출권 전문가들은 배출권가격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당시 배출권가격에는 이미 악화된 유로존의 경제상황과 성장둔화 가능성 등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당시의 배출권가격 폭락 움직임이 다소 과도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비정상적인 시장상황이 조만간 안정세로 접어들며 과잉하락분 만회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이 전망한 2012년의 CER 가격은 대부분 5~8유로 사이, 하지만 2012년 12월 말 현재 CER의 가격은 0.4유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매우 정확한 전망을 제시한 전문가들도 없진 않았다. 70와트 컨설팅의 경우에는 과잉공급으로 인해 2020년까지 배출권은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노미스마 에너지아의 경우 CER이 비록 2015년까지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큰 가격폭락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다.

실은 이러한 목소리는 다수의 긍정적인 전망에 묻혀 버리기 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70와트 컨설팅은 에너지시장에 대한 보고서 작성 및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벨기에의 업체이며 노미스마 에너지아는 에너지와 환경분야 주제를 다루는 이탈리아의 독립 법인이다.

필자가 아는 몇몇 업체들도 시장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가격전망만을 믿고 CDM사업에 새롭게 투자한다든지, 발급받은 배출권의 매도시기를 늦추는 우를 범한 후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곤란에 처해 있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 한군데 제대로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상황이다.

전망은 전망일 뿐이다. 때때로 진실이 왜곡되는 세상이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전문지식을 쌓아야 하고 스스로가 시장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자신만의 주관이 섰다면 흔들리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판단과 조직의 결정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사나 CEO는 담당자의 분석보다는 전문기관의 전망을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전망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를 고루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100% 순수하다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사실. 예를 들어 모두가 사실 그대로 CER 가격의 폭락가능성을 여과 없이 누설해 버린다면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들, 그래서 때로 이 세상은 슬픈 것이다.

필자는 과거 황수관 박사의 강연에 참가한 적이 있다. 강연 중 그는 한 가지 예시를 들었는데 청중들을 어린아이와 어른,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 버린 깊은 밤, 빨간 눈을 가진 토끼 한 마리가 눈 속을 깡충깡충 뛰어 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어린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아름다운 산수화가 그려져 눈을 반짝거리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반면 성인 그룹은 이야기의 숨은 의도나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해진다고 한다.

황 박사는 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덜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어른들은 행간에 숨은 의미를 파악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피곤하고 복잡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세상을 단순하게 보고 웃으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상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험한 세상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성인들의 세계에서는 행간을 읽어내는 능력이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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